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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Dec 28. 2020

그런 건 없다!(2)

- 몇 년 후 수능을 치러야 할 아들에게

문제의 발단은 네 엄마가 대치동 사는 선배 언니에게 입시 정보를 전해 듣고 와서 아침 식사 시간에 그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이었지. 아빠도 어느 정도 방송 등으로 귀동냥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 학원과 엄마들의 놀라운 관리와 헌신(?)이 그 정도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일인 줄은 몰랐단다. '스카이캐슬' 같은 드라마가 일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과장한 것인 줄 알았거든. 


그런데 네 엄마의 말을 듣던 네가 불쑥 '나도 학원에 다니고 싶고, 할 수만 있다면 매니저 선생님의 도움도 받고 싶다. 학원을 다녀보면 수학 성적이 오를 것 같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아빠는 순간 움찔했었다. 너는 아빠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보고 곧 농담이라고 얼버무렸지만, 십수 년 너를 키운 아빠가 농담과 진담을 구별 못할 리 없지. 그동안 너를 따로 학원에 보내지 않았던 것은, 스스로 공부를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학원을 오가며 흘리는 시간을 아끼면 더 많은 자유로운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란다. 너도 아빠의 그런 생각에 동의해서 잘 따라오고 있었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지금 와서 네가 학원을 가고 싶어 하고 학습 매니저가 필요하다고 하니, 뭔가 지난 시절 지켜왔던 아빠의 교육 철학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그런 두려움이 확 밀어닥쳤던 거다. 한편으로는 못난 자격지심도 고개를 들더구나. 스카이캐슬에 나오는 넉넉한 아버지처럼 돈이 많았다면 붙여줄 수 있는 과외 선생님과 매니저 선생님인데, 그렇지 못해서 이상한 핑계를 대고 있는 것처럼 네게 비치지는 않을까, 잠시 걱정됐다. 그래서 잠시 마음속에 풍랑이 일었었다. 


그러나 곧 평정심을 찾았단다. 혼자 공부할 때의 외로움과 두려움,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에 대한 조바심 때문에 네가 그렇게 말한 것임을 곧 알 수 있었거든. 솔직하게 말할게. 아빠는 솔직히 학습 매니저 같은 분을 채용할 만큼의 경제적 여력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밤에 대리운전 같은 별도의 부업을 하며 유난을 떨 생각도 없다^^. 그걸로는 턱없이 모자라기도 하거니와 아빠는 네가 학습 매니저를 두는 것이 도움이 되기는커녕, 삶을 살아갈 때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지. 인생은 누군가가 짜준 계획대로 살아 버릇하면 인생을 그렇게만 살다 가게 되니까 말이다. 명문대학의 졸업장보다는 스스로 계획하고 결정하는 훈련을 어렸을 때부터 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구나. 당장은 조금 뒤처지는 것 같아도 삶의 주체성은 그렇게 스스로 삶을 운영해 나갈 때 만들어지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너 스스로 차근차근 너의 목표를 정하고, 네 미래를 계획하고, 차근차근 만들어 가보도록 해라. 아빠가 옆에서 도울게. 


그래도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네가 원하는 수학 학원에는 한번 잠시 다녀보렴. 네가 기대하는 것처럼 학원에 다니면 기적 같은 성적 상승이 있을 거라고 아빠도 믿기 때문은 아니야. 그런 마법의 방법이 있다면 세상에 공부 못할 학생은 없겠지. 아빠는 아마도 학원에서 네가 배우게 될 것은 '결국은 스스로가 열심히 공부한 만큼 성적이 올라간다'는 일종의 자연법칙일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흔히 돈을 빨리 많이 버는 법, 살을 쉽게 빨리 빼는 법, 공부를 적게 하고 빨리 성적이 오르는 법이 있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미안하다, 아들아. 그런 건 없다. 반백년 살아보니 그런 건 없더구나.   


사랑한다,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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