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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Dec 14. 2020

평가원, 욕 안 먹고 목적 달성하는 방법을 깨우치다

- 수능 국어 단상(1)

2021학년도 수능 국어 독서 지문 3세트를 보니 알 것 같습니다. 평가원(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말하는데요, 수험생들이나 선생님들은 보통 줄여서 평가원이라고 부릅니다. 다들 아시죠?^^)은 정말 욕 먹기 싫었고, 욕 안 먹는 방법을 찾은 것 같습니다.  


평가원이 국어 영역 때문에 찐하게 욕을 먹은 때는 2019학년도 수능 시험이었습니다. 1등급 컷이 84점이었던 전설의 '불국어' 시험이었지요. 이 '불국어' 시험의 상징적인 문제가 인문과학융합지문의 31번 문제였습니다. 조금만 기억을 더듬어 보시면 떠오를 것입니다. 진짜 긴 지문, 진짜 진짜 긴 <보기>, 국어 시험인데 수학시험 같은 <그림>이 곁들어 있었던 그 문제 말이지요. 


이 문제 때문에 평가원은 엄청난 욕을 먹었습니다. 평가원장이 수능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31번 문제와 같은 초고난도 문제는 출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평가원의 약속은 지켜진 것 같았습니다. 그 이듬해부터 수능 국어 시험은 분명히 바뀌었지요. 우선 독서 지문의 길이가 짧아졌습니다. 약간의 계산이 필요한 '산수 문제'도 사라졌습니다. 31번과 같은 초고난도 문항은 당연히 없어졌지요. 그런 기조가  2021학년도 수능 국어 문제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올해(2020년/2021학년도)의 수능 국어 시험이 끝났을 때 여러 입시 기관들과 강사 선생님들은 수능 국어가 쉽다고 평했습니다. 하지만 가채점 결과가 나와보니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지요. 1등급 컷이 작년 91점보다 4점이나 내려간 87점이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쉽다고 했던 입시기관들이나 강사 선생님들은 코로나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코로나로 학교 국어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는데다가 아이들이 학원에서 사교육을 충분히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국어 실력이 많이 줄었다는 말들이 돕니다. 그렇게 생각할 만한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어딘지 이상했습니다. 다른 과목들도 동일하게 점수가 안나와야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국어 과목만 점수가 안나왔거든요. 코로나로 인한 학력저하라고 보려면 모든 과목이 동일하게 점수가 떨어져야 정상이지요. 


업무상 문제를 한 번 풀어봐야 했는데, 풀고나서 알게 됐습니다. 아, 평가원이 국어 과목에서 욕먹지 않으면서 목표로 한 목적을 달성하는 법을 깨달았구나, 그렇게 느꼈지요. 


사실 2019학년도 수능 국어 문제부터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2018년 말 수능이 끝나고 나서 31번 문제가 주로 언론이나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습니다. 수능 국어가 불수능인 이유를 이 31번 문제처럼 잘 보여주는 문제가 없었지요. '국어시험이냐 과학시험이냐''저렇게 긴 지문과 <보기>와 선지를 봐라. 저걸 어떻게 시간 내에 풀어내나''나는 명문대 졸업했지만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런 반응이 잇따랐지요. 


이런 세간의 요청에 평가원은 초고난도 문제를 빼는 것으로 답했습니다. 이게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러자면 시험의 변별력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는데요. 오히려 초고난도 문제를 빼는 방법은 평가원에게 시험의 변별력을 높이는 일석이조의 방법이었습니다. 사실 31번과 같은 초고난도 문제는 사실 변별력이라는 차원에서도 문제가 많았거든요. 풀려고 애쓰다가 틀리는 경우나 시원하게 미리 제낀 경우나 점수 차이가 별로 없었습니다. 학원가에서는 그래서 독서 고난도 지문 하나를 그냥 찍으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찍은 거나 푼 거나 점수가 비슷하게 나왔으니까요. 


또 국어 시험이 수학이나 과학 시험처럼 보이는 '계산이 필요한 문제'도 가급적 배제하려는 것이 눈에 띄더군요. 사람들이 여차하면 국어 시험에 무슨 계산? 이러면서 비판을 하니까요. 굳이 그런 문제를 낼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지문의 길이도 줄였습니다. 이제 (가)(나)로 분할된 지문이 나오는 주제 통합형을 제외한 나머지 두 개의 지문은 2단 시험지의 딱 한 단만 차지할 정도로 길이가 줄었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나서 이번 수학능력시험 국어 문제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거의 욕하지 않습니다. 아니 욕을 못하는 것 같아요. 그동안 제기했던 문제점들이 다 해결되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은 우려했던 것만큼 쉬워지지 않았고 평가원은 시험의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었지요. 


수능 국어 시험이 한차례 더 진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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