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 예방과 지속을 위한 처방전
계획을 세우고 중도에 포기한 수많은 일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아쉽습니다. 젊은 시절 취미든 특기든 무엇이라도 한 두 가지 집중해서 깊이 배워두었더라면 중년의 삶이 풍요로웠을 텐데요.
한때 옷장 위에 기타가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놓여 있었습니다. 91년 대학 1학년 때 산 거니까 무려 28년의 시간이 그 위에 켜켜이 쌓여있는 셈입니다. 당시에 김광석, 안치환 같은 가수들을 좋아해서 그들의 노래들을 연주하고 싶다는 마음에 덜컥 사버린 것이었는데, 그 기타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몇 번의 이사를 하고 나서 까지도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 악기를 발견하고 버릴까, 어디 중고시장에 팔까, 누군가를 줄까, 싶었다가 그러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기타는 제 ‘끈기 없음’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지만, 제 ‘하고 싶음’도 함께 드러내고 있는 것이니까요.
공부에도 때가 있다는 말이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들렸는데 날이 갈수록 수긍이 갑니다. 젊었을 때는 좋아하는 일에 몇 날 며칠을 빠져 살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에너지도 넘쳤고 시간도 많았습니다. 책을 읽는 것도, 무언가를 경험하고 배우는 것도, 이때만큼 좋은 시기는 없다는 생각을 거듭하게 됩니다.
하여 젊을 때의 배움과 중년의 배움은 달라야 합니다. 중년은 바쁩니다. 가족을 꾸려야 하고 직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관여해야 할 세상사들도 많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배움을 유지하려면 젊을 때와는 그 방법이나 태도가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우선 젊을 때처럼 짧은 시간 집중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는 생각은 잠시 미뤄두어야 합니다. 작심삼일이 특히 중년의 다반사가 되는 이유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 예전 생각으로 덤벼들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에너지가 넘쳐흐를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는 3일을 지속하기가 어렵습니다. 경험상 그랬습니다.
일단은 지속이 먼저입니다. 제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깨달은 것은 지속의 에너지, 즉 지속을 위한 관성을 얻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했다’고 스스로에게 자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이 방법은 좋은 점이 ‘시간 없다’는 핑계를 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하기로 계획한 공부나 연습은 일단 책상에 앉거나 악기를 들기만 해도 했다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기껏해야 몇십 초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걸 건너뛰고 하지 않나? 싶지만 인간은 위대합니다. 정말 건너뛰기도 합니다!!! 제 스스로가 너무 놀라웠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중요한 것은 ‘했다’입니다. 인간은 좌절감을 싫어합니다. 매일매일 좌절감을 느끼느니 깔끔하게 포기하는 게 인간입니다. 그러나 또 간사한 칭찬에 으쓱해지는 것도 인간입니다. 하루 1초를 했건 1시간을 했건, 자신의 기준을 ‘했다’는 것에 맞추면 매일 해냈다는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만으로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중년은 이 기분 좋음을 통해 하루하루 지속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사에 시달리며 정말 아주 조금밖에 남지 않은 에너지와 시간을 활용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놀라운 게 그렇게 하면서 점점 관성을 만들면 어느새 하루 10분, 1시간을 거뜬히 넘어설 수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저는 버리려던 기타의 먼지를 닦고 다시 책상 옆에 세워 두었습니다. 하루에 10분 만이라도! 그렇게 다짐하면서요. 그러자 정말 매일매일 기타를 어루만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잘 치진 못해도 연주할 수 있는 곡이 하나둘씩 늘어났고요.
좌절감을 느끼기 싫어서 때려치울 거라면 차라리 매일매일 ‘했다’는 시늉만이라도 하는 것이 낫습니다. 구경하다가 시늉하게 되고 시늉하다가 제대로 하게 되고 제대로 하다가 잘하게 되는 거니까요.
몇 년 뒤에는 정말 멋있게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할 수 있을 겁니다. 이 브런치에 올리는 제 글도, 제 기타 실력도 그즈음에는 맛있게 익어있을 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