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호 Jan 11. 2021

존경받는 삶에는 '한결같음'이 있다

- 원로학자 천병희 교수님의 근황 기사를 보다가

제가 2013년에 페이스 북에 천병희 선생님에 대한 짤막한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2013년으로 74세를 맞는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 그를 두고 사람들은 ‘국보급 번역가'라 칭한다.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인 그리스 로마 원전 번역가로 추앙받는 그는 단국대 독문과 교수 시절인 1990년대 중반부터 번역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60여 종의 그리스 로마 고전을 번역했다. 


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헤로도토스의 역사,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등 고전 중에서도 고전으로 꼽히는 책들이 그의 손끝을 거쳐 번역되었다. 

그런데 이 역작의 절반이 2004년 단국대에서 정년퇴임을 한 이후에 번역되어 나왔다 한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요즘도 천 교수는 건강을 위해 일주일에 세 번 등산을 하는 것을 빼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택에서 번역 작업을 하며 보낸다 한다. 그가 하루에 평균적으로 번역해내는 그리스 로마 원전의 분량은 1페이지에서 1페이지 반 정도. 매우 더디다. 인내심과 체력이 무척 요구되는 작업이다. 


비결은 ‘쉬지 않는 것'. 


“1개월가량 번역 작업을 쉰 적이 있는데, 마음도 불안해지고 건강도 오히려 나빠져 이후로는 절대 손에서 책을 놓지 않게 됐다”


‘관성'은 물리학의 영역에서만 통용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사람의 심리 속에서 더 크게 작용한다. 습관을 고치려면 20일만 꾸준히 지속하면 된다. 심리적 관성이다. 평생을 번역하며 살아온 그 관성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놀라운 업적의 바탕이다. 


이런 분들의 삶은 우리에게 먹먹한 감동을 선사한다.  인문학 연구 지원 활동을 하는 단체인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가 2년 전에 천 교수님께 연구 교수직을 제안했다. 연 3,600만 원씩 2년 간 7,200만 원을 지원받으면서 하고 싶은 연구를 하시라는 거였다. 하지만 천 교수는 인문학 분야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젊은 학자들 많으니 나 대신 그들을 지원하라며 고사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플라톤 재단에서 “그럼, 행사에 잠시 와서 자리를 좀 빛내 달라.”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천 교수는 너무나 미안하다는 어조로 이렇게 말끝을 흐렸다 한다. 


“거기에 다녀올 시간이면 원전을 스무 줄 이상 번역할 수 있는데....”


잘은 모르지만 이게 학자다. 

(동아일보 2013.1.2 광화문에서 <용어설명:웰 에이징> 참고) 


분명 조용히, 자신이 걸어온 길을 묵묵히 걸어오셨으리라 생각하고 최근 근황을 찾아봤지요. 예상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2019년에 플라톤 전집의 완역을 끝내셨더군요. 인터뷰를 보니 이분은 이때까지도 여전히 집에 있는 작은 서재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12시 30분까지 번역 작업을 하고 조금 쉬었다가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다시 책을 보셨더군요. 저녁에는 책장에 빽빽하게 꽂힌 클래식 CD를 골라 듣고 1주일에 두 번 정도 남한산성 산책을 하며 건강을 관리했다고 합니다.  문득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역시나,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90512022600005?input=1195m

다양한 삶의 방향이 있고, 누구나 똑같은 인생을 살지는 못하지만, 존경받는 삶에는 한결같음이라는 기본이 깔려있는 듯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크루이프의 축구 철학, 바르셀로나를 만들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