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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Feb 15. 2021

감정을 느낀다는 것

- <<아몬드>>를 읽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마음에 때가 끼어서일까요. 우정, 사랑, 이런 말들이 유치하고 진부하게 느껴졌더랬습니다. 각박한 삶을 살아오며 영원한 것은 없고, 그 세상을 헤쳐나가려면 지나치게 예민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으니까요. 자존심 따위는 출근길 신발장에 넣어두고 가라는 어느 자기 계발 강사분의 가르침을 종종 되새기곤 했었지요. 그 자존심이 삶을 헤쳐가는데 얼마나 짐이 되는지를 겪어봐서 아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아몬드>>(손원평, 창비)를 읽을 때 작품 속 주인공 친구인 곤이처럼 주인공 윤재가 부러웠습니다. 머릿속의 아몬드, 그러니까 공포를 느끼게 하는 편도체가 너무 작아 불안과 두려움, 슬픔 등의 감정을 못 느끼는 주인공이 처음에는 부러웠던 겁니다. 내 머릿속 아몬드도 점점 작아져 소멸되면 어떨까, 그런 상상을 하면서요. 주먹으로 살아있는 소나무를 계속 치면 단단한 굳은살이 되는 것처럼, 그래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내 마음에도 그런 굳은살이 생기기를 간절히 바랬던 적이 있었습니다. 더 상처 받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이었겠지요. 


이제는 그런 굳은살이 만들어져서 그 아래의 여린 속살은 다칠 일이 없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럴 때 조용히 훅하고 들어오는 리버 펀치(왼손 어퍼커트로 상대의 오른쪽 갈비뼈 아래쪽을 때리는 펀치. 간에 충격을 주는 권투의 피니시 블로) 같은 작품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작품을 읽고 뭐라고 말하기 어려울 때 그냥 '좋다'라고 하지요. <<아몬드>>가 그런 작품이었네요. 오래간만에 소설을 읽어서인지 여운이 꽤 남았습니다. 


요즘도 종종 제 아미그달라가 좀 작아졌으면, 그래서 두려움과 불안을 모두 걷어갔으면 하고 기대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삶은 그 작은 아몬드가 주는 다양한 감정의 낙차를 통해 인생에 무늬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압니다. 세상이 그 정도는 제게 가르쳐주었습니다. 두려움과 불안, 수치심, 질투, 그 밖의 수많은 삶이 주는 감정들을 부딪쳐 스스로 넘어서야 하겠지요. 피하려 하면 어느 틈에 눈앞을 턱 막아서고 나서니 반드시 정면으로 부딪쳐야 합니다.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축복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당연하지 않게 알려주는 책이었습니다. 


덕분에 설 명절이 풍성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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