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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Feb 17. 2021

일에 대한 소통은 샌드위치 주문처럼

- 재택근무 시대의 소통 방식

젊은 회사 동료들과 일에 관해 소통할 때 가급적이면 말에 '함의'를 담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제 또래와는 달리 젊은 동료들은 일에 관해서는 직접적인 지시적 언어만을 사용하려고 하거든요.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숨은 기대 같은 것은 최대한 무시합니다. 흔히 밀레니얼 세대라고 불리는 젊은 동료들이 공감 능력이 부족해서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 흠, 제가 보기엔 아닙니다.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상사들 때문인 것 같아요. 


상사들은 흔히 고맥락 언어를 씁니다. 고맥락 언어는 맥락을 한참 생각해야 하고 해석의 폭이 매우 넓은 표현입니다. 


좀 '잘' 해봐. 

'알아서' 잘할 수 있지? 

'적당히' 완성되면 좀 보여줘.


원래 스스로도 방향을 잘 모르겠을 때 이런 지시가 나옵니다. '난 잘 모르겠지만 알아서 최고의 결과를 들고 와.' 최고의 결과가 나오면 자신(상사)의 탁견 때문이요, 최악의 결과가 나오면 네(부하 직원)가 제대로 못 알아먹어서가 됩니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면 고맥락 언어를 이해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지요. 


제가 느끼기에 젊은 친구들의 롤모델은 회사 밖에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상사는 '나이 많은 동료'에 지나지 않지요. 지금 당장은 내게 일을 지시하는 상사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 나가 동네에서 치킨을 튀길 확률이 90% 이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저 역시 그 안에 포함되더군요. 그런 상사의 고맥락 언어를 이해해서 그분 마음에 들고 싶어 할 이유가 있을까요? 공연히 사적인 일만 많아질 뿐입니다. 


젊은 친구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부터 저도 '알아서' 문화와 작별하려 하고 있습니다. 늘 마음에 새깁니다. '나는 저 친구들의 롤모델이 아니다.' 제가 산해 진미를 대접하는 것도 아닌데 자신의 자유 시간을 저에게 할애할 이유가 없지요. 그걸 받아들이니 오히려 제가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업무에 관해 소통을 할 때도 가급적이면 대면해서 하기보다 메신저를 활용하려고 노력합니다. 상대방의 시간을 아껴줄 뿐만 아니라 제 시간도 아낄 수 있더군요. 나중에 확인할 때에도 편리하고요. 또한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제 자신이 먼저 명확하게 일을 이해하게 되는 장점이 있더군요.  


저는 이제 고맥락 언어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는 사람과 조직을 조금 더 좋아하게 됐습니다. '알아서' 하라는 지시나 그것 하나 '알아서' 못하냐는 질책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제 무능을 드러내는 표현 방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요. 정확한 지시와 소통으로 책임과 의무의 명확한 선을 그어주는 사람이 진정 유능한 사람입니다. 제 주변의 젊은 동료들은 그것을 이미 파악하고 있고 적용하고 있습니다. 나이와 직급을 핑계로 여전히 고맥락 언어로 소통한다면 곧 도태되겠지요.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주문하는 방식으로 하나하나 정확하게 일에 대해 소통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재택근무나 원격근무가 점점 더 확대될수록 더더욱 그렇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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