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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Mar 11. 2021

벗의 향기

-  고맙네. 잘 마시겠네.

'차로 유명한 백련사 녹차인데 맛이 참 좋다네. 잘 드시게.'


카톡이 울려 확인해 보니 중학교 시절의 친구입니다. 바빠서, 서로 힘껏 살아가느라, 2~3년에 한 번 얼굴을 마주할 수 있지만, 언젠가 맛 좋은 차를 즐기게 되었다는 제 말을 기억하고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차를 보내줍니다. 친구가 보낸 차가 택배로 도착했는데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 맛보지 못하다가 마침내 봉지를 뜯고 차를 우렸습니다. 


차 향이 코끝에 맴돌자 친구의 목소리가 귀에 울리는 것 같습니다. 유난히 저음인 이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면 오래 못 만났던 서먹함이 단박에 사라지고 바로 엊그제 만나서 재잘거렸던 것처럼 친근해집니다. 그 목소리가 향으로 전해집니다. 


차 한 모금을 혀끝에 굴리자 그 친구와 함께 보냈던 젊은 한때가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갑니다. 합창대회를 함께 했고,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하던 영화를 같이 봤습니다.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무슨 영화를 봤는지는 가물가물한데 함께여서 좋았던 마음은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또 다른 친구 둘과 함께 넷이서 지금껏 만나고 있습니다. 살며 얼마든지 소원해질 수 있는 그 넷의 사이를 끈끈한 풀처럼 이어준 친구이기도 합니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벗을 떠올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이거든요. 그 네 명의 친구들이 성인이 되어 함께 설악산 여행을 다녀온 사진을 꺼내어 봅니다.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시니 몸이 따뜻해지고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차를 보내준 친구가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 같습니다. 삶의 온갖 힘겨움에도 그 친구는 언제나 밝고 씩씩하고 여유롭습니다. 고향 같은 친구입니다. 잠시 눈을 감고 차의 맛을 음미하니 근사합니다. 


차의 향인지 벗의 향인지 모르겠어서 더욱 좋습니다. 


'고맙네. 잘 마시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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