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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Apr 15. 2021

어떤 이력서가 말을 걸어올 때

- 당신은 분명 잘 살 것입니다

저는 업무 특성상 수많은 이력서를 봐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단 몇 줄의 이력에 그 사람의 꿈과 노력이 담겨 있기에 어느 한 장 소홀히 볼 수가 없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세상의 모든 이력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말을 겁니다. 

내가 얼마나 잘났는지 볼래? 하는 이력서도 있고, 조금 쭈삣거리면서 열심히 할게요, 하는 이력서도 있습니다. 뭐 뽑히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기대는 마슈, 그렇게 말하는 이력서도 있고요. 아, 더 쓰기 귀찮아, 그냥 알아서 하세요, 하는 이력서도 있습니다. 정말 성실하게, 모범적으로 살았다고 외치는 것도 물론 있지요.


그런데 아주 특이한 느낌의 이력서들도 있습니다. 아주 먼 길을 돌아돌아 온듯한 느낌이 드는 이력서요. 평범한 이력서들과는 어딘가 다릅니다. 글자 하나하나에 솜털처럼 보드라운 무언가가 있어서 그걸 읽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듯하지요. 읽으면서 분명 지금 우리가 만나려는 이력서가 아닌 것은 알지만, 뭔가 엄정하려던 제 마음이 무장해제되는 듯합니다. 삶을 위해 분투한,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하는 의도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한, 뚜벅뚜벅 걸어온 지난 삶을 덤덤히 말하는 듯한 글자들은 그 어느 누구의 삶도 소홀할 수 없다는 세상에서 가장 보편적인 진실을 일깨워 줍니다. 


그런 이력서를 만나면 마음속으로 답합니다.


우리가 함께 가지는 못하지만

당신은 분명 잘 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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