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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Jul 19. 2021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결계(?)'

- 세상과 맞서는 작은 심리 기술

중고등학교 시절, 저는 종종 대머리가 될 거라고 놀림을 받곤 했습니다. 지금처럼 왕따 수준의 괴롭힘은 절대 아니고요. 농담 수준의 놀림이었지요. 근데 문제는 놀리는 친구들은 장난기와 친근감으로 하는 것이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여간 성가신 게 아닙니다. 게다가 한창 예민한 시절이어서 더 괴로웠지요. 그런데 삼십 대 중반쯤 되니까 해결책(?)이 생겼습니다. 


각자 대학으로 흩어졌다가 나름대로 자기 길을 찾아 직장 생활을 하느라 한참 못 만났던 친구들은 만났을 때,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제 머리를 가지고 그토록 놀렸던 친구들이 모두 머리가 많이 빠져서 대머리가 되어 있었거든요. 그 친구들도 막상 본인이 그런 상황이 되고 나니 누굴 놀릴 처지가 아니게 되어버렸지요. 게다가 제 머리카락은 중고등학교 때와 하나도 변한 게 없거든요. 


거기서 착안했습니다. 반백살이 된 지금도 아직 철들지 못한 인간들은 틈나는 대로 제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려댑니다. 농담처럼 여러 사람 모인 자리에서 화젯거리로 이야기하니 속 좁은 사람 될까 봐 화도 못 내게 되더군요. 그래서 저도 농담처럼 제 머리카락에 대해 일종의 저주 주문을 걸었습니다. 


- 어렸을 때 제게 대머리 될 거라고 놀린 친구들 대부분이 대머리가 되었습니다. 아마 제 머리에 주문이 걸려있는 것 같아요. 웃는 건 좋은데 머리카락 조심하세요. 다 빠질 수도 있어요. 


근데 이게 효과 만점입니다. 설마 될까? 했는데 정말 먹히더군요. 마치 부비트랩을 걸어 놓은 것 같달까요. 이렇게 여기저기 말하고 다닌 이후로 내게 대머리라고 놀리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ㅎㅎ 물론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주문의 역할도 꽤 크답니다.)


남몰래 걸어놓은 주문은 더 많습니다. 가령 제게 해코지 하는 사람은 딱 그 두 배의 고통을 겪게 되는 결계 같은 것 말이지요. 이게 상당히 심리적인 쾌감이 있습니다. '넌 이제 죽었다, 결계의 강력함을 맛보시라!!!' 이러면서 혼자 고소해하지요. 남 놀리기를 너무 좋아하는 상대에게는 간혹 넌지시 지나가듯 들려줄 때도 있습니다. 


- 저는 돈도 백도 아무것도 없는데, 다행히 보호막 같은 게 있어요. 저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늘 고통을 받게 되더라고요. 아프거나 망하거나. 


세상에는 정면으로 부딪쳐야 하는 상대도 있지만, 기묘한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상대도 있습니다. 그런 상대를 만났을 때 제가 말한 심리적 결계를 사용해보세요. 생각보다 효과적일 때가 있습니다. 상대에게도, 자신에게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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