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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Dec 12. 2021

느림을 위하여

- 천천히 하다 보면 그것이 소중해진다

오래간만에 해리포터 영화를 다시 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오랜 시간이 흘러 몇 장면을 빼고는 많이 잊어버렸더군요. 다시 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게다가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시리즈라 제 젊은 날의 부분을 떠올릴 수도 있어서 좋았습니다. 원작이 좋아서인지 1편이 나온지는 20년이 되었지만 촌스럽다거나 어색하다거나 하는 것을 조금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아직도 마법 세계에 홀딱 반할 수 있어서 좋았달까요. 


그런데 영화를 한편씩 보아갈 때마다 처음 볼 때는 사소하다고 생각해서 그냥 흘려보냈던 요소들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여기저기 아기자기한 재미들, 이런저런 복선들이 깔려있었는데 저는 예전에는 그런 것들을 그냥 지나쳐 버렸던 것 같습니다. 다음번에 또 한 번 보면 또 다른 소소한 재미들을 발견할 수 있겠지요. 

 

가만 생각해보면 꼭 해리포터 시리즈만 그런 것은 아닌 듯합니다. 어떤 일이건 허겁지겁하던 것을 멈추고 천천히 하다 보면 그 일이 귀하게 느껴지지 않던가요? 아침 출근길에 허겁지겁하는 샤워는 몹시 귀찮고 성가신 일입니다. 군대에서 1분 안에 샤워를 끝내라는 조교의 날카로운 목소리를 들으면서 샤워하는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보람찬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미지근한 물에 천천히 하는 샤워는 행복감을 줍니다. 마음이 진정되면서 문득, '이런 시간만 있다면 하루 종일 진창에서 굴러도 좋다'라고 생각할 만큼 평화롭고 관대한 마음이 되지요.  


글을 쓰는 일도 비슷합니다. 강의를 듣거나 중요한 회의를 할 때 하는 메모는 마음이 급하고 성마릅니다. 글씨는 삐뚤빼뚤 날아가고 그와 함께 펜을 쥔 손도 피곤해지지요. 하지만 잠들기 전, 하루를 돌아보는 글쓰기나 한 해의 끝에 일 년을 돌아보며 글을 적다 보면 마음에 담겼던 응어리나 불안, 불만, 짜증 등이 엉켰던 실타래 풀리듯 풀어집니다. 손에 쥔 펜도 귀하게 느껴지고 글이 담기는 종이도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글쓰기 자체가 명상이기 때문일 테지요. 아울러 그와 함께 '느림'도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천천히 길을 걸으며 일부러라도 발걸음을 늦추면 속도로 인해 눈에 띄지 않던 풍경과 부산한 마음이 닫아버렸던 소리들이 눈과 귀에 들어오잖아요. 그럴 때면 제 생활이, 삶이 소중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무엇이든 마음이 내키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내달리지 않게 일부러 천천히 해봐야겠어요. 그러다 보면 제 인생 전체를 소중히 여길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주저앉지 않되 한 박자 쉬고 갈 수 있는 여유, 그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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