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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Apr 10. 2022

[단편소설] 노인 존엄사 장려법

- 부제: 올드맨 킬러

[참고] 4년 정도 전에 창작한 단편소설입니다. 단편으로 담기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현재 장편으로 조금씩 개고 중입니다. 조금 설정이 아쉽긴 하지만, 보관용, 추억용으로 올려놓습니다. 






노인 존엄사 장려법



















지은이: 강호



1.


“저 자식 못 잡으면 나도 오늘 밤 세상 뜹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분당의 고층 아파트 앞 자동차에서 105동의 12층 베란다 창문을 노려보며 나지영 형사가 이를 뿌드득 갈았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집중해. 놓친다는 생각 자체를 아예 하지 마. 절대 놓쳐서는 안 돼.”


선배인 김철규 형사가 말했다. 강민석 전 의원. 그자가 지금 저기 아파트에 숨어있다. 저리로 오늘 밤 특수 성형의가 방문하기로 되어 있다. 그 수술이 행해지기 전에 강의원을 특임 수사대로 데려가야 한다. 아직 그는 범죄자 신분은 아니다. 하지만 그를 놓치면 우리 모두가 범죄자가 되는 거다. 나지영 형사의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1년 전, 특임 수사대 심재만 과장이 김철규와 나지영을 은밀히 불렀다. 


“너네들, 강민석 전의원 알지?”


김철규와 나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을 왜 모르겠는가. 40년 전 부패와의 전쟁에서 꺾일 줄 모르는 강인한 의지로 비리 고위공무원과 재계, 정계의 인사들을 감옥에 집어넣었던 서슬 퍼런 검사. 결국 검찰 상부와 정계의 결탁으로 억울하게 옷을 벗게 되자 곧바로 정치에 투신했고, 놀라운 정치력을 발휘해 부의 양극화와 부정부패를 일거에 제거할 놀라운 법안을 통과시킨 장본인. 거물 정치인 강민석. 그런데 과장은 왜 그 사람을 아냐고 묻는 걸까. 


“그 양반이 사라졌어.”


순간 김철규와 나지영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사람은 사라지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나지영 형사가 더듬거리며 되물었다. 


“가... 강민석 의... 원이 잠수를 탓... 다는 말입니까, 지금?”


심 과장이 입맛이 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나형사가 책상을 두 팔로 쾅 치며 일어섰다. 


“이게 말이 돼? 이건 아냐. 이래선 안돼. 그 사람은 그렇게 사라지면 안 될 사람이잖아요.”


나형사가 이성을 잃고 울부짖었다. 눈에서 불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김철규 형사가 나형사의 팔을 간신히 부여잡고 자리에 앉혔다. 김형사가 물었다.  


“잠수를 탄 게 맞습니까? 가족들과 관계자들에게는 수소문해 보셨어요? 혹시 비밀리에 여행을 간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아냐, 다 알아봤어. 그 양반 사모님은 재작년에 노인 존엄사로 타계하셨고 60 된 자제분이 하나 있는데 그 가족들도 도무지 어디에 갔는지 알 수가 없다는 거야. 벌써 한 달 됐어. 정말 그 양반이 이럴 줄은 몰랐지. 하지만 지금 저기 파란 집에서도 난리가 났어. 알잖아? 만약 이대로 강의원을 못 찾고 1년이 지나면 이 사태 수습 못해. 아무도 법을 따르려 하지 않을 거야. 법을 입법한 장본인이자 지난 40여 년,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법을 지켜낸 강의원이 자신만 몸을 빼려 하는 거거든.”


나지영 형사는 이를 악물었다. 강민석 의원. 그자가 정말 ‘세탁’을 하고 ‘절간’에 숨어들었다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온 나라가 뒤집어질 거야. 강의원을 찾지 못하면 폭동에 가까운 일들이 벌어질지도 몰라. 


‘그리고... 그리고... 그자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 자신이 그를 용서할 수 없을 거야.’


나형사는 얼굴이 새빨갛다 못해 곧 터져버릴 것 같은 모습으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러다 나지막하게 씹어 뱉듯 말했다. 


“개새끼....”


2.


2055년. 올해는 ‘노인 존엄사 장려법’이 시행된 지 40년이 되는 해다. ‘노인 존엄사 장려법’. 당시 마흔 살의 젊은 국회의원이 법을 발의하면서 엄청난 대중선동과 여론 세몰이를 통해 통과시킨 법이다. 그 국회의원이 바로 강민석 의원이었다. 

강의원은 경상도 촌구석에서 태어나 어려운 집안 환경 때문에 중학교만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검정고시로 통과했다. 주경야독으로 낮에는 택배 배달원, 마트 포터, 편의점 알바, 참치 배달 등등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고 밤에는 잠잘 시간을 쪼개 공부를 했다. 대학입시 대신 사법고시에 도전해서 패스했다. 머리가 아주 좋고 독기가 있었던 탓에 사시 합격점수가 무척 높았다. 강의원은 검사를 지원했다. 

갓 부임한 젊은 검사에게 세상은 어두움 그 자체였다. 온갖 곳에 부정과 부패가 넘쳐났다. 그는 먼저 비리 공무원들의 척결에 나섰다. 어떤 사건이든 그의 손안에 들어오면 관용이란 없었다. 진돗개처럼 물고 늘어졌다. 뇌물을 받은 국회의원, 회사자금을 횡령한 대기업 오너 등등이 차례차례 강민석 검사에 의해 쇠고랑을 찼다. 검찰 윗선도 어지간한 일에는 그 젊은 검사에게 싫은 소리나 간섭을 할 수가 없었다.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진돗개에게 물리고 싶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그가 곳곳의 부패들을 차례차례 심판해 나가자 국민들은 그에게 엄청난 지지와 존경을 보냈다. 특히 젊은 대학생들은 그에게 거의 광신에 가까운 지지를 보내주었다. 누군가가 강민석 검사를 조금이라도 나쁘게 말하는가 싶으면, 사정없는 여론의 뭇매가 날아왔다. 소셜미디어 상에서도 집단 따돌림에 가까운 욕이 쏟아졌다. 


- 강민석을 욕하는 놈은 뒤가 구린 꼴통이다.

- 그 사람 말고 누가 더러운 부패의 고리를 지금까지 끊으려 했단 말인가

- 강민석 검사 건드리지 마라. 뒤진다.

- 밤에 칼 맞을 수도 있다.


그러다 강민석 검사가 방산업체 비리를 파고들기 시작하자 검찰 수뇌부가 나섰다. 온갖 압력과 억지 감찰이 이어졌다. 부패와 싸우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강민석 검사의 성격을 문제 삼아 그가 검찰규정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고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찰은 그의 옷을 벗겼다. 억울하게 옷을 벗은 강민석은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하더니 곧바로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그의 정치 입문 일성은 다음과 같았다.


“더러운 판을 뒤집으려면 결국 정치가 답이었습니다. 제가 이 판 한번 뒤집어보겠습니다.”


당연한 수순으로 그는 당시 정권을 바꾸고자 열망하는 야당 국회의원으로 영입됐다. 그 당시 강의원은 기회만 있으면 나이 든 사람의 탐욕을 질타했다. 


“이 나라는 나이 먹은 노인네들의 추악한 탐욕으로 인해 망해가고 있어요. 그들이 온갖 기득권과 재력을 움켜쥐고 젊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거죠. 대신 온갖 추문만 양산하고 있습니다. 이러면 나라가 망해요. 확실한 개혁이 필요합니다.”


강의원이 과거 검사실에서 만난 노인들은 탐욕스러웠고 무례했으며 문란했다. 사회에 조금도 기여하지 못했고 기여할 생각도 없는 암적 존재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저항은 끈질겼다. 어지간해서는 탐욕을 거둘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가진 강력한 금권으로 뛰어난 언변의 변호사들을 사들여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갔다. 정재계의 노인들은 모두가 하나의 카르텔을 만들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켜 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는 도덕으로 호소할 수도 없었다. 마치 도덕이 없는 사람들 같았다. 인정에 호소할 수도 없었다. 그들의 심장은 싸늘히 얼어붙은 것 같았다. 그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뭔가 한방이 필요해. 저 나이 든 노인들을 한방에 제압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해.’


강의원은 합법적으로 그들의 돈을 빼앗고 그들의 권리를 제한할 한 방의 묘수에 골몰했다. 그 시절의 사회상황도 그런 한 방의 묘수를 필요로 하는 것 같았다. 부의 양극화는 유사 이래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었다. 또 사회 전체가 늙어가고 있었다. 출산율은 전 세계 최하위로 떨어졌다. 젊은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았다. 아이를 키울 돈이 없었다. 데이트도 하지 않았다. 그럴 여유도 없었다. 대물림되는 부와 권력, 일자리로 인해 오직 증오만 마음속에 똬리 틀고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나이 든 늙은 악마들이 자신들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믿었다. 

인구의 비율도 노인인구가 20프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복지예산은 점점 더 늘어만 갔다. 이대로 가면 정부 예산의 절반 이상을 노인들을 먹여 살리는데 써야 할지도 몰랐다. 각종 연금은 고갈 직전이었지만 사회적 합의는 불가능했다. 그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보장된 연금과 복지혜택을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오직 국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제도를 정비하고 출산을 장려해야 할 정치인들은 노인들 표를 의식해서 이렇다 저렇다 한마디도 못 꺼내고 있었다. 

강민석 의원은 그 틈새를 노리기로 했다. 하나하나 단계별로 전략을 세웠다. 처음부터 무작정 노인들에게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일단 강의원은 7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서 투표권을 회수하기로 했다. 그는 젊은 사람들의 분노를 이용하기로 했다. 우선 이런 논리를 내세웠다. 


“왜 만 19세 미만의 학생들은 투표권이 없을까요? 너무 어리다는 게 이유입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70세 이상의 노인들 역시도 이제는 투표권을 내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간의 생물학적인 기능은 70세가 되면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기억력과 판단력의 저하, 치매 등등으로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이제는 어린아이들이 투표권이 없는 것처럼 나이가 많이 드신 어르신들도 투표권을 양보해야 할 때입니다. 그분들이 더 이상 이 나라의 정치를 좌우하겠다는 것은 탐욕이고 노욕일 뿐입니다. 이제 미래는 젊은이들의 손에 맡깁시다.”


당연히 엄청난 반발이 있었지만 강의원은 굴하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대중적인 인기를 십분 활용했다. 몇몇 친분이 있는 연예인들과 토크콘서트를 조직해서 전국을 순회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젊은이들의 분노에 호소했다. 


“이 나라는 이제 여러분들의 것입니다. 이제 살날이 얼마 안 남은 노인들이 표를 무기로 사회를 압박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멍청하게, 무력하게 그냥 앉아서 저 나이 든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꼬박꼬박 타가는 연금 뒷바라지나 하고 있을 겁니까? 말이 통하지 않으면 짱돌이라도 던져야 합니다. 그냥 무력하게 있으면 평생 소처럼 일하고도 배고프게 살 겁니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어요.”


이런 말들이 나올 때마다 관객석에서는 갈채가 터져 나왔다. 여론의 지지가 놀라웠다. 몇몇 지식인들이 우려를 표했지만 그들은 곧바로 반동 수구꼴통으로 지목받고 사회적으로 매장됐다. 몇 명은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진보적 지식인으로 존경받던 진정수 교수가 ‘아무리 사회가 양극화되었더라도,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없더라도, 이런 식으로 우리 사회를 노인과 젊은이로 나누는 것은 전형적인 나찌식 프레임이다. 노인들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매우 위험한 사고다.’라고 강민석 의원을 비판하다가 한 과격한 젊은이에게 황산테러를 당했다. 그 사건 이후로 더 이상 표면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렇게 70세 이상의 투표권이 박탈됐다. 

그렇게 되자 각종 복지제도가 수정됐다. 70세 이상의 노인들은 지하철 무임승차 권한도 없어졌고, 노약자석은 유아석과 임산부석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일부 과격한 코미디언들은 노인 혐오에 관한 유머를 방송에서 공공연하게 떠들었다. 


“사람은 사람인데 사람이 아닌 것이 뭔지 압니까? 식인. 살인. 그리고 노인입니다.”


말도 안 되는 상식 이하의 유머에 관객들은 요란하게 자지러졌다. 한물간 연예인들은 사회의 공적이 된 노인들을 잘근잘근 씹으며 재기에 성공했다. 전성기가 지난 영화감독들도 다투어 노인들의 탐욕과 악행을 고발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의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관객들은 그 영화에 열광했고 생기를 찾은 퇴물 감독들은 다시 한번 더 사납게 노인들을 헐뜯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들에게 노인들은 좋은 먹잇감이었다. 다른 무엇보다 이들을 ‘씹어대는’ 것은 사회적인 비난에서 면책됐다. 독하게 물어뜯을수록 대중들은 환호했다. 노인층이 가진 가장 안 좋은 면들을 패치워크 식으로 이어 붙인 ‘노인 혐오 포르노’라고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비판했지만 대중들은 이성보다는 감성에의 호소를 훨씬 지지했다.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지자 강민석 의원은 2단계 전략을 펼치기 시작했다. 자신의 주변에 유명한 가수와 연예인들을 포진시켰다. 특히 큰 힘이 되어준 것은 당시 드라마 여주인공으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던 김인애였다. 드라마에서 지고지순한 사랑을 가졌으면서도 삶을 용기 있게 헤쳐나가는 여주인공 역할을 맡았는데, 대중들은 그런 김인애의 이미지를 사랑했다. 그녀는 아름다운 얼굴과 자상한 미소를 띠고 방송에 나와서 고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전 절대로 100살까지 살지 않을 거예요. 왜 나이 들어서 젊은 세대에게 부담을 지워야 할까요? 그렇게 살면 제 마음이 너무 불편할 것 같아요. 전 불꽃처럼 살다가 딱 70살 되는 해에 삶을 마감할 겁니다. 물론 가진 재산은 전부 사회에 환원하고요.”


그러자 소셜미디어에서는 그녀를 칭송하는 글들이 넘실거렸다. ‘김인애 칭찬릴레이’가 이어졌다. 그러면서 한 사람이 자신도 김인애 씨처럼 ‘노인 존엄사’ 하겠다는 의견을 말하고 다른 사람을 지목하는 릴레이가 이어졌다. 공개적으로 지목당한 사람이 동조하지 않으면 비난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곧바로 노인 존엄사 추진 재단이 만들어졌고 존엄사를 사회적으로 허락하라는 입법 운동이 일어났다. 의료계에서는 외국의 사례들을 들이대며 반색했다. 새로운 블루오션이 되리라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런 압박이 들어오자 여야 의원들을 무언가에 떠밀리듯 존엄사를 합법화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조건은 다 만들어진 거였다. 그 사이에 노인들의 삶은 일부 부자 노인들을 제외하고는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지고 있었다. 노인 자살률과 와병률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일부에서는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냐는 탄식들이 터져 나왔다. 노인범죄도 그에 따라 가파르게 상승했다. 신문에서는 연일 노인범죄를 기사화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그런 노인들을 일반화해서 도매금으로 비난하기 일쑤였다. 누가 더 그런 노인범죄에 분노하는 글을 많이 올리느냐에 따라서 팔로워 수가 확확 달라졌다. 

일부 언론에서는 부자 노인들의 행태에 대한 기획기사들을 지속해서 실었다. 어느 그룹 누구는 몇 명의 젊은 첩을 거느리고 산다더라, 자가용 운전자가 맘에 들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뺨을 때리고 심지어 불구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 그렇게 몸을 다치게 해 놓고도 사과는커녕 수표 몇 장 던져주고 ‘이제 됐지?’ 했다더라, 이런 ‘카더라 통신’이 버젓이 기사로 게재됐다. 그런 뉴스만큼 구독률을 높여주는 기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강의원은 그럴수록 노인 존엄사 캠페인을 더 강화시켜 나갔다.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전액 환원하고 존엄사를 택하는 노인들을 ‘아름다운 결단, 깨끗한 마무리’라며 치켜세웠다. 


‘미래세대를 위한 아름다운 결심! 다 주고 존엄하게 죽겠다! - 노인 존엄사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이런 제하에 노인 존엄사를 선택한 사람들의 사연과 인터뷰가 신문과 잡지, 방송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생물학적 기능상 70대 이후에는 치매 및 각종 심혈관계 질병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기사와 함께, 그런 병을 치료하기 위해 드는 사회적 비용은 천문학적이라는 해설이 따라붙었다. 물론 강민석 의원의 의원실에서 치밀하게 기획한 대로였다. 

사회적 여론이 무르익었을 때 모든 제반 준비를 마친 강의원은 마침내 ‘노인 존엄사 장려법’을 만들었다. 60세 이상의 노인들은 10년 안에 생을 마감할 ‘권리’를 갖는다는 내용이었다. 말이 권리요 장려지 실제로는 ‘의무’였다. 70세가 넘어가면 건강보험 혜택도 없어지고 대중교통혜택도 박탈됐다. 아파도 치료비가 비싸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70세 이상에게는 매년 보유재산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게 했다. 그나마 돈 있는 부자 노인들도 몇 년 안에 알거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법이 다시 개정됐다. 존엄사를 권리가 아닌 의무로 명시하는 법이었다. 이제 이 나라에서는 나이 70세 이상은 살아있으면 안 되는 것이 됐다. 60세부터 ‘존엄사’를 준비해야 했다. 70세가 되기 전에 세상을 스스로 마감해야 했다. 그 이상의 나이가 되면 존재 자체가 위법인 셈이 된 것이었다. 

누군가 나치의 유태인 학살보다 더 나쁜 인류 최악의 악법이라 울부짖었지만 다수의 사람들에게 그런 비판은 ‘노욕’으로 매도당했다. 젊은이들은 지난 수년간 노인복지혜택을 줄이고 젊은 층을 위한 양육비, 교육비, 주거비 지원 혜택에 엄청난 수혜를 입었다. 딱 70살까지만 불꽃처럼 살고 존엄하게 죽으면 모두에게 이로운 것 아니냐는 생각이 온 사회에 팽배했다. 그렇게 ‘노인 존엄사 장려법’은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결과 어처구니없게도 매년 수십만 명의 노인들이 침대에서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


3.


“무슨 수를 써서든 찾아. 그래서 잡아와. 우리 부서의 명예가 걸렸어. 이 빌어먹을 영감탱이. 갑자기 노망이 나서 더 살아볼 거라고 잠수 탄 모양인데, 일단 ‘나이 세탁’ 전문가들부터 샅샅이 뒤져. 출국금지 조치부터 CCTV 3D 스캐닝 망 전부 동원해서 찾아! 그 양반 존엄사 예정 날짜가 이번 달 말이야. 그전까지 못 잡으면 너네랑 나랑 저기 한강물에 코 박고 죽자.”


심 과장은 그렇게 말했었다. 김철규는 나형사를 데리고 일단 ‘노인 세탁’ 업자인 매부리부터 잡아들였다. 매부리가 취조실에 들어오자마자 나형사는 CCTV에 손수건을 얹었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매부리의 배를 걷어찼다.  


“강민석 의원 누가 세탁했어? 너야? 너 아니면 어떤 새낀지 빨리 불어. 간도 큰 놈일세.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강민석 의원을 세탁해? 그 양반은 절대 세탁해서는 안 될 사람이야. 제주도를 준다고 해도 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라고. 이건 온 나라 전체가 훼까닥 뒤집힐 수도 있는 사안이거든. 언론 쪽에서도 벌써 냄새를 맡았어. 시간 없어. 좋은 말로 할 때 빨리 불어라. 피떡이 되어서 나가고 싶지 않으면.”


매부리가 배를 움켜쥐고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대답했다. 


“제가 미쳤어요? 강의원을 세탁하게? 저 손 씻었다니까 왜 자꾸 저만 갖고 그러세요? 그리고 지금 세탁소 하는 애들도 강의원이랑 같이 법 만든 의원들은 절대 세탁 안 해요.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 그래도 안 해요. 지난번에 김중배 의원 세탁했던 녀석, 거의 이중삼중으로 얽혀서 50년 형 받았어요. 그거 보고도 우리가 세탁할 거 같아요? 진짜 전 모릅니다. 차라리 ‘절간’ 아이들을 족쳐보세요. 그게 빨라요. 세탁 못했을 거예요. 그냥 절간에 한 10억 주고 3-4년 살기로 했을 거예요.”


나이를 한 10년쯤 젊게 조작해주는 사람들을 ‘세탁소 주인’이라고 하고 도망친 도피 노인들을 숨겨주는 업체를 이 세계에서는 ‘절간’이라고 한다. 그걸 듣고 있던 나형사가 매부리의 턱을 주먹으로 날렸다. 곧이어 앞돌려차기로 배를 내지르며 쏘아붙였다. 


“곱게 말로는 안 되겠네. 뭐 절간은 안 뒤진 줄 알아? 전국의 모든 절간이란 절간은 다 뒤졌어. 오죽하면 구두 굽이 이 모양이 됐겠냐? 빨리 토해. 어느 절간이야? 안 토하면 오늘 너 여기서 걸어서는 못 나간다.”


그러면서 나형사는 주머니에서 수류탄을 꺼내어 매부리의 입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수류탄 핀에 손가락을 걸었다. 김형사가 보다 못해 나형사의 팔을 잡으며 말렸다. 


“나형사, 왜 이래? 잠깐 나가자. 이러다가 정말 사고 치겠어. 냉정을 좀 찾아.”


특임대 현관 옆 흡연실에서 김형사가 담배를 하나 꺼내 불을 붙여 나형사에게 건넸다. 나형사는 담배를 받아 들고 깊이 들이마셨다가 하늘로 연기를 흩뿌렸다. 그러면서 매부리의 입에 밀어 넣었던 수류탄을 한 손으로 마치 공인 것처럼 공중으로 던져 올렸다가 받았다. 


“선배, 난 정말 강민석 그 작자를 용서할 수가 없어. 세탁업자도 그렇고 절간 주인도 그렇고. 선배는 내 이런 기분 알아?”


“알아, 대충은.”


나형사가 다시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선배는 몰라. 내가 우리 아버지를 어떻게 보냈는지. 아버지가 떠나면서 내게 남긴 말을 잊을 수가 없어.”


김형사도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대략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짐작이 갔다. ‘노인 존엄사 장려법’이 통과되고 나서 막상 시행에 들어갔을 때, 집집마다 있을 수 없는 일들이 펼쳐졌던 것이다. 강민석 의원이 만든 세대전쟁의 프레임에 갇힌 젊은이들은 자신의 부모가 깨끗한 존엄사를 선택해주기를 바랐다. 젊은이들은 머뭇거리는 부모를 거칠게 몰아붙이곤 했다. 부모가 ‘세탁’을 하고 ‘절간’에 들어가려는 것은 신고하는 자식도 있었고, ‘절간’에 들어간 부모가 창피하다며 자식이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다. 나형사도 아마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었다. 


“아버진 그런 ‘노인 존엄사’는 인륜을 망치는 인류 최고의 악법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존엄’이라는 말의 본뜻을 망가뜨리지 말라고도 하셨고요.”


나지영 형사의 아버지는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수였다. 그는 노인의 투표권이 박탈될 때부터 줄기차게 그런 움직임에 대해 글을 쓰고 반대의 의견을 분명히 밝힌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존엄’이라는 말이 이토록 타락하게 된 작금의 현실이 개탄스럽다. ‘노인 존엄사 장려법’이 통과되고 난 뒤 집집마다 모종의 ‘살인’이 벌어지고 있다. 인류 역사상 매년 수십만 명을 살해하는 악법이 있었던가? 과거 중국의 문화혁명 때도 자식이 아비를 고발하고 모욕하고 뺨을 때리는 일이 있긴 했다. 그 실험은 완전한 실패로 끝났고 중국의 씻을 수 없는 과오가 됐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처럼 수십만의 생명을 죽음으로 단숨에 내몰지는 않았다. 지금 우리 사회가 통과시킨 이 야만의 법은 앞으로 인류사에 길이 남을 치욕이 될 것이다. 


나형석 교수는 이런 칼럼을 기고했지만 받아주는 언론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어서 개인 블로그에 칼럼을 올리자 블로그가 일순간 험악한 댓글로 넘쳐났다. 


- 어용교수의 파렴치한 ‘노욕’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 젊은이들을 위한 숭고한 ‘희생’을 ‘살인’으로 매도하다니..

- 이런 x새끼, 이런 글을 쓰고도 무사하길 바라나?

- 똥물에 튀겨 죽일...

- 에휴... 이래서 늙으면 죽어야...

- 당신이 우리 대학의 교수라는 사실이 치욕스럽네요

- 그냥 죽기 싫으면 곱게 죽기 싫다고 하세요, 말도 안 되는 궤변 늘어놓지 말고...

- 가족들이 불쌍하다, 늙은 새끼야


나형사는 그때 한창 예민한 대학생이었다. 그녀는 대학에서 세대 간의 갈등을 ‘세대전쟁’으로 학습했다. 선배들은 그녀에게 우리의 미래는 저 탐욕스러운 노인네들을 어떻게 끝장내느냐에 달렸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그 혁명의 시작은 ‘가족’부터 시작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모두가 집안에서 자신의 부모를 ‘존엄사’로 이끌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없는 거야,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뭔가에 홀린 듯 나형사는 학교에서 토론한 그 말 그대로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나 교수와 논쟁을 했다. 

나 교수는 하나밖에 없는 딸인 나형사를 무척이나 아꼈다. 갓난아기 때부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처럼 끔찍이 돌보았다. 그랬던 그 아이의 입에서 ‘아빠가 부끄러워’라는 말이 흘러나왔을 때 나 교수는 이제 어쩔 수 없다고 느꼈다. 토론 끝에 나형사는 그 길로 집을 나왔다. ‘노인 존엄사 장려법’에 반대하는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서, 라는 마음으로 ‘세탁’한 노인이나 ‘절간’에 숨어 들어간 노인들을 색출하는 특임대에 자원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마침내 나 교수가 존엄 사해야 할 날이 다가왔다. 

평상시 나 교수를 잘 찾지 않던 나형사가 나 교수의 집을 방문했다. 


“나형석 교수님, 길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어떤 방식으로 도망치든 나는 당신을 잡아서 사회보호청으로 넘길 겁니다. 개처럼 끌려가서 죽지 마시고, 존엄한 죽음을 택하십시오. 자식으로서 드리는 마지막 부탁입니다.”


나 교수의 안색이 바뀌었다. 더 이상 마지막 논쟁도 필요 없었다. 나 교수는 가까운 존엄사 전문병원에 들어갔고 3일 후 졸피뎀 등이 섞인 ‘해피 다이’라는 약물을 주사받았다. 침대에서 가물가물 잠들어가는 나 교수 옆을 나형사가 지켰다. 생의 마지막 순간, 나 교수가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영아, 네 마지막 부탁은... 이제 됐지? 행복해라... 그게 내 마지막 부탁이다...”


나 교수는 거기까지 말하고 숨을 거두었다. 그 순간 나형사는 뒤통수를 한방 제대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뭔가 잘못됐어. 이건 아냐.’ 지난 수십 년간 자신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가 갑자기 자각이 됐다. 엄청난 혼란이 밀려왔다. 아버지의 침상에서 삼일 낮밤을 울다 지쳐 혼절했다. 


“그때 잠시 미쳤었던 내 정신이 다시 돌아온 것 같았어요, 선배.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하지만 달리 아무 방법이 없었죠.”


나형사는 다시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잠시 병가를 가졌다가 복귀한 나형사는 ‘특임대’에서도 A급 랭크의 임무를 자원했다. 사회 유력인사들의 ‘잠적’을 막고 도망친 ‘도피 노인’들을 찾아내어 사회보호청으로 넘기는 일이었다. 노인 존엄사 장려법을 되돌릴 수 없다면 그 존엄사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부여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더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은 언론을 통한 여론몰이와 법으로의 강제 만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돈과 권력이 있는 노인들은 조용히 자신의 나이를 10년, 20년 젊게 만들었다. 비록 천문학적인 돈이 들었지만, 죽음을 유보할 수 있는 대가였기에 아낌없이 지불하는 노인들이 상당수였다. 당연히 범죄조직이 그 엄청나게 돈 되는 일에 끼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 곳곳에 은밀하게 ‘세탁소’와 ‘절간’, 그리고 ‘메이크 업’ 전문가가 암약했다. A급 랭크의 임무를 맡은 ‘특임대’는 그런 조직들을 소탕하고 불법으로 나이를 젊게 하려는 노인들을 체포해 법대로 존엄사의 ‘침대’ 위에 올리는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었다. 


“선배, 난 이 수류탄을 특임대 훈련받을 때 하나 훔쳐놓았죠. 만약에요, ‘노인 존엄사 장려법’을 만든 사람이 잠수 타면 이 수류탄을 그놈 입안에 넣어줄 거예요. 핀은 내가 갖고.” 


나형사는 담배를 비벼 끄며 수류탄을 다시 한번 공중으로 던져 올렸다. 


4.


“메이크업 떴다!!”


차 안에서 햄버거를 씹던 김형사가 나지막하게 외쳤다. 나형사의 눈이 커다래졌다. 


“저 양반은 국립 00 병원 정형외과 정병국 학과장 아냐? 메이크 업을 저런 양반이 뛰어? 이런 제기랄.”


나형사는 곧바로 뛰어나갈 기세였다. 그걸 김형사가 만류했다. 


“잠시 기다려. 저 양반이 올라가고 나면 곧바로 시술이 시작될 거야. 그 시작 시간에 덮치자. 5분 후에 올라가는 거야. 다 된 밥에 재 뿌리지 말고.”


나형사에게는 5분이라는 시간이 마치 5년같이 느껴졌다. 천만 명 가까운 이들을 ‘존엄사’로 밀어 넣은 사람이 자신은 더 살기 위해 성형을 하고 숨어 들려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구역질이 밀려 올라왔다. 김형사가 차에서 내렸다. 


“가지.”


두 사람은 105동 1206호 앞에 섰다. 현장을 급습하려면 아파트의 단단한 잠금장치를 녹여야 한다. 무소음으로 시건장치들을 녹여낼 수 있는 소형 폭약을 꺼냈다. 이웃집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을 만큼 조용한 폭발이 가능한 장비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나형사가 살짝 문고리를 비틀어 당겼다. 그런데 놀랍게도 문이 잠겨있지 않았다. 나형사와 김형사의 눈이 서로 마주쳤고, 김형사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형사가 허리춤에 찬 권총을 뽑아 들고 채비를 했다. 손가락 신호로 셋, 둘, 하나를 꼽고 문을 힘차게 당겨 열며 뛰어들었다. 


“어서 오시게. 잘 찾아오셨네. 문을 따는 수고로움을 덜어드리려 열어두었지.”


막상 수술이 행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간 ‘절간’의 거실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성들이 스무 명 가까이 서있었고, 그 한가운데 소파에 강민석 의원이 편안한 복장으로 앉아 있었다. 나형사가 그런 강의원에게 총구를 겨누며 외쳤다. 


“허튼수작하지 마!”


그때였다. 나형사의 관자놀이에 총구가 닿았다. 


“나형사, 미안하다. 총 내려놔.”


나형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김형사가... 어떻게 내게 총을 겨눌 수가 있지? 잠시 이 순간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머뭇거리고 있을 때 검은 양복을 입은 중년 사내들이 나형사의 총을 빼앗고 무릎을 꿇렸다. 그리고 두 손을 뒤로 모아 결박하려 했다. 그걸 강의원의 옆에 앉아있던 여인이 제지했다. 


“아, 아, 그럴 것까지는 없지. 귀한 손님인데. 특히 얼굴을 다치면 안 되니까 살살 영양제나 놓아 드려.”


김인애. 강민석 의원과 30여 년 전부터 함께 보조를 맞추며 ‘노인 존엄사 장려법’을 선동한 여배우였다. 젊은 시절 특유의 고운 미모와 어려운 이들을 돕는 선행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녀는 어느 날 폭탄선언을 하며 강의원을 도왔다. 강의원이 생각하는 ‘노인 존엄사’를 적극 지지하며 아름답게 세상을 마감하는 법을 연일 방송과 강연을 통해 전파하고 다녔던 것인데, 그녀 역시 자신이 늘 생을 마감할 거라고 외치고 다닌 70세 생일을 1년 앞두고 사라져서 지금껏 나타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나형사는 나지막이 으르렁거렸다. 


“여기 숨어있었구나. 김인애.”


그때 나형사의 목덜미에 주삿바늘이 꽂혔다. 어느새 다가온 정병국이 주사기를 빼내며 말했다. 


“한 오 분 정도 있으면 기분 좋게 잠들 겁니다.”


나형사가 일어나려 하자 검은 양복들이 그녀의 어깨를 짓눌렀다. 강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탁자에 있는 양주병을 들어 양주잔에 따르며 말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혼란스러울 거라 생각하네. 초면에 실례가 많군. 나지영 형사님. 나형석 교수님의 따님이시지. ‘노인 존엄사 장려법’이 입법 통과되기 전에 가장 맹렬하게 반대했던 분이시지. 그런 분의 따님이 이번에는 ‘노인 존엄사 장려법’ 폐지를 반대하려고 이리 분주히 움직이고 계시니 참 아이러니야.”


“무슨 개소리야? 법의 폐지를 반대하다니?”


강의원이 양주를 따른 양주잔 하나를 김인애에게 건네며 자신의 잔을 들고 소파에 앉았다. 


“이런 역사적인 자리에 나형석 교수님의 따님을 모시게 되어 기쁘군. 당신에게 새로운 삶을 건네줄 분이니 당신이 직접 설명하는 게 좋지 않을까?”


강의원이 김인애를 보고 말했다. 김인애가 양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문을 열었다. 


“그럴까요? 나지영 형사님, 우선 여기까지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린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나형사님을 위해 제가 간단하게 설명을 드릴게요. 오늘 강민석 의원과 저 김인애는 ‘노인 존엄사 장려법’을 끝내려 해요. 우리 둘은 오늘 법적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마지막으로 존엄사 하는 남녀가 되는 거죠.”


“....?”


“무슨 뜻이냐면요, 오늘 우리는 죽기 전에 방송으로 이런 내용을 내보낼 거예요. 김비서님 그 영상 좀 보여드리세요.”


김 비서라 불린 검은 양복의 중년 사내가 태블릿 pc를 켜서 들고 왔다. 동영상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강민석 의원과 김인애가 나란히 앉아서 인터뷰하는 동영상이었다. 


“지난 40년 동안, 우리는 젊은 세대를 위해 스스로 존엄한 죽음을 택한 어르신들 덕에 많은 혜택을 입고 살아왔습니다. 젊은 부부들에게 무료임대주택이 지급됐고, 각종 육아 장려금과 일자리가 마련됐습니다. 그렇게 위기를 헤쳐 나오다 보니 이제 우리 경제도 많이 회복이 됐습니다. 노령의 연금도 지급이 가능할 정도로 국고도 튼튼해졌습니다. 우리의 어르신들은 미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소중한 ‘생명’조차 포기할 만큼 헌신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과거의 ‘희생’을 더 강요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여러 사회지표들은 우리 사회가 노인층이 많은 역피라미드 형태의 인구 구성에서 다시 젊은이들이 많은 피라미드 형태의 인구 구성으로 회복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 의원은 바로 오늘 제가 발의하고 통과시킨 ‘노인 존엄사 장려법’에 따라 거룩한 생을 마감하려 합니다. 부디 바라는 바는 저와 제 옆에 일생을 함께 한 동지 김인애 여사가 ‘노인 존엄사 장려법’에 의거해 존엄사 하는 최후의 2인이 되는 것입니다. 제 손으로 만든 법, 제 손으로 닫고 가게 해 주시길 바랍니다.”


강의원은 화면에서 그렇게 말하고 김인애와 함께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었다. 


“이걸 왜 이런 으슥한 절간에서 하는 거지? 그냥 방송사 불러서 생방으로 해도 되는 거 아냐?”


나형사가 소리쳤다. 강의원이 양주를 다시 한 모금 마시고는 대답했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그러면 우리가 진짜 죽어야 하잖아. 그럴 수는 없지. 그동안 욕도 많이 먹으면서 힘들게 살았는데, 한 20년은 좀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어?”


“그게 무슨 뜻이야?”


김인애가 다시 말을 받았다. 


“여기 계시는 정병국 선생님은 우리나라 최고의 성형외과 의사신데, 최근에 아주 놀라운 시술에 성공하셨어요. 바로 ‘안면이식 수술’이죠.”


“......!!!”


“그래요. 나형사님의 얼굴을 지금부터는 제가 빌리려고요.”


나형사는 그 순간 머리끝부터 어떤 전율 같은 것이 온몸을 휘감는 듯했다. 김형사를 노려봤다. 


“선배!! 선배는 이 모든 사실을 다 알고도... 나를... 나를 여기에....”


김형사가 고개를 떨구었다. 


“나형사, 미안하다. 하지만 강민석 의원이 약속해줬어. 나형사를 이곳으로 데려오기만 하면 ‘노인 존엄사 방지법’을 그날로 폐지하겠다고. 그러면 다섯 달 뒤로 존엄사가 예정되어 있는 내 어머니는 내 효도를 받으며 더 사실 수 있어.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뭔가 착각한 것 같은데. 김형사 어머님은 더 사실 수 있지만, 김형사의 효도를 받기는 어려울 것 같아.”


강의원이 말했다. 그 순간 김형사의 목에 어느새 주삿바늘이 꽂혔다. 놀라 돌아보려 할 때 검은 양복들이 김형사를 제압해서 바닥에 누였다. 


“김형사 얼굴은 내가 좀 빌려야겠거든.”


바닥에 엎드린 김형사가 온몸을 떨며 고개를 바닥에 처박고 이마를 쿵쿵 찧었다. 나형사가 독기 서린 눈으로 강민석을 노려봤다. 


“천만이 넘는 사람들을 죽여 놓고 당신은 살아남겠다고? 이 살인마, 철면피 같은...”


“그런 말 하면 내가 섭섭하지. 나지영 형사 당신이 당신 아버지를 존엄사로 몰아넣은 것 아니었나? 그 어른이 스스로 ‘존엄사’ 해주시는 바람에 ‘노인 존엄사 장려법’에 대한 반대의견이 쑥 들어갔었는데? 그 일등 공신은 나형사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 법 덕분에 너네들 같은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 혜택을 입었냔 말이야. 생각해봐. 그 법이 아니었으면 너희들은 직업도 없고 아무런 사회보장도 없는 암울한 일생을 살았어야 하지 않았겠어? 다 내가 모든 욕을 먹어가며 그 법을 만든 덕분에 지금껏 호의호식하며 살아온 거잖아. 네 말대로 더 이상 사람을 억지로 죽일 필요는 없지. 하지만 그렇다고 꼭 내가 죽어야 할 이유도 없는 거야. 나는 그만큼 사회에 공헌을 했어. 너희 같은 젊은이들 중 한 명의 목숨과 맞바꾸어도 될 만큼의 기여는 했단 말이지.”


“이 나쁜 새끼!!”


“아아... 그렇게 막말할 건 없고. 너무 화를 내면 예쁜 얼굴만 상해. 우리 김인애 동지가 빌릴 얼굴인데 조심조심 다뤄줬으면 좋겠군. 어때 조금씩 졸음이 밀려올 거야. 자, 정선생님. 이제 수술 시작하시죠. 저와 이 사람도 마취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고마워. 나형사. 그렇게 무서운 얼굴로 보지 말아. 우리가 이제 더 이상 이 땅에서 노인들이 ‘존엄사’하는 일은 없도록 매듭을 지어줄게. 자네들은 우리 대신 우리 얼굴을 하고 죽어주면 되는 거고.”


김인애가 천사의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 모습은 아름다운 얼굴을 한 악마 같았다. 나형사가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외쳤다. 


“당신들은 억울하지도 않아? 이 사람들을 이렇게 살려줘도 된다고 생각해?”


하지만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 어느 누구도 동요하지 않았다. 강의원이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여기 있는 이분들, 다 메이크업하고 세탁한 분들이야. ‘노인 존엄사 장려법’이 폐지되면 나와 함께 남은 여생을 누릴 분들이란 말이지. 뭐, 돈은 벌만큼 벌어놓았고.”


그때 매부리가 복도 반대편의 방문을 열고 묘한 미소를 지으며 나왔다. 


“나형사, 주먹이 맵더구먼. 아무리 형사님이 세탁소와 절간 대표이사님을 불라고 해도 그건 곤란하지. 지금까지 내가 누구 덕에 이 ‘세탁소’를 꾸리며 호의호식할 수 있었는데?”


나형사는 또 한 번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강의원이 세탁소와 절간의 대표이사라고? 앞에서는 노인을 죽음으로 몰고, 뒤에서는 죽기 싫어하는 노인들에게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였다고? 이런 피를 말려 죽일... 그때 매부리가 나형사에게 다가왔다. 천천히 나형사를 일으키더니 주먹으로 힘껏 나형사의 배를 내질렀다. 나형사가 억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취조실에서 얻어맞은 것 생각하면 아주 치가 떨리네. 일어나 이 년아. 나한테 딱 세대만 더 맞자.”


김인애가 수술실로 가기 위해 소파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얼굴은 조심해주세요.”


그때 나형사가 몸을 확 일으켜 매부리의 입에 무언가를 쑤셔 넣었다. 그리고는 매부리의 배를 발로 힘껏 내질렀다. 매부리가 강민석 의원의 발치에 쓰러져 입안의 것을 토해냈다. 수류탄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검은 양복들도 구경만 할 뿐이었다. 나지영 형사가 손가락에 걸린 수류탄 핀을 빙빙 돌리며 씹어 뱉듯 말했다. 


“이거 한방이면 외롭진 않겠네. 여기 모인 사람들 모두 함께 갈 거니까.”


강민석, 김인애, 김철규, 매부리, 정병국, 검은 양복의 사나이들.... 방안에 모여있던 이들의 얼굴에 공포와 낙담이 흘렀다. 그리고 몇 초 후, 엄청난 섬광이 방안을 휘감았다. 


다음날 아침 정부의 공식 발표가 있었다. 


 ‘오늘 부로 ’ 노인 존엄사 장려법‘은 폐지되었습니다. 어제 대국민담화를 마친 강민석 의원은 절친한 배우 김인애 씨와 함께 ’ 노인 존엄사‘를 위한 마지막 노인이 되었습니다. 정부는 그간 우리 사회를 위해 기꺼이 ’ 존엄사‘ 해준 어른들을 기리는 위령비와 조각상을 전국 시도에 제작하기로 결정했으며, ’ 도피 노인‘을 추적하기 위한 특임대는 해체가 결정되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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