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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Jan 27. 2023

우연인 듯 필연적인.

- <<앙: 단팥 인생 이야기>>에 대한 단상

저는 신문이나 책을 읽다가 좋은 책이나 영화를 소개받으면 메모했다가 주말에, 특히 토요일에 보곤 합니다. 한 주를 보내는 의식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소개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작품성이 높은 명화만 찾아보는 건 절대 아닙니다. 정말 그날 기분에 따라 잡식성으로 봅니다. 


토요일에 주로 보는 이유는 순전히 아주 어렸을 때 <<토요명화>>나 <<주말의 영화>>를 보았던 경험 때문입니다. 말론 브란도가 나오는 <<애꾸눈 잭>>을 아버지가 보고 계실 때, 왜 애꾸눈 잭인데 애꾸눈이 안 나오냐고 여쭤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트럼프에 나오는 얼굴 반만 보이는 남자를 '애꾸눈 잭'이라고 부른다지요. 어쨌든 <<서부 전선 이상 없다>> 같은 아주 고전적인 영화들을 <<토요명화>> 등에서 보았지요. 그게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넷플릭스와 비교해 보면 영화를 고를 수 없어 싫었고 영화를 고를 수 없어 좋았지요. 가끔 결정 장애에 빠져 영화를 고르지 못하고 몇 십 분을 흘려보내는 경우, 누구나 다 있지 않나요? 그런데 그 시절에는 뿔테 안경을 쓴 영화평론가 정성일 아저씨가 영화를 멋지게 소개해주곤 했지요. 설레며 기다리게요. 그런 기억 때문에 제 나름의 <<토요명화>>를 만든 거랍니다. 


하여튼 그런데 어떤 날인가는, 그냥, 우연히, 느낌이 와서 영화를 선택해 보았다가 꽂혀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앙: 단팥 인생 이야기>>가 그런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왜 보기 시작했는지 모릅니다. '앙버터'의 그 '앙'이라는 것 때문에 보기 시작했을까요? 아니면 토쿠에 할머니의 눈빛이 슬픈 듯 기쁜 듯해서 홀린 듯 보게 된 걸까요. 영문을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는 넷플릭스에서 저 영화를 클릭하고 빠져 들었습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날, 주중 행사처럼 해오던 산책을 나갔다가, 단맛 나는 향기에 끌려 도라야끼(팥빵의 일종) 집에 찾아가게 된 토쿠에 할머니는 그 집 사장인 센타로의 슬픈 눈빛 때문에 그 도라야끼 집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할머니는 도라야끼 집에서 팥 앙금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 장면에서 저는 폭 빠져들게 되었지요. 팥이 어느 바람을 맞고 어떤 과정을 거쳐 도라야끼 집까지 오게 되었는지 팥의 소리를 듣고, 팥과 물엿이 잘 어우러질 시간을 줘야 한다고 말하며 느릿느릿, 정성을 다해 만드는 팥 앙금은 먹어보지 않아도 제 미각과 영혼을 사로잡았습니다. 


영화는 한센병(나병) 환자 문제 등 꽤 자극적일 수 있는 사회 문제를 클로즈업하지 않고 그림의 원경처럼 배치합니다. 그래서 제 취향에 맞았습니다. 중요한 사회 문제에 대한 직설적인 주장은 그냥 신문이나 방송 보도, 또는 토론으로 보고 싶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는 그 어떤 직설적인 보도보다, 그 어떤 사회 주장을 담은 표 나게 담은 콘텐츠보다 더 많이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술의 위대한 부분인 듯합니다. 


토쿠에 할머니가 남긴 말이 귓전을 맴돕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세상을 듣기 위해서 태어났어...' 저는 특히 '듣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표현이 너무 좋았습니다. 세상의 온갖 소리들, 자연이 내는 소리, 인간이 내는 소리, 그리고 마음으로 들어야 하는 사물의 소리 등등. 그걸 들을 수 있다면 세상이 평화롭겠지요. 우리는 너무도 많은 소리를 틀어막고 살아가잖아요. 듣지 않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는 헤드폰과 이어폰으로 내가 듣고 싶은 소리 이외의 세상 모든 소리를 차단하지요. 그런 우리들에게 토쿠에 할머니는 나지막하게, 천천히, 제안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들어봐.' 이렇게요. 그 제안은 자유의 목소리입니다. 카나리아를 숲에 풀어주듯 우리의 삶을, 마음을, 풀어주는 목소리인 것이지요. 


어쩌면 요즘 조금 갑갑했나 봅니다. 어쩌면 조금 슬픈 눈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토쿠에 할머니를 만난 걸까요. 우연인 듯 필연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음이 울려 몇 자 적게 되었네요. 시간이 허할 때 벗님들도 한번 토쿠에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세상이 '다시' 들려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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