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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Feb 13. 2023

행복을 위한 유통 기한

- 신문을 버리며.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보면 이제 종이 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거의 없더군요.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이 아니면 대부분은 네이버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뉴스를 접하는 듯했습니다. 근데 저는 '아직도' 종이 신문을 봅니다. 그날 신문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뉴스들을 1면 머리기사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일단 매력적이잖아요. 다잡고 앉아 읽지 않더라도 탁자 위에 놓인 헤드라인만 보는 것도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려주는 신호 같거든요. 정치면이나 경제면에 대해서는 신문의 기사들을 제가 크게 신뢰하지는 않기 때문에 종종 스킵해서 대략 헤드라인만 훑는 편이지만, 문화면이나 IT면에서는 건질 것이 많습니다. 역량 있는 기자분들이 성심껏 지금 현재의 주요한 사건이나 트렌드 등을 포착해 주기 때문에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을 건지는 느낌으로 읽습니다. 


그런데 종이 신문을 읽다 보니 문제가 생기더군요. 자꾸 신문이 밀린다는 점입니다. 원래 생활하던 대로 지낼 때는 아침에 여유롭게 신문을 훑어볼 수가 있는데요.(제가 다니는 회사는 10시 반까지 출근해도 됩니다. 그래서 아침 시간이 여유 있어요. 참 좋은 회사입니다^^) 전날 술을 마시거나 축구 경기를 보느라 늦게 자서 아침에 늦게 일어나게 되면 그날 신문을 읽지 못하고 출근하게 되는데, 그런 신문이 제 책상 옆에 쌓여갔습니다. 그걸 그냥 버려버리지 못하고 주말에 밀린 신문을 읽어보려 하지만, 주말에도 바쁘면 심지어 2주 치의 신문이 쌓이는 일도 생겼습니다. 


신문이 쌓이니 부담도 늘고 스트레스도 쌓였습니다. 누가 강제하는 것도 아닌데, 제 스스로 스트레스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걸 줄여보려고 대충 훑으며 도움이 되겠다 싶은 기사들만 찢어 놓았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스크랩한 기사들이 쌓여갔습니다. 마찬가지로 스트레스도 점점 누적이 되었고요. 세상을 알고 싶다는 호기심에 읽는 신문이었는데, 무슨 빚쟁이처럼 '나를 왜 안 읽어?' 이렇게 재촉하는 것 같았지요. 


오늘 아침 옆자리에 쌓여있던 신문들을 모두 내다 버리며 결심했습니다. 


'하루가 지난 신문은 읽지 않는다.' 


원래 하루가 신문의 유통기한이잖아요. 그걸 충실하게 따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러자 마음이 풍선처럼 둥실 떠오르는 듯 가벼워졌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을 지금까지 왜 해결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나 싶었지요. 


그러다 문득, 인생의 여러 단계에서 겪는 일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할 때에는 '학력고사'라는 시험을 치렀는데요, 저와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이 100만이었기 때문에 경쟁률이 매우 높았습니다. 대학을 못 가는 학생들이 절반 가까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시험을 20대가 다 가도록 치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험을 치르지는 않더라도 그 대학 입시의 결과에 사로잡혀 인생의 다음 시기를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지요. 비단 20대뿐만 아니라 30대에는 취업으로, 또 결혼으로, 그리고 40대에는 자녀의 입시 문제 등으로 계속 이전 단계의 문제로 인해 다음 단계의 인생을 허비하거나 탕진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비슷하더군요. 


저는 인생에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그런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굳이 말리고 싶지도 않고요. 그런데 혹시라도 인생의 단계를 하나하나 거쳐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 수준에서 이전 단계는 놓아줄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인생이 정말 짧거든요. 어? 하면 오십입니다. 그 짧은 인생을 이전 단계에 대한 후회, 혹은 스트레스로 탕진해서는 곤란하잖아요. 그냥 마치 유통기한이 지난 신문을 내다 버리듯,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 해야 할 일들도 혹시 완벽하지 않더라도 어느 순간에는 지나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삶은 신비롭고 인생은 계속되니까요. 


유통기한 지난 신문을 버려 너무 홀가분해서 몇 자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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