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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Apr 17. 2023

슬램 덩크

벽에 부딪친 이들에게 절절 끓는 청춘들이 전하는 해답

"농구 좋아하세요?"


이 단순한 질문이 단순한 질문이 아니게 만들었던 다섯 명의 청춘들을 오늘 삼십여 년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반백살 넘은 아재가 만화영화를 보며 눈물을 찔끔거리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들과의 만남에는 반가움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과 <<더 퍼스트 슬램 덩크>>를 보고 왔습니다. 아내는 스포츠에 별 관심이 없어서 슬램 덩크의 내용을 전혀 모른다고 하더군요. '도대체 일본 애니메이션이 관객 500만을 돌파했다는데 무엇 때문이지?' 이런 궁금증 때문에 영화표를 예매했다고 하더군요. <<너의 이름은>>으로 유명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만든 <<스즈메의 문단속>>보다 더 흥행한 애니메이션이 궁금했을 터이지요. 올해 대학생이 된 큰아들과 고2가 된 둘째 아들 역시 농구와는 담을 쌓고 산 친구들이라 영화를 보기 전까지 별다른 감흥이 없어 보였습니다. 가족 중에 오로지 저 혼자만 마음속으로 기대반 걱정반으로 기다리고 있었지요. 삼십 년 만에 만나는 반가움, 허나 혹시 그들이 팬들과 함께 늙어 일상인이 되어 있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 이런 것들 때문에 마음이 어수선했지요.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연필 스케치로 송태섭, 정대만, 채치수, 서태웅, 강백호가 하나씩 그려져 뚜벅뚜벅 우리 앞으로 걸어오기 시작했을 때 게임은 끝났습니다. 걱정 따윈 필요 없다고 그 기백 넘치는 표정들이 말하고 있었으니까요. 


'어이, 아저씨. 아저씨는 삼십 년 동안 세상 풍파 겪으며 일상인으로 쪼그라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린 아직 절절 끓어오르는 청춘이라고. 알아?'


그렇게 말하는 듯했습니다.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그들은 삼십 년 전과 똑같았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코트 안에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직선으로' 농구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에둘러 가는 길은 청춘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그들을 보고 있는데 눈에서 눈물이 흐르더군요. 꿈을 향해 직선으로 달리지 못한 후회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나도 그들처럼 직선으로 달렸던 때가 있었는데 하는 그리움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요. 그저 마음속을 누군가가 휘휘 저어 소용돌이치게 한 것 마냥 심장 주변에서 무언가가 휘몰아쳤습니다. 


세상살이가 팍팍하고 사람 관계가 쉽지 않을 때 우리는 맛있는 음식과 멋진 여행, 친구와의 수다 등을 통해 위로를 받고 위안을 얻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강고한 벽에 가로막혀 성장이 정체되었다고 느꼈을 때에는 그런 종류의 힐링으로 위로와 위안을 얻지 못합니다. 우리 마음이 알지요. 그런 것들로는 내가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요. 그런 이들에게 <<슬램 덩크>>는 해법을 제시합니다. 괜찮다는 위로가 아닙니다. 어쩔 수 없다는 체념도 아니고요.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냥 부딪쳐. 열 번 부딪쳐서 안되면 백 번, 백 번 부딪쳐서 안되면 천 번, 머리통이 깨지고 등뼈가 뒤틀리고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그 벽에 부딪쳐. 그러다 보면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그 벽에 균열이 생기고 마침내 그 벽이 무너져 내리지."


별 것 아닌 양 씨익 웃으면서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아이들이나 아내 모두 '양손 엄지 척'을 하더군요. 그들도 성장하고자 하는 가운데 도저히 무너질 것 같지 않은 벽을 만났을 테지요. 그리고 그에 대한 해답을 <<슬램 덩크>>로부터 들었을 것입니다. 절절 끓는 청춘은 제자리에 주저앉아 입으로만 희망과 성장을 말하지 않습니다. 온몸으로,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코트 안에 쏟아 부음으로써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지요. 그게 삼십 년의 세대를 뛰어넘어 아이들의 심장까지 격동시켰을 것입니다. 


삼십 년 만에 만난 그들이 아직 절절 끓는 청춘이라면 그들과 같은 세월을 살아온 나 역시 같이 뜨거워질 수 있는 청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 백. 호. 묘하게 사쿠라기 하나미치가 한국어 이름으로 작명될 때 성씨와 항렬이 저와 같이 지어져 버린 탓에, <<슬램덩크>>가 92년에 출간되기 시작했을 때 저 역시 피 끓는 대학생이었던 탓에, 저는 '지금 여기가 나의 영광의 순간'이라 말하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코트에 쏟아붓는 강백호처럼 나 역시 아직도 모든 것을 꿈을 위해, 성장을 위해, 그것을 막는 벽을 부수기 위해 쏟아부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성장을 간절히 바라는, 그러나 큰 벽에 부딪쳐 어쩔 줄 모르는, 세상의 모든 연령대의 청춘들에게 <<더 퍼스트 슬램 덩크>>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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