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례함 판별 기준
간혹 ‘무례함'을 ‘대범함'이나 ‘추진력', ‘용기 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을 만납니다.
한때는 저도 ‘무례함'을 ‘솔직함'이나 ‘가식적이지 않음'이라고 오해했던 적이 있습니다.
(과거 저의 무례함에 상처받은 분들께 사과합니다. 물론 요즘도요.)
하지만 무례함은 무례함일 뿐입니다.
‘친구’끼리라도 무례는 무례입니다.
‘가족'끼라라도 무례는 무례입니다.
‘동료'끼리라도 무례는 무례입니다.
‘초면'에 무례는 거의 범죄입니다. ‘갑질'이니까요.
“에이, 뭐 이런 걸 가지고 무례하다고 그래?”
이렇게 말하며 오히려 무례를 지적하는 상대방을 공격하는 이도 있습니다.
쪼잔하고 속 좁은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괜히 무례를 지적하는 이가 머쓱해집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무례입니다. 이럴 때 아주 좋은 식별법이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무례함과 솔직함을 혼동했을 때 선배가 가르쳐준 겁니다.
회사에 다닌다면 회사 사장님이 보는 앞에서
그 사장님의 딸에게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이었다면 무례가 아닙니다.
조폭 두목이 보는 앞에서
그 두목의 딸에게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이었다면 그건 무례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나 자기 자신의 가족에게 다른 누군가가 한다면
기분 나쁠 말과 행동을 타인에게 한 것이라면 그건 무례입니다.
타인에게 거칠게 말하거나 타인을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역량을 드러내려는 것은
그냥 ‘성격 장애'입니다.
솔직함이나 가식적이지 않음을 드러내기 위해서
타인의 외모나 성격, 행동, 환경 등을 생각나는 대로 지적하거나 지껄일 필요는 없습니다.
솔직함은 타인에게 나의 내면세계를 여는 것일 뿐입니다.
가식적이지 않음은 나의 내면세계를 억지로 치장하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생각하는 뇌와 말하는 입 사이의 필터를 제거했다고 솔직해지거나 가식적이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례함은 보통 또 다른 누군가의 무례함으로 단죄됩니다.(많이 봤습니다. 다행입니다.)
아니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에게 단절됩니다.
무례함을 당한 이들은 내면의 문을 닫아버리니까요.
칸트는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라고
윤리적 행위의 기준을 세웠습니다.
어떤 행동을 할 때 다른 모든 사람이
그와 같은 행동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무례함의 판단 기준 역시 비슷합니다.
‘역지사지'
남이 내게 하면 열받을 만한 일을 하지 맙시다.
남이 내 자식에게 하면 열받을 만한 일을 하지 맙시다.
그것만으로 세상은 평화로워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