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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쓰기'를 권장함

- 힐링을 위한 글쓰기

by 강호

둘째 아이가 재수를 결심했습니다. 수능 시험을 보고 나서 채점을 해보았을 때, 생각보다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매일 밤늦게 까지 학교 근처의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왔기 때문에 조금 의아했습니다. 그렇게 공부했는데 그렇게 점수가 안 나올 수는 없거든요. 며칠 후에 아이는 그 시간 동안 전부 공부한 것이 아니라 조금 놀았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더군요. 고마웠습니다. 불량 청소년처럼 엇나간 것은 아니고 친구들과 사부작사부작 놀았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재수를 해보겠다고 하더군요. 허락하기로 했습니다. 딱히 대학을 꼭 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군대 포함 6년의 시간을 사회에 진출하기 전에 유예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솔직히 조금 막막해 보였거든요. 사회에 진출할만한 기술을 고등학교 때 익혔다면 모를까, 수능 공부하다가 갑자기 사회 진출은 정말 막막하잖아요.


재수를 결심한 아이에게 제가 해 줄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민 끝에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조금씩 전해주기로 했습니다. 강요하는 방식은 아니고요, 그냥 이야기해 주는 겁니다. 이런 걸 해보면 어떻겠니, 그런 제안이지요. 매주 일요일 9시에 한 15~20분 정도 대화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곤혹스럽겠지만, 저는 내심 이렇게나마 아이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제가 처음 아이에게 들려준 조언은 ‘일기 쓰기’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제 큰 아이는 말하는 재주를 타고났고 둘째 아이는 글 쓰는 재주를 타고났습니다. (아, 오해하지는 마세요. 제가 ‘재주 있다’라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제 기준에서 판단한 겁니다. 제 아이들이 세상 사람들이 막 감탄하게 되는 그런 종류의 영재는 아닙니다. ‘비교적’, ‘제가 보기에’ 타고났다, 정도의 의미입니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무언가 잘못한 일이 있어서 반성문을 쓰게 했던 적이 있는데, 그게 제 맘에 쏙 들었거든요. 그래서 그 반성문을 캡처해서 지금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런 둘째 아이가 글 쓰는 재주를 한껏 펼쳤으면 하는 마음에 어떻게 그 재주를 갈고닦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지요. ‘일기 쓰기’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으면 일기를 씁니다. 그럴 때 일기는 ‘힐링’입니다. 욕을 쓰기도 하고 저주를 퍼붓기도 하고 한탄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찬란한 미래를 꿈꾸는 희망찬 망상(?)을 적기도 하고요. 그렇게 일기장에 한참 쏟아내고 나면 후련해집니다. 마음이 정리가 되고요.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 사이에 비밀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일기장은 다릅니다. 보안만 잘 유지하면(예전에는 종이 노트에 썼는데, 형과 어머니가 제 일기를 몰래 본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 이후로는 컴퓨터로 씁니다. 예전에는 컴퓨터를 ‘공유’(?)했기 때문에 보안성이 떨어졌지만, 요즘은 저마다 하나씩 있기에 아주 안전하지요.) 정말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참 좋은 나의 친구’입니다.


재수라는 과정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겠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하기 싫은 일을 1년간 또 해야 하는 거니까요. 그런 스트레스는 어딘가 풀어내야 합니다. 마치 압축된 오염물질이 하천이나 공기 중으로 풀려 나가면 점차 자연 정화가 되듯이 일기장에 마음속 응어리나 누군가에 대한 분노, 미움 또 무언가 모를 불안감 같은 것을 쏟아놓으면 정화가 되더군요. 저는 둘째 아이도 그렇게 스트레스가 넘실거릴 때 그렇게 일기를 쓰며 마음을 다스리기를 바랐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속의 찌꺼기나 폐기물들을 쏟아내고 난 뒤에 미래를 기획하는 내용을 적어 넣으면 마음이 부풀어 오릅니다. 그래 이렇게 노력하면 멋진 결과가 나오겠구나! 그런 희망이 생기고요. 사실 살면서 부딪치는 상당수의 문제에 대해 스스로가 답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걸 스스로 끄집어낼 수 있는 계기가 바로 일기 쓰기인 거지요. 저는 그렇게 일기를 쓰다보면 아이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해 나갈 수 있는 힘을 키우게 될 뿐만 아니라, 글쓰는 능력도 신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아이는 고맙게도 해보겠다고 답하더군요. 사실 아이가 당장 일기를 쓰지 않더라도 제가 들려준 이야기를 기억해두기만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삶의 어떤 단계에서 제 조언이 다시 떠올라 일기를 쓰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아이에게 ‘일기 쓰기’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나서 저도 제 ‘전자 일기장’을 열고 그동안 적었던 일기 중 하나를 읽어봅니다. 저는 가끔 시간이 나면 이렇게 제가 적어 놓은 일기장을 펼쳐보는데요, 어떤 내용은 참 유치하다 싶지만, 또 어떤 내용은 어떻게 이런 멋진 생각을 했지? 하며 감탄하게 되기도 하더군요. 일기 쓰기가 생각을 촉진하기도 하고 저장하기도 하는거죠. 여러모로 일기 쓰기는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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