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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운전자 혐오의 시대가 오는 것은 아닐까?

- 자율 주행 자동차의 대중화를 위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

by 강호

올해 초 오래 오래간만에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 내가 예전에 집에서 강아지를 키울 때는 우리 가족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줬거든. 당연히 집에서 키우는 게 아니라 마당에서 키웠지. 목줄을 묶어서 말이야. 근데 요즘은 그런 걸 ‘학대’라고 하더군. 강아지를 학대한다는 거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친구가 어이가 없다는 듯 푸념을 하더군요. 이제 자신은 강아지를 키울 수 없게 됐다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어렸을 때 시골에 있는 할머니댁에 가면 친구가 말하는 식으로 개를 키웠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댁의 개는 ‘워커’라는 이름의 셰퍼드였는데, 특별히 사료를 주거나 고깃덩이를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우리 식구들이 먹고 남은 소위 ‘짬밥’을 그릇에 담아서 줬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세상이 많이 변한 것이지요. 저도 집에 강아지를 식구로 들이기 전에는 몰랐었어요. 근데 ‘이삭’이라는 이름의 강아지를 식구로 맞이하고 보니 강아지를 추운 겨울날 마당에서 재운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 되었습니다. 30여 년 만에 세상이 많이 변한 것입니다.


흡연자에 대한 인식도 그동안 확 달라졌습니다. 91학번인 제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정말 흡연자 천국이었지요.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예삿일이었습니다. 과방에 동기들이 한 4-5명만 모여서 이야기를 나눠도 방 한가득 담배연기가 가득 차곤 했었거든요. 간혹 여학우들이 연기 때문에 콜록거리거나 인상을 찌푸리면 담배를 꼬나문 동기들이 ‘그렇게 싫으면 너도 피워.’하며 놀리거나 연기를 여학우 쪽으로 뿜는 ‘미개한’ 짓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도 그럴 수 있는 일 정도로 받아들여졌지요. 제가 초등학생이었던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에는 택시나 버스, 기차 안에서 담배를 꺼내 물어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헌데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서 얼마 안 지나서부터 흡연자에 대한 인식이 180도로 바뀌었습니다. 택시나 버스, 기차 안에서는 물론이고 커피숍에서도 점차 담배 피우는 것이 금지되더니 이제 술집에서도 어지간해서는 담배를 피우지 못합니다. 이제는 아마 고깃집에서 식사 후에 담배를 꺼내 물면 옆 고객들과 다툼이 일어날 겁니다. 아주 짧은 시간만에 흡연자는 ‘주류’에서 ‘혐오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저는 이제 담배를 끊어서 다행히 ‘혐오의 대상’ 취급을 받는 일은 벗어났습니다.^^;;) 한 20여 년만에 그렇게 된 거예요.


문득 앞으로 어쩌면 운전하는 사람을 혐오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큰 아이만 해도 대학생이지만 운전을 배울 생각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당장 차를 몰 것도 아닌데 굳이 운전면허를 따야 하나 하는 생각이라더군요. 아이의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젊은 친구들은 운전을 하려 하지 않고 있고요. 나이 든 사람들은 아직 세 발짝만 떨어져 있어도 운전을 하는 사람이 태반인데요.


반면에 인공지능의 눈부신 발전과 화석연료 자동차에서 전기차로의 급속한 전환으로 인해 곧 자율 주행 차량이 대거 도로에 등장할 것 같아요. 조만간 테슬라의 로봇 택시가 5000만 대 가량 도로를 누빌 거라는 예측을 하는 분도 있더군요. 어느 박사님의 설명을 들어보면 자율 주행 차량이 보편화되면 사람이 모는 자동차가 오히려 자율 주행에 가장 큰 방해가 될 거라네요. 다른 자율 주행 차량은 예측이 되는데 사람이 모는 자동차는 예측 불가인 측면이 많아서 교통 체증이나 교통사고를 유발하기 쉽다고요. 유발 하라리는 그래서 전 세계에서 북한이 아마 자율 주행 차량이 가장 쉽게 보편화되는 곳이 될 거라고 했지요. 거긴 명령 한 번에 일사불란하게 관철시킬 수 있다고요.


하지만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그렇게 밀어붙일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자율 주행 차량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늘어나게 되면 각 국가들은 운전을 백안시하게 만들 것 같아요. 마치 흡연자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며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을 틀어막았듯이(물론 지금도 도보 중 흡연을 하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있습니다만) 운전하는 사람을 미개하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폄하하여 도로에서 추방하려고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 야, 너 뭐야? 너 운전해? 지금이 어떤 시절인데 운전을 할 생각을 해? 야만인 같아.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린 자녀를 둔 이가 운전을 한다면 아이에게 이런 말을 들을지도 모르겠네요.


- 아빠, 제발 운전 같은 거 하지 마세요. 학교에서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운전은 나쁜 거래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해치고 우리나라의 자율 주행 교통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아주 불필요한 일이래요. 운전하는 사람은 스스로 명을 재촉하는 바보 같은 사람이래요.


이런 식으로 운전하는 사람에 대한 인식은 급속하게 바뀌고 도로에서 사람을 몰아내고 그 도로를 테슬라나 현대, 비야디 등에서 만든 자율 주행 전기차가 메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완전 자율 주행을 구현하는 것은 글로벌 거대 기업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는 영역입니다. 한마디로 돈이 되는 영역이지요. 사람들은 편하고 좋은 것에 돈을 씁니다. 자율 주행은 고객들이 원하는 것이고 글로벌 기업들이 원하는 것입니다. 돈이 되는 것에 기업들은 뛰어듭니다. 기업들이 요구하면 정부도 동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황당한 생각이지만, 어쩐지 그렇게 될 것만 같지 않나요? 운전이 흡연처럼 주변 사람들이나 사회에 해를 끼치는 일로 간주될 때 어떤 기분이 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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