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은 덜 자극적인 삶을 위하여
하루를 제대로 시작하고 싶을 때, 우리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방법을 꽤 신경 씁니다. 알람을 몇 분 단위로 맞춰 놓을 것인가, 알람이 울리는 휴대전화를 어느 위치에 둬야 바로 끄고 다시 잠들지 않을 수 있는가, 이런 것에 온통 정신이 팔립니다. 하지만 하루를 정말 제대로 시작하고 싶다면 그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이 더 우선입니다. 전날 밤에 술자리를 갖거나 프리미어리그 축구경기를 보거나 하느라 늦게 잠들면 아무리 다음날 일찍 일어나려 해도 쉽지 않거든요. 설사 일찍 일어난다고 해도 컨디션이 엉망이라 꾸벅꾸벅 졸 수밖에 없지요.
연말연시가 지나면서 한번 망가진 삶의 리듬이, 구정 연휴 9일을 놀면서(제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금요일까지 공동 연차를 사용해서 거의 여름휴가처럼 9일을 쉴 수 있었습니다^^) 완전히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대로라면 2025년은 너무 허무하게 사라져 버릴 것 같아요. 그래서 정신을 번쩍 차렸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의미 있는 일들을 해나가려면 앞에서 언급한 대로 왜 잠들지 못하는지를 깨달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스스로를 분석해 봤습니다. 간단하더군요. 부끄럽지만 1번은 유튜브, 2번은 넷플릭스, 3번은 축구게임이었습니다.
10~15분 정도로 되어 있는 유튜브는, 다들 그 알고리즘에 농락당해 보셨겠지만, 동영상 한 클립을 보고 나면 어느새 혹할 만한 새 영상이 계속계속 추천되기 때문에 잠들기 전에 딱 한 편만 보고 자려다가 2-3시까지 깨어있게 만드는 주범입니다. 정말 별 것도 아닌 영상을 보느라 잠을 못 자는 것이 억울해 넷플릭스로 눈을 돌리면 딱 밤새기 좋게 만들어진 8화짜리 시리즈물이 빨판이 있는 괴물처럼 제 몸을 싸안고는 뜬 눈으로 새벽을 보게 만들지요. 최근에 <중증외상센터>를 그런 식으로 보고 정말 컨디션이 망가졌었습니다. 축구게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딱 한 판 기분 좋게 해서 승리의 기쁨을 안고 잠들어야지 하다가 거듭된 패배에 ‘딱 한 판만 더’를 외치며 깊은 밤까지 잠들지 못하게 되더군요.
아마 다른 분들도 자신이 왜 잠들지 못하는지 이유를 다 알고 있을 겁니다. 굳이 저처럼 스스로를 분석해 볼 필요도 없지요. 술과 친구를 좋아하는 분들은 술자리가 문제일 것이고요. 저처럼 콘텐츠를 좋아하는 사람은 영상과 게임이 문제이겠지요. 일 중독인 분들은 일하느라 잠을 못 이룰 것이고요. 근데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제가 밤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는 데에는 ‘관성’이 중요한 역할을 하더라고요. 정말 재미있어서 잠을 못 드는 것이야, 다음 날 좀 졸리기는 해도 그렇게 후회되지는 않는데요. 뭘 봤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시시껄렁한 영상을 보느라 잠을 못 자면 억울하더라고요. 인간의 도파민 분비를 치밀하게 계산해서 알고리즘을 운용하는 구글에게 농락당했다는 분함 때문도 있을 것이고요.
결국 제 몸이 과체중을 넘어서 비만으로 향하는 이유와 일찍 잠들지 못해 아침에 피곤에 절어 침대에서 일어나는 이유는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제때 멈추지 못한 탓입니다. 우리가 기계가 아닌 이상, 시시껄렁한 유튜브 클립을 단 한편도 안 보고 살 수는 없는 것이고 몸에 안 좋은 음식을 단 하나도 안 먹고살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적절한 시점에 멈출 수 있느냐가 핵심인 것이지요.
한 30년쯤 전 친구들을 따라 스키장이라는 곳에 처음 따라가 봤습니다. 젊을 때여서 잘 타는 친구의 조언 몇 마디만 듣고 무작정 슬로프에 올라갔지요. 멈추는 법을 배우지 못한 탓에 수없이 눈 밭에서 넘어지고 굴렀습니다. 숙소에 돌아와서 보니 왼쪽 엉덩이부터 허벅지까지 매로 맞은 듯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더군요. 그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발목이나 무릎을 다치는 사람도 있고 간혹 목뼈가 부러지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군요. 스키를 즐기려면 가장 먼저 멈추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일상 속에서도 제때 멈추기만 하면 나중에 큰 위험을 막을 수가 있지요. 한 숟가락만 더 먹고 싶을 때 멈추는 것, 한 잔만 더 마시면 좋겠다 싶을 때 멈추는 것, 조금만 돈을 더 벌었으면 좋겠다 싶을 때 멈추는 것, 그것이 때로는 우리의 다음날을, 우리의 미래를, 우리의 건강을, 우리의 자산현황을 바꿔줄 수 있을 것입니다. 브레이크가 망가진 자동차는 아무리 빨리 달릴 수 있어도 소용이 없겠지요.
이제 잠들기 전에는 좀 더 담백한 일을 하다 잠자리에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휴대폰 게임을 잠시 접어두고 책을 읽고 명상을 하려고요. 일기를 잠깐 쓰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몸에 좋은 것이든, 삶에 좋은 것이든 조금은 덜 자극적이어야 오래 즐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독서나 명상은 마치 평양냉면이나 잘 지은 쌀밥 같네요. 아마 그래서 오랜 세월, 그것들을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의 삶을 조금은 덜 자극적으로 만드는 것들에 ‘행복한 멈춤’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습니다. 우리를 더 건강하게 해 주는 ‘행복한 멈춤’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