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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 빗속에서 춤추라!!

by 강호

새해입니다. 매년 새해가 되면 저는 버릇처럼 한 해 이루고 싶은 목표를 정합니다. 저희 가족은 가족 모두가 연초에 새해 목표를 하나씩 정했다가 연말에 가장 목표를 잘 이룬 사람을 시상합니다. 아마 2024년은 제가 우리 가족 중에서 가장 목표를 잘 이룬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주 작은 목표이긴 하지만(창피해서 밝힐 수는 없고요.) 그걸 해냈기 때문이지요. 보람이 있습니다. 구정 때 시상식(?)을 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좀 다르게 목표를 잡아보고 싶어 졌습니다. 나태주 시인 때문입니다. 어느 칼럼에서 시인은 이렇게 적었더군요.


“내 생각은 그렇다. 사람이 무엇이든 결심하고 그 결심을 10년 동안 실천하다 보면 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할 일은 거의 없노라고.”


딱히 엄청난 가르침은 아니지만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우리가 매년 딱 1년 치 계획만 세우라는 법은 없습니다. 10년 치 계획을 세워도 되고 5년 치, 3년 치 계획을 세워도 되는 일입니다. ‘콜럼버스의 달걀’과도 같은 깨달음입니다. 제 나이가 이제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에 이르렀습니다. 시인이 적은 글을 보니 10년을 내다보고 목표를 잡아보는 것은 어떨까 싶었지요.


그러다 슬그머니 마음속으로 어깃장을 놓아봅니다.


‘AI가 놀랍도록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매년 눈이 휙휙 돌아가게 세상이 바뀌는데, 10년 치의 계획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갑자기 서글퍼집니다. 인공지능이 얼마 안 있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다니요. 잠깐 한숨을 쉬었다가 다시 용기를 내봅니다. AI가 인간을 대체한다고 인간이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겠지요. AI가 다 해줄 것이니 인간은 새해를 맞아도 아무런 설렘이나 기대를 갖지 말아야 한다는 건 슬픈 일이잖아요.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해 봅니다. 인간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자동차가 있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인간을 지구 반대편까지 쉽게 이동시켜 준다고 해서 인간이 달리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요즘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 매일 체육관에 가서 달리기를 하거든요. 유용함은 항상 ‘인간’을 중심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이지요. 새해를 맞이해서 계획을 세우는 것 역시 인간을 위해서여야 합니다. 지난해에는 하지 못했던 일을 올해 노력해서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성장한 것입니다. 그 성장이 경제적인 대가를 돌려주지 않더라도 성장은 성장 그 자체로 설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직 도달하지 않은 미래를 미리 예단하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많이 접합니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내다보는 미래는 암울합니다. 예전에 영화 <매트릭스>에서 기계의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는 인간을 떠오르게 합니다. 어째 꼭 그렇게 될 것만 같습니다. 거기에다 더해서 온 세계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전쟁, 사고, 자연재해, 정치적 격변 등 정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엄청난 일들이 연일 터져 나옵니다. 생각해 봅니다. 어느 날 전혀 예상치 못한 일로 세상이 종말을 맞이했을 때 나는 무엇을 더 후회할까? 쓸데없는 것을 배우고 쓸데없이 운동하고 쓸데없이 계획했다고 나는 그걸 후회할까? 아닐 것 같습니다. 오히려 왜 조금 더 열심히 살지 않았냐고, 왜 무언가에 삶을 던져보지 않았냐고, 왜 더 사랑하지 않았냐고 저 스스로를 질책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됐습니다. 지금은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기계의 인간 지배나 세상의 종말, 이런 것들이 어느 날 어느 순간 농담처럼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를 수도 있고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보다 훨씬 나중에 벌어질 수도 있겠지요. 저는 그 시점을 알지 못합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모든 일자리를 대체하는 그날보다 혜성이 지구와 충돌해서 전 세계의 인류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일이 먼저일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시도나 새해의 계획 등을 저는 그동안 너무 경제적인 유용성 차원에서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겸허하게 새해를 맞이하고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준비하면서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아가면 되는데 말이지요.


꽤 오래전부터 저는 마음속에 ‘빗속에서 춤추라’는 말을 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언제 비가 내릴지 모르고 언제 개일지 모릅니다. 이 비가 그치면, 날이 개이면 춤출 거야.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늙고 병들게 되겠지요. 그렇기에 빗속에서도 삶을 긍정하고 즐겁게 하루를 영위해야 하는데, 험한 세상 살다 보면 종종 잊어버리곤 합니다. 새해도 되었으니 다시 되새겨봅니다.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2025년에도 빗속에서 춤추며 멋지게 살아갈 생각입니다. 모두 멋진 2025년을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p.s. 우리는 ‘내일 세상에 종말이 와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스피노자가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아니라고 합니다. 유독 한국에서만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1960년대의 칼럼니스트 중 한 명이 그렇게 썼고 그게 계속 인용되면서 굳어진 거라고 합니다. 농담 같은 세상의 변화에 대응하는 농담 같은 구절, 맘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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