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서 젊음이 떠나가면

- '가능성을 지닌 존재'에서 '증명할 수 있는 존재'로

by 강호



마흔을 넘은 어느 즈음, ‘아, 내가 젊지 않구나’하고 깨달을 때가 제게도 왔습니다. 문제는 그 시기가 너무나 눈 깜짝할 새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을 때 왔다는 점입니다. 육체적인 노화에 대해서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새치가 한두 개씩 솟아나는 게 보였을 때부터요. 그런데 저를 당혹하게 했던 건 육체적인 노화가 아니라 사회적 평가를 통해 제게서 젊음이 사라졌음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십 대나 삼십 대 때에는 ‘가능성’이라는 점수가 붙어 다녔던 것 같습니다. 아직 이룬 것도 없고 이렇다 할 역량이 부족해도 사람만 성실하고 진실되다면 그 사람에게는 뭔가 이룰 수 있고, 대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기대를 걸어 주었던 것 같습니다. 회사건 사회건 친척들이건 말이지요.


젊은 시절의 제게도 그 시절의 어른들은 그런 평가를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제가 그런 평가에 익숙해져서 계속 저를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생각해 왔던 겁니다. 그건 젊은 친구들에게만 특화된 평가인데 말이죠.


그렇게 한 해 두 해 세월을 보내다 보면 젊은이도 나이를 먹고, 가능성이었던 인생에 조금씩 지워지지 않는 잉크고 쓰인 성적표가 나옵니다. 원하는 것을 이룬 사람과 그냥저냥 세월을 죽인 사람의 성적표 말이지요. 혹자는 인생이 그가 이룬 부나 명성, 업적으로 결판 지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러나 사회적 평가는 냉혹합니다. 제가 아무리 잘 보이려 해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잣대로 개개인의 역량과 인생을 평가하거든요. 그런 사회적 평가의 자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많은 인문학적 공부가 필요합니다. 그냥 저절로는 되지 않지요. 벗어난 척 하지만, 어느 순간 훅하고 덮쳐오는 후회와 불안까지 해결할 수는 없거든요.


그렇게 공부가 잘 되어 자연을 벗하며 안반 낙도를 추구하는 사람에게야 성적표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문제는 어떻게 됐든 도시 속에서, 회사 속에서, 시장 속에서, 사람들 속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그 성적표가 중요합니다.


성적표에는 그 사람의 능력과 업적이 기록되거든요.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쓰임새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어떤 쓰임새가 있는가를 냉정하게 평가해서 회사에 합류시키기도 하고 일을 맡기기도 하니까요.


일종의 사용설명서에 해당되는 것인데 이력서의 형태가 될 수도 있고 평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도 어느 술자리에서 냉혹한 사회적 평가에 부딪친 후 저의 그와 같은 성적표를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요.


사람을 다루는 능력, 사업기회를 찾는 능력,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물건을 파는 능력, 재미있거나 유용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능력 등등. 이런 것 중에서 특별히 세상에 내세울 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만약 내세울 것이 없다면 그 사람의 쓰임새를 어떻게 드러내 보일 수 있을까. 젊은이들은 앞으로 노력할 것이고 열심히 배울 것이라고 어필할 수 있지만 과연 나는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지요. 대답은 당연히 ‘노!’입니다. 나이 든 이는 즉각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게서 가능성을 내세울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제로베이스로 떨어졌다는 것, 그게 제게서 젊음이 사라졌다는 뜻일 겁니다. 누군가 기술을 배우라고 조언해줬던 것을 기억합니다. 자격증의 형태일 수도 있을 것이고 포트폴리오의 형태일 수도 있겠지만, 언제든 세상의 필요를 충족할 수단이 내게 있는가를 항상 스스로에게 물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아무도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하고 자세히 묻지 않습니다. 부하직원이 대신해주기도 하고 동료가 해결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점점 회사도 변하고 있습니다. 업무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시시각각으로 변합니다. 퇴출의 시기가 짧아집니다. 그러다 어느 날 퇴출의 시기를 맞게 되면 참 안타깝게도 개개인은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다못해 워드 프로세서나 파워포인트, 엑셀조차도 입만으로 지시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자본으로 그런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부릴 수 있지 않으면 자기 자신이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다시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막막함의 강을 한 번쯤은 누구나 겪게 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은 회사에서 능력을 넘어서는 일을 부여받았을 때 싫어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해내며 그 기술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혹여 지금 회사에서는 그 기술이 불필요해지더라도 시장에는 그 기술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니까요. 그렇게 세상에서 자신의 쓸모를 찾아내야 이 비정한 도시에서,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젊음이 사라진 이에게 거리는 더욱더 비정합니다. 세상 모두가 젊은이의 삶을 동정하고 애달파 하지만, 나이 든 이의 생존이나 보람에까지 관심 갖지 않습니다. 어른인 까닭입니다. 어른은 세상에서 홀로 살아남아야 한다고 암묵적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젊음이 사라졌을 때를 위해 삶을 위한 실전 기술을 미리미리 익혀두어야 합니다. 그게 무엇이어야 할지부터 고민할 때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회사는 버스나 지하철 같은 것이지요. 올라타는 사람이 있으면 내리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 모두 내려야 합니다. 조금 일찍 내리거나 조금 늦게 내리는 사람은 있어도 영원히 타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 내릴 때를 준비합시다. 지금부터 당장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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