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 습관을 바꾸는 방법
이십 대와 삼십 대 시절에는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거의 매일 같이 마시다시피 했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고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지요.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술잔을 기울였던 것 같습니다. 실수도 많았고 후회할 일도 많았습니다. 만취 끝에 구토와 위통을 끌어안고 잠들어서 아침에 추한 몰골로 일어나면 ‘다시 술을 마시면 내가 개다!’고 몇 번을 되뇌었습니다. 하지만 위통이 낫고 숙취가 풀리면 또 슬금슬금 술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알코올 중독이 아닌가 자가진단을 할 정도였지요.
그랬던 제가 지금은 몇 달을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고 지낼 수 있습니다. 간혹 회사 회식이 있거나 친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면 맥주를 한 두어 병 마십니다. 필름이 끊어지는 일은 거의 없게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생각해 보다 보니 ‘정체성’이 바뀌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라고 규정해 두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우리의 행동을 낳습니다. 제가 이십 대 때 그토록 술을 마셨던 건,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객기였습니다. 당시에는 남자라면 술은 말술이어야 하고, 멋지게 담배를 피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네요.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그랬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한심스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지만 그땐 그랬습니다. 대학의 선배들도 한몫했지요. 세상을 냉철하게 비판하는 예리한 시각을 가진 지식인이라면 소주잔을 앞에 놓고 밤을 지새우며 새벽을 맞이해 본 경험이 많아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설파하는 선배들도 꽤 되었거든요. 그게 제 정체성을 만들었던 겁니다. ‘나는 술을 잘 마시고 좋아하는 사람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술을 마셔야 한다. 그 술자리에서 삶과 인생과 문학과 사회를 논해야 한다.’ 이런 생각 말이지요.
그런데 그런 정체성이 마흔을 넘어서면서 달라졌습니다. 제 자신을 자세히 관찰하고 실험해보니 저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술을 잘 이겨내는 체질도 아니고, 남들보다 숙취도 심하고 오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젊음이 충만했을 때는 혈기로 버틸 수 있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럴 수 없는 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런 다음 술자리를 관찰하다 결론을 내렸습니다. 술자리에서의 토론(?)은 정말 ‘개똥’처럼 쓸모없는 것이라고요. 온갖 훈계와 독설, 비난, 독선이 난무하는 곳이 술자리였습니다. 권력을 가진 이는 떠들고 권력이 없는 이는 시중을 들며 지겹게 들어야만 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절친이 모여도 마찬가지였지요. 처음에는 좋던 분위기도 술기운이 올라갈수록 이상해졌습니다. 세상에 대한 불만인지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인지 모를 푸념을 늘어놓을 뿐이었지요. 그렇지 않으면 시시껄렁한 농지거리나 하며 시간을 죽일 뿐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고 즐거운 시간은 딱 맥주 한두 잔 마실 때까지의 분위기였습니다. 그 이상은 몸도 마음도 힘들었으니까요. 그러면서 제 정체성도 달라졌던 것 같습니다. ‘나는 술을 잘 이기지 못하는 몸이고, 술 취한 사람들의 독선과 독설과 훈계와 비난을 잘 견디지 못하는 마음을 가졌다. 정말 마음을 통하는 이야기는 맨 정신으로 해야 하고, 술자리에서 제일 많이 떠든 사람이 술값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젊은 사람들은 적어도 나 같은 평범한 ’ 아재‘들하고는 술 마시고 싶어 하지 않으니 직장에서도 굳이 함께 술 마시 자고 권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이지요.
제 술 마시는 습관은 이렇게 정체성이 바뀌면서 고쳐지고 사라진 듯합니다. 생각해보면 그리 생소한 현상도 아닙니다. 젊은 시절 무협 영화나 액션 영화를 보고 나면 아주 잠깐씩 정체성 변화를 경험하곤 했으니까요. 괜히 눈과 어깨에 힘이 들어가더군요^^
예전에 저와 함께 일했던 한 필자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뭔가 소망하는 것을 이루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건 ‘마치 ~~ 인 것처럼 행동하라.’입니다. 정말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그걸 이룬 사람처럼 행동하면 됩니다.”
철학을 공부하시고 진중한 책들을 많이 내신 분이라 헛소리를 할 분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들었을 때는 약간 우습다는 생각을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정체성 변화가 습관을 어떻게 바꾸는지 여러 번 경험하고부터는 예사롭지 않게 생각됩니다. 정말 ‘마치 ~~ 인 것처럼 행동하’ 면 진짜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마음을 달리 먹었습니다.
저는 ‘마치 부자인 것처럼, 현자인 것처럼, 그리고 행복한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려고 합니다. 삶이 풍요로워지는 비밀이 거기에 담겨 있다는 근거 모를 확신이 드니까요.
바꾸고 싶은 큰 습관이 있다면 스스로를 다시 규정해보세요.
자기 정체성을 다시 규정해보세요. 습관은 그에 따라 분명히 바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