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이 필요한 시대

- <교육이라는 병>

by 강호


어렸을 때 나는 어느 친구네 집에 자주 놀러 갔다. 미안하게도 그 친구가 좋아서는 아니었다. 그 친구 집에는 ‘어문각’ 출판사에서 나온 다양한 만화책이 전집으로 구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바벨 2세>> 같은 만화책을 그 집에서 저녁 늦도록 보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집에 있는 계몽사 판 소년소녀 세계명작이나 한국사 이야기 같은 전집은 책장이 닳도록 읽고 난 뒤였으니까. 그때는 지금보다 책이 귀했고 책 이외의 볼거리도 많지 않았다. 만화영화도 저녁 5시~6시경, 딱 그 시간에만 볼 수 있었다. 방송시간을 놓치면 언젠가 방송국에서 재방송을 결정할 때까지는 못 보는 것이어서 늘 만화영화 시간만 되면 발을 동동 굴렀던 것 같다.


물론 입을 옷도 지금처럼 싸고 좋은 옷이 넘쳐나지 않았다. 시장에서 파는 옷은 브랜드 옷보다 질이나 디자인 면에서 훨씬 떨어졌고, 그나마도 지금처럼 언제든 가서 살 만큼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늘 아껴 입어야 했다. 먹을 것도 마찬가지였다. 요즘은 햄버거나 피자를 아이들이 용돈으로 사 먹지만 30년 전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가끔 부모님을 졸라서 얻어먹을 수 있는 ‘별미’였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교실에도 과도하게 살이 찐 아이들은 무척 드물었다.


하지만 요즘은 반대다. 뭐든지 넘쳐난다. 아이들이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전에 부모가 먼저 나서서 아이들에게 뭐든지 주려한다. 집집마다 입을 만한 아이들 옷이 장롱 곳곳에 쌓여있다. 장난감도 넘쳐난다. 요즘은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나서서 손자 손녀에게 하나라도 뭘 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일까, 요즘 가장 부족한 것은 ‘결핍’인 것 같다. 결핍이 결핍된 시절이라고 해야 할까.


결핍이 없이 자란 아이들은, 상당수가 꿈을 물어보면 꿈이 없다고 말한다. 그게 문제다. 기업가 중 상당수는 어린 시절 ‘가난’이 한이 되어서 부자가 되고 싶었다고 말한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이듯, 결핍이 꿈을 만든다. 부족을 채우기 위해 돈을 벌고, 공부를 하고, 무언가를 이루려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풍요’ 위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풍족한 환경을 너무 당연시한다. 잘 먹고 잘 입는 것은 분명히 부모의 은덕인데, 그것을 당연시하니 제 부모가 보잘것없어 보인다. 낳아서 먹이고 입히는 것만으로도 부모의 역할은 다 한 것이나 다름없건만, 남의 부모보다 돈을 못 번다는 이유로 제 부모 알기를 우습게 아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능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것은 ‘결핍’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무언가 모자라서, 그래서 갖고 싶으면 노력하고 머리를 쓰게 되어 있다. 혼신의 힘을 다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아이들도 엄마 젖을 빨 때 머리가 좋아진다. 흔히들 모유 수유를 하면 머리가 좋아지는 이유는 초유에 들어있는 성분 때문이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실상은 엄마 젖이 잘 안 나오기 때문이란다. 배는 고픈데 젖을 먹으려면 왜 안 나오는지를 생각해야 하고 무는 방법을 달리 해보고 손으로 눌러보기도 하고 하면서 머리가 좋아진다는 것이다. 어려운 책을 읽을 때 머리가 좋아지는 것도 같은 이치라고 한다. 늘 말랑말랑하고 씹기 좋은 음식만 먹는 사람은 치아가 단단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다.


연예계에서 롱런하는 사람들이나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스타들 중에는 의외로 집안이 어려운 친구들이 많다. 화려해 보이는 그들 중 상당수가 돈 벌어서 부모님의 집을 사드렸다는 이야기를 방송에서 많이 하곤 한다. 재능이나 끼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노력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 사람을 노력하도록 채찍질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은 그 ‘결핍’을 제로로 만드는 교육이다. 아이는 자신이 모르는 것을 궁금해하다가(결핍) 그걸 알아차릴 때(결핍의 충족) 재미있어한다. 그게 ‘호기심’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호기심을 느낄 겨를이 없어 보인다. 태어났을 때부터 부모들의 과도한 기대로 인해 호기심을 가져보기도 전에 엄청난 양의 지식을 머릿속에 욱여넣어야 하는 형국이다. 비 온 뒤 떠오른 무지개를 보고 아이가 놀라서 저게 뭘까? 물었을 때 ‘무지개’라는 답을 듣는 것이 정상적인 지식의 습득과정이다.


그러나 우리 교육은 일단 아이들에게 ‘무지개’는 공기 중의 물방울에 태양빛이 ‘분광’되어 우리 눈에 7가지 색깔로 보인다는 사전적이고 재미없는 지식을 먼저 제공하는 교육이다. 혹시라도 그런 지식을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늦게 알까 봐 안달하며 하루 몇 시간씩 가르치는 걸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서 ‘결핍’을 빼앗는 순간, 아이는 지식에 대한 욕망, 자기 발전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그러는 동안 우리 아이들에게는 결핍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결핍되어 간다. 부모와 함께 하는 대화, 친구들과 밖에 나가서 뛰노는 시간, 혼자 멍하니 멍 때리는 시간, 책에서 읽은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펴는 시간, 그리고 잠잘 시간 같은 것들 말이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일단 아이들에게 ‘결핍’을 허해야 할 것 같다. 나를 되돌아보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호기심을 느끼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무척 힘든 것 같다. 아내에게 남편이 운전을 가르쳐주다 보면 꼭 싸움 나는 것처럼 부모의 조바심은 아이의 결핍을 아주 손쉽게 없애버린다.


나부터 바꾸자.

부모부터 바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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