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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는 숏폼이 대세!

- 이야기는 짧고 간결하게!!

by 강호

아, 나이가 들었구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조금만 걸어도 무릎이 시큰거릴 때?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볼일이 안 봐질 때? 작은 활자가 흐릿하게 보일 때? 사실 그런 것도 나이 드는 서글픔을 무척 느끼게 합니다. 근데 그런 신체적인 노화보다 더 스스로에 대해 힘 빠지는 노화는, 저도 모르게 말이 길어지고, 남의 말 허리를 자를 때입니다. 다른 친구나 선배들이 그러는 것을 보며 ‘나는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하며 엄청 다짐을 하고 또 했지만 쉽지 않습니다. 특히 제 아이들이나 후배 직원들과 이야기하면 말이 많아집니다. 그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룬 것 없이, 가진 것 없이 나이 든 사람이 자신을 자꾸 증명하려고 할 때 혓바닥이 길어진다고 하지요. 그래서일까 그런 대화를 하고 나면 속이 상합니다. 그렇게 하려는 스스로를 볼 때 서글퍼진다.


제 자신만 하더라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조차 몇 십 분을 계속 듣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졸게 됩니다. 졸다가 지치면 화를 냅니다. 그게 사람입니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그렇게도 어려운 일입니다. 반면 말하는 것은 참 쉽습니다. 제 앞에서 조금만 듣는 시늉만 해줘도 한 시간씩 떠드는 것이 예사입니다. 맘 착하고 예의 바른 젊은 친구들이 그래서 늘 고역이지요. 하지만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참지 않습니다. 조금만 말이 길어져도 화장실 가는 척 자리를 뜨거나 휴대전화에 코를 박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태도를 취하는 젊은이들을 야속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말을 줄여야 하는 것입니다.


스낵컬처의 시대입니다. 아무리 재밌어도 동영상은 10분을 넘기지 말아야 합니다. 아니, 10분도 깁니다. 1분이면 충분한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일장연설’은 거의 ‘범죄’ 수준입니다. 예전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보다 더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는 대화를 하고 싶다면 ‘숏폼’으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대한 짤막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렇지 않은 말은 상대방과의 사이에 놓인 심연과도 같은 ‘무의미’로 떨어지고 맙니다. 전달되지 못하고 소멸합니다. 아무리 금과옥조와 같은 교훈이 담겨 있더라도 전달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요. 하물며 요즘은 훨씬 더 재미있고 유익하게 만들어진 세상사의 조언들이 유튜브 등에 넘쳐납니다. 타인의 마음에 닿고 싶다면 짧고 간결해야 하겠습니다.


제가 매일 일기를 쓰고 브런치에 칼럼을 쓰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책을 읽다고 조금이라도 깨달음이 와서 타인에게 전달하고 싶다면 대화 상대를 찾아 그에게 고통의 경청시간을 선물하는 것보다 하얀 모니터에 키보드로 그 생각을 적는 쪽이 모두에게 유익한 일입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기회가 있으면 글을 쓰려고 하는 이유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것은 대부분 전해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글로 남겨놓는 것이 맞습니다. 저는 특히 자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들려주기는 너무 힘듭니다. 그래서 꾹꾹 눌러 참았다가 브런치에 남깁니다. 제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라도 자식이 읽을 수 있으니까요..


사람은 하고 싶은 말을 털어놓지 않으면 병이 납니다. 자신의 생각을 어딘가에는 털어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술집 바텐더들이 돈을 벌지요. 술을 그닥 마시지 않고 집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병 걸리지 않고 행복하게 살려면 글로 실컷 떠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글로 풀어놓는 것은 사람들이 저마다 가려 읽을 수 있으니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달까요.


대화는 ‘숏폼’으로 하고, 할 말 있으면 참았다가 글로 쓰는 것, 그것이 나이 들어서 괜히 욕먹지 않을 첫 번째 비결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스마트폰을 열고 글로 씁시다. 스트레스지수가 대폭 내려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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