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직함'이라는 재능

by 강호

세상은 참 빠르게 돌아가고 어느 것 하나에 진득하게 마음을 붙이기 어려운 시절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직함이란 미련함의 다른 말처럼 들리게 되었지요.


하지만 우직함은 미련함이 아닙니다. 우직함은 모든 일의 근본입니다. 학창 시절부터 제 뇌리에 박혀있는 법칙 중 하나가 ‘양질 전화의 법칙’입니다. 정확한 철학적 의미로서가 아니라 잣구 그대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일정한 양이 모이면 질적으로 변화한다’는 법칙인 거죠. 일종의 '우직함의 법칙'으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저에게는 상당히 유용한 법칙이었습니다. 저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좀 우둔한 편이라는 평가를 받는데요. 생각해보면 그런 제가 지금껏 작은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나가면서 이만큼 살아온 데는 이 법칙의 역할이 컸으니까요.


나이가 들고 세상의 풍파에 치이면서 잠시 그 우직함의 힘을 잊고 있었더랬습니다. 그러다가 태권도장에서 그 우직함의 진가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한 6년쯤 전에 저는 어릴 때 못했던 태권도를 '평생운동' 삼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태권도장에 등록했는데, 그때 저와 함께 태권도를 시작한 등록 동기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옆에서 볼 때 이 분의 실력은 생각만큼 잘 늘지 않았습니다. 주먹을 내지르거나 발차기를 하는 폼도 꽤 어설펐고 사범님의 가르침을 따라 할 때도 생각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는 듯했습니다. 사범님께 가장 많이 지적당하는 분이었어요. 반면에 저는 처음부터 꽤 잘하는 축에 속했습니다. 마음속으로 좀 우쭐하기도 했습니다. '나 태권도에 재능이 있나 봐!'


근데 그분은 말 그대로 우직했습니다. 누가 뭐라든 항상 열심히 했어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도장에 나와서 땀을 뻘뻘 흘리며 수련을 했습니다. 저는 그런 그분을 보면서 거만하게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뭐, 취미로 하는 운동인데 좀 실력이 안 늘면 어때? 즐기면 되지.’


그러고 나서 한 6년 정도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상하시는 그대로입니다. 그분은 가장 먼저 일반인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 단수에 승단을 했습니다. 도장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자 중의 하나가 된 것이죠. 어느 틈엔가 제가 옆에서 봐도 동작이 절도가 있고 잘 훈련되어 있었습니다. 사범님도 그런 그분을 어느새 칭찬하고 계셨습니다. 그에 비하면 저는 회사일을 핑계로 도장에 자주 나가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실력이 계속 정체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처음 시작할 때의 잘하고 못함은 사소한 차이일 뿐이더군요. 중요한 건 누가 더 우직하게 해 나가느냐였던 겁니다.


우직함은 미련함과는 다릅니다. 미련함에는 방향감각이 없지요.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데도 그냥 하염없이 가는 것, 그게 미련함입니다. 그러나 우직함은 방향감각이 있습니다. 정확한 방향을 찾은 다음, 한발 한발 쉬지 않고 내딛는 것, 그게 우직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직함이야말로 진짜 재능이었던 겁니다. 진짜 태권도의 재능이 있었던 분은 제가 아니라 저의 도장 등록 동기분이셨던 것이지요. 그 순간 제가 좋아했던 만화 <<나루토>>의 '록 리'라는 캐릭터가 오버랩되었습니다. '록 리'는 닌자이지만 다른 여타의 닌자들처럼 마법 비슷한 '닌술'은 배우지 못할 만큼 닌자로서의 재능이 없습니다. 하지만 '록 리'는 대신 신체의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체술'을 죽기 살기로 연습해서 다른 최고의 실력을 갖춘 동료 닌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됩니다. 그런 '록 리'를 그의 스승은 '노력의 천재'라고 칭합니다.


저는 그 우직함을 비웃는 사람 중에 잘 된 사람을 못 봤습니다. 그들은 미련함과 우직함을 구분하지 못하고 얕은 재능을 믿거나 나날이 나아지지 않는 실력에 지레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우직함이야말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태도인 것입니다. 언뜻 보기에 세상은 타고난 재능을 가진 천재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실상을 살펴보면 그 '재능을 가진 천재들'은 실은 '우직함의 천재', '노력의 천재'였습니다.


앞으로도 '우직함의 힘'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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