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는 것이 가장 뛰어난 능력이다.

- 위임에 관하여

by 강호

솔직히 예전에는 일을 안 하고(?) 빈둥대는 상사들을 싫어했습니다. 뭔가 월급도둑처럼 보였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가 회사에서 ‘관리’ 업무를 맡게 되었을 때 조금이라도 틈이 있으면 실무를 하려고 했습니다. 엄청난 실수였습니다. 무식해서 그랬습니다. 회사와 팀원들에게 지금 생각해도 조금 미안합니다.


요즘 저는 어떻게 하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까를 고민합니다. 물론 제게 맡겨진 실무까지 떠넘기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회사의 일은 개인 단위가 아니라 팀 단위로 부과되는데, 그 일을 적절하게 위임하고 팀원이 성과를 내게 만들려고 고민하는 겁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제 개인적인 영역에서도 다른 전문가에게 위임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궁리하고 있습니다.


사실, 문제는 제 뜻대로 일이 이뤄지지 않거나 마감이 목전에 걸렸을 때입니다. 예전의 저는 부족한 일손을 직접 메우려고 했습니다. 팀원의 서툰 일처리에 혼자 열 받아서 ‘차라리 내가 한다’는 생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들었던 거죠. 야근도 불사했습니다. 어떻게든 일은 해결됐지만 결과적으로 회사는 손해였던 것 같습니다.


일은 회사의 직원들에게 말단까지 잘 배분되고 각각의 위치에서 성과가 날 때 잘 돌아가는 것입니다. 상급자가 신입의 일을 팔 걷어붙이고 하기 시작하면 신입은 성장의 기회를 잃게 됩니다. 상급자는 상급자의 일에 소홀해지게 되지요.


회사가 상급자에게 원하는 일은 따로 있습니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실무보다는 기회의 포착, 전체 프로젝트의 안정적인 관리 등을 원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신입이 해야 할 일을 상급자가 잘하는 건 너무 당연합니다. 그건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경험 때문이지요. 그런데 자신이 조금 더 잘한다는 이유로 위임해야 할 일을 본인이 떠맡고 있다면 그건 리더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위임을 못하는 것은 늘 일을 달고 살며 항상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제가 그랬습니다.) 회사에서 직위가 올라갈수록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널널해야 합니다. 책상에 수그리고 타이핑하는 시간보다는 사람을 만나고 팀원을 체크하고 여러 자료를 뒤적이는 모습이 더 적절합니다. 성과를 내야 하는 건 본인이 아니라 본인이 책임진 팀이니까요.


물론 요즘은 관리직이 사라지는 추세이긴 합니다. 그럴수록 자기 롤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내게 맡겨진 일이 아닌 일을 아무리 잘해도 평가받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위임 기술은 필수입니다. 그러려면 적확한 일의 지시와 주기적인 점검이 필수입니다. 마감날 왜 제대로 안 되었느냐고 팀원을 나무라는 상사는 상사 자격이 없습니다. 적어도 그 질책은 여러 번의 중간 점검 과정에서 이미 이루어졌어야 하고 만일의 문제가 발생했다면 대응책이 준비되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늘 위임을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능력을 빌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합니다. 아직 서툽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을 위해, 우리의 핵심역량 이외의 것을 빌릴 줄 알아야 합니다.


돈의 레버리지뿐만 아니라 일의 레버리지가 정말 중요합니다. 자칫 정말 초보자의 일만 하다가, 다른 사람의 일만 대신하다가 우리의 젊은 시간이 모두 흘러가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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