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간다고 문제 될 것은 없다.
멈추지 않는다면.

- 꾸준하기 위한 결심.

by 강호

"천천히 간다고 문제 될 것은 없다.

우리가 멈추지 않는다면."


우연히 어떤 앱을 사용하다가 이런 멋진 글귀를 만났습니다. 포모도르 기법을 적용할 수 있는 타이머 같은 앱이었는데, 여기에 매일매일 꽤 괜찮은 격언이 올라오곤 해서 종종 마음에 새기곤 했었거든요. 이 글귀가 저를 잡아 끈 것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절실해지는 말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끄럽지만 사실 저는 나이 오십이 다 되어가도록 아직도 영어공부를 합니다. 생업이 있다 보니 많은 시간을 공부에 할애하지 못합니다. 당장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자막 없이 영어권 영화를 보는 것입니다. 여행을 갔을 때 외국인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싶기도 합니다. 작지만 절실한 그런 소망 때문에 저는 지금도 영어공부를 합니다.


아마도 이렇게 목표가 흐릿해서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가정교사 선생님인 유튜브를 서핑하면서 ‘영어회화 잘하는 법’을 검색해 보았거든요. 그런데 많은 영어 전문가들이 열이면 여덟, 아홉은 목표가 흐릿하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조언을 하는 거였습니다.


그런 조언을 접하고 있노라면 마음속에서 후회의 태풍이 몰아칩니다. 왜 좀 더 일찍 지금처럼 공부하지 않았을까. 이토록 시간이 총알같이 흘러갈 줄 알았다면 좀 더 일찍 내가 원하는 공부를 시작해서 좀 더 오래 꾸준히 해왔을 텐데, 그런 후회가 가슴을 때립니다. 막연한 불안으로 인해 무의미하게 흘려보낸 시간이 아까웠습니다. 또 스무 살 무렵 저의 좁은 식견으로 그려본 저의 미래에는 영어가 필요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단지 제 전공이 국어국문학이라는 이유로 말이지요.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는지 후회가 막심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 되지요. 그 시절로 돌아가 스무 살 나의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그렇게 어리석은 망상을 할 시간에 영어 공부라도 좀 해라.”하고 나무라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스무 살 시절부터 지금처럼 영어공부를 해왔다면 제가 아무리 어학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도 지금쯤이면 자막 없이 영화 보는 수준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제 나이가 마흔여덟인데 언제쯤이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결국은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을 위해 제 소중한 시간을 또다시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조바심이 온몸을 휘감을 무렵 그 글귀를 만난 것이었습니다.


막연한 조바심에 휘둘린다면 분명 나란 인간은 십 수년 후에 또 똑같은 후회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무살 무렵처럼 또 너무 큰 목표를 세우고 의욕 과잉으로 혼자 용을 쓴다면 분명히 중도에 포기할 것이니까요. 이 나이가 되니까 알 것 같습니다. 사실 천천히 간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제 스스로 조바심과 졸갑증에 나가떨어져서 멈추는 것이 문제이지요. 그렇지만 않으면 언젠가는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하게 되는 것이 세상 돌아가는 원리이니까요.


세상에 성과 없는 노력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노력은 보존된다고요. 누군가가 열심히 하지만 금방 실력이 늘지 않는 저를 보고 ‘그 나이에 노오력 해봐야 무슨 소용?’이라 해도 상관없습니다. 약간 효율이 떨어지더라도 괜찮습니다. 저는 천천히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풍경들을 즐기고 누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이번 생에서는 이런 즐거움들과 함께 할 겁니다. 마치 올레길을 둘러보듯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걸어가 볼 것입니다. 그렇게 걸어간 끝에 놓여있을 제 모습이 솔직히 너무 궁금합니다. 그 길의 끝에 영어를 밥 먹듯 할 수 있는 상황이 된 제 모습이 있을 것 같습니다.


멈추지 않고 천천히 가보겠습니다. 그 끝에 도착했을 때 풍경이 너무나 멋지면 그 역시 글로 남길 생각입니다.


세상 모든 거북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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