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지 레이스’ 탈출 선언

-- 초등학생이 미적분을 푸는 시대를 맞아

by 강호

저희 아이들은 ‘계산'을 어려워했습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문자가 들어간 식을 가지고 문제를 푸는 게 만만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둘째 아이는 두 자릿수 나눗셈을 어려워했고요. 하지만 아이들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스스로 하나하나 배워가길 바라며 가급적이면 가르쳐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혼자 끙끙대며 푸는 것이 진짜 공부라고 생각했던 까닭입니다. 대신 칭찬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이야, 이런 문제를 혼자 풀어내다니 대단한 걸. 아빠는 어렸을 때 이런 문제로 쩔쩔맸었는데.’


그런데 그 당시 칭찬을 듣던 큰 애가 무심코 던진 말에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우리 학교 친구 중에는 미적분을 푸는 아이도 있는 걸요 뭐.’


아이 입에서 ‘미적분'이라는 말이 나온 것 자체가 신기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바로 그 ‘미적분' 말입니다. 그런데 방정식도 아니고 미적분을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푼다니. 곧바로 입에서 ‘미친 것 아냐?’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지요.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미적분을 푸는 건 결코 정상이 아닙니다. 엄청난 수학천재라면 모를까요. 아이에게 들어보니 그 정도의 수학천재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랬다가 학원 입시 설명회에 다녀온 후배가 들려준 이야기를 듣고 의문이 풀렸지요.


후배가 전해준 내용은 이랬습니다.


“학원 컨설턴트가 그러던데요. 강남 엄마들은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 과학영재원에 보낸대요. 거길 나와서 국제중학교나 사립중학교에 아이를 넣었다가 특목고로 보낸다는 거죠. 자사고나. 특목고나 자사고에 일단 보내야 아이를 명문대 보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요즘은 특목고 입시에서 영어과목 변별력이 거의 없어졌대요. 이제는 수학이 고교 입시든 대학입시든 좌지우지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수학학원만 3개를 보내 수학을 잡는대요. 초등학생도. 선행용, 학교 수업 보충용, 창의수학. 이렇게 세 개요.”


그러면서 유명한 영어학원은 늘 자리가 없어서 마치 맛 집에서 번호표 뽑아 대기하듯이 누군가가 빠져나오길 기다렸다가 TO가 생기면 그때 시험을 쳐서 들어가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언젠가 고교 동창들을 만났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사교육비 이야기가 나왔는데, 다른 친구들의 사교육비 이야기를 들으면서 표정관리가 힘들었습니다.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지요. 아이가 유치원 다닐 무렵의 사교육비만 한 아이당 300만 원 정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영어유치원에 다니면서 한 두 가지 과외를 더 한다고 했어요. 다른 친구들의 아이들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비슷했습니다.


이렇게 유아시절부터 시작된 사교육의 레이스는 아이가 번듯한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약 20여 년간 지속될 거라고 생각하니 막막해졌습니다.


‘이 레이스에 아이를 넣어야 할까, 만약 아이가 이 레이스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낙오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마치 전 국민이 총력을 다해야 하는 근대 전쟁처럼, 온 가족이 집안의 모든 역량을 쥐어짜서 사교육에 밀어 넣는 이 레이스를 나는 과연 계속 지속할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는 안 하는 게 맞습니다. 가족간의 화목, 가정 경제 모두 망가질 위험이 큽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상식을 넘어서는 비상식이 오랜 기간 먹혔기 때문에 우려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런 고민을 <<생각의 시대>>를 쓰신 김용규 선생님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근데 큰 도움을 받았지요.


‘그럼 강 국장님은 학원에 보내는 대신 뭘 시킬 생각이세요?’


김 선생님은 제 고민을 듣고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사실 그게 고민인데요. 저는 그냥 책을 많이 읽히기로 했어요.’


그러자 김 선생님은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잘하고 계신 거예요. 입시를 위해 그렇게 엄청난 투자를 할 필요 없어요. 책을 읽히는 편이 훨씬 나아요.’


안심이 됐습니다. 자녀 교육에 관해서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는데, 힘이 불끈 솟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의 입시교육은 상식과는 동떨어진 시스템인 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건 ‘미친 레이스'나 다름없습니다. 한번 뛰어들면 다시 내려오기 힘든 레이스이자, 가정경제의 모든 역량을 쪽 빨아내는 레이스이고, 아이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레이스입니다.


아내와 상의한 뒤, 나는 그 레이스에 아이를 동참시키지 않기로 했습니다. 물론 대학입시 자체를 포기한 건 아닙니다. 세상이 말하는 대학입시 경쟁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이의 의사는 분명히 확인했지요.


‘학원 다닐래?’


이런 제 질문에 둘째 아이 얼굴이 사색이 됐습니다.


‘저 집에서 책 열심히 읽을게요, 그러니까 학원 안 가면 안돼요?’


아이가 답했습니다. 아이는 학원을 가본 적이 없는데, 왜 저토록 학원에 가는 걸 두려워할까? 아이에게 물었더니 친구가 그러더라는 것이었습니다.


‘학원에 가면 지옥이 시작된대요. 게다가 학원 숙제가 많아서 잠도 되게 늦게 자야 한대요.’


미친 레이스에 동참하지 않기로 한 선택은 잘한 것 같습니다.

다만 이 마음을 죽 끝까지 잘 지켜갈 수 있도록 애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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