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와 성공을 가르는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얇은 막'

by 강호


악기를 배우든, 운동을 하든, 책을 쓰든, 외국어를 익히든 90% 이상의 사람들을 어떤 얇은 막 같은 것에 부딪칩니다. ‘얇은 막’이란 게 잘 설명하기 힘듭니다만, 예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기타를 쳤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초보 수준의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를 예로 들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때는 중학교부터 영어를 배웠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입시를 위해서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고,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거금을 주고 영어회화 테이프를 구매해서 영어 공부를 해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자막 없이 영화를 보지 못합니다. 또한 저는 매년 연례행사로 살을 빼고 복근을 만들어서 멋진 몸매를 가지리라는 결심을 합니다. 하지만 체중은 점점 더 늘어가고 위로는 안 자라도 양옆으로는 매년 눈에 띄게 ‘자라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제가 내가 이러고 있는 사이, 10%의 사람들은 그 ‘얇은 막’을 뚫어냈습니다. 누군가는 정말 날씬해진 모습으로 나타났고, 누군가는 외국인과 서슴없이 대화를 나누는 외국어 실력을 선보였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의 멋진 악기 연주 실력이나 목공 실력을 보게 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제가 무언가를 해내겠다고 결심하지 않았다면 그 ‘얇은 막’의 존재를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막은 그 이상으로 뛰어오르고자 하는 욕망이 없으면 부딪칠 일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 막은 너무도 투명하거든요. 노력해보지 않은 사람은 만나지 못하는 막입니다. 그러니 이 한없이 투명한, 하지만 절망적인 막을 만났다면 여러분은 무언가 해내기 위해 애를 썼던 것이니 조금은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입니다.


이 막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 앞에 가로 놓입니다. 이런 예를 들어보면 어떨까요? 한국사람은 대부분 10년이 넘도록 영어를 배웁니다. 책도 사보고 학원도 다니고 방송도 듣지요. 하지만 외국인 앞에서 입을 못 뗍니다. CNN방송을 쉽게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그중에 어떤 사람은 그런 수준을 뛰어넘고야 맙니다. 그들은 왜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영어 습득에 성공했을까요? 저는 여러 강사들은 자신이 아주 재미있게 영어를 공부했고 그래서 자신을 따라 하면 금방 실력이 쑥쑥 늘 거라고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기대를 심어주는 것은 잘못됐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동기부여가 필요하겠지만 어느 순간 그들은 꼭 이야기해줘야 합니다. 자신이 영어공부를 할 때 부딪쳤던 그 얇은 막의 느낌을 말입니다.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려고 분투하고 있지만 제자리걸음을 하게 만드는 그 막에 관한 이야기를 말이지요.


비슷한 것 같지만 아주 중요한 차이는 그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그 '얇은 막'에 부딪쳤고, 금방 뚫릴 듯 뚫릴 듯 하지만 뚫리지 않는 그 질김을 몸으로 느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뚫어냈을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영어의 어떤 '경지'에 오른 것이니까요.


안타깝지만 삶의 모든 영역이 그런 것 같습니다. 기획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기획일을 하고 있지만 무언가를 시장에 내놓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기획이라는 일은 결국 내놓는 기획물을 성공시켰을 때 가치가 만들어집니다. 수많은 암묵지들을 동원하는 이 일은 딱히 전문가와 아마추어를 구별할 눈에 띄는 기술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전문가와 아마추어를 구별하는 ‘얇은 막’이 만들어내는 차이는 어마어마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1000만 영화나 밀리언셀러 소설 같은 것은 그 ‘얇은 막’을 뚫고 나온 콘텐츠들인 것입니다. 그걸 찢고 나와봐야 큰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직접 찢어보지 않고 방송이나 신문으로 접해본 사람은 결코 알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얇은 막'에 부딪쳐보고, 그것을 찢어내기 위해 허우적거려야 합니다. 절대 쉽게 찢어지지 않습니다. '얇은 막'이 잔인한 이유는 그 얇은 막이 너무도 투명하여 이쪽과 저쪽이 전혀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건너갈 수 없을 뿐. 그렇기 때문에 평생을 그 막 너머를 동경하며 만년 무명으로 늙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저쪽에 있는 사람이나 이쪽에 있는 나나 결단코 능력의 차이가 있어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답답하고 짜증 나고 미치겠을 수밖에요.


그러나 그 '얇은 막'이 사실은 성공의 '전부'라고 봐도 무방한 듯합니다. 그 '얇은 막'을 뚫어낸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시장 파이의 99%를 가져갑니다. 그 '얇은 막'을 뚫어내지 못한 사람들이 나머지 1%를 나눕니다. 사실 누구나 그 '얇은 막'을 만나 뚫어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막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애쓰지 않고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일지도 모릅니다. 얇은 막 너머의 이쪽에 살든 저쪽에 살든 별 차이를 못 느낀다면 얇은 막을 뚫어내려고 그토록 애쓰지 않아도 되니까요. 별로 나쁘지도 않고 크게 손해 볼 일도 없이 그냥저냥 살아가는 인생, 얼마나 행복한가요. 이건 비아냥거림이 아닙니다. 진정 그렇게 생각하고 제 주변에는 그렇게 안분지족 하는 동료와 친구가 꽤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특별한 경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 자신이 막 너머의 저편으로 건너가고 싶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날카롭게 얇은 막을 찢어내야만 그 너머로 갈 수 있으니까요. 불행히도 저는 후자입니다. 저는 그 막을 숱하게 만났지만 부끄럽게도 아직 만족스럽게 뚫어내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여러 분야에서 그 막을 찢기 위해 도전하고 있습니다.


전 사실 나이 40이 될 때까지 그런 '얇은 막’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늘 제 자리였던 것입니다. 그 '얇은 막'이 정말 중요하고 확실한 구분선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했고, 그랬기 때문에 무엇 하나 제대로 끝낼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러다 마흔을 넘어서면서 깨닫게 됐습니다. 어느 날 주변을 둘러보니 얇은 막을 뚫어낸 이들이 보였던 겁니다. 젊은 시절 모두 그 막을 뚫기 위해 분투할 때는 몰랐는데, 20여년이 흐른 뒤에 그 얇은 막의 건너편에 서있는 친구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저마다의 ‘얇은 막’을 찢고 나아갔던 것이겠지요. 하지만 저는 여전히 막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40대를 20대처럼 살아보겠다고 마음먹으며 얇은 막을 찢어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얇은 막을 찢어낸다고 해서 제 인생에서 무엇이 얼마나 바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막 너머의 경지, 그 막 너머의 삶이 궁금합니다. 저는 믿습니다. 성공과 실패는 백지 한 장의 차이보다 적지만, 그 가운데에는 철로 만든 갑옷보다 질긴 하지만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얇은 막이 있다는 것을요. 그 미세한 차이, 0.000001 미리의 차이가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는 것을요.


아마도 그 막은 강철 같은 신념으로 만든 칼날 같은 의지, 그리고 쓰러져도 다시 덤비는 근성으로만 찢기는 듯합니다. 더 늦기 전에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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