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깊은 곳의 나'와
함께 하는 시간

- 화를 누그러뜨리는 방법에 관하여

by 강호

화가 나면 어떻게 하나요? 제가 본 이들 중 최악은 그 화를 가장 약한 사람에게 온통 쏟아붓는 경우였습니다. 집에서는 아이나 아내, 심지어는 노모에게 그러는 경우가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에게 고함을 지르고 짜증을 내서 뉴스를 장식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가 최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제 아이가 어렸을 때 저도 잠시 저의 화를 '훈계'나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아이에게 풀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넌지시 알려주더군요. 당신, 잘못하고 있다고요. 혼자 조용히 반성한 끝에 알게 되었습니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흘러 흘러 아이에게까지 갔구나. 그 이후로 아이와의 관계는 좋아졌습니다. 여전히 아주 간혹 화를 낼 때가 있지만 예전 같지 않습니다. 빨리 알아채고 아이에게 사과하지요. 너무 늦지 않게 알게 되고 빨리 바로 잡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다음은 화를 일으킨 사람에게 반발하는 겁니다. 그나마 비겁하지 않다는 점에서는 낫습니다. 자신에게 화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암묵적인 권력관계에서 자신보다 위에 있는 사람이기 쉬우니까요. 흔히 '갑'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지요. '갑질'이 나쁜 줄 다 알면서도 왜 '갑질'을 하고 '갑질'을 당하겠어요. 그런데 그 '갑'에게 반발한다는 건 그만한 용기가 있다는 것이겠지요. 참지 않은 만큼 마음속에 한이나 울혈로 남지 않을 것이고요. 다만 그 대가가 큽니다. 직장을 잃거나 돈을 손해 보게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사실 사람들은 머리로는 다 압니다. '화'를 내는 것이 건강에도 안 좋고 생활면에서도 안 좋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리고 화를 내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도 압니다. 그럼에도 참지 못하고 화를 터뜨리고 맙니다. 그럴 때는 에스키모의 지혜를 빌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어느 책에선가 읽었는데요, 에스키모인들은 화가 나면 혼자 넓디넓은 북극의 눈 덮인 벌판을 걸어간다고 합니다. 화가 나면 계속 걷고 또 걷는 것이지요. 걷다 걷다 화가 풀리면 그곳에 막대기를 하나 꽂아놓고 돌아온답니다. 거기다가 화를 남겨두고 온다는 의미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저는 저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중학교 동창 녀석의 생일이라고 시간을 내며, 업무상 중요한 상대방을 위해 술 한잔 기울이는 시간을 할애하며, 여러 사람들의 경조사에 얼굴을 비추는 반면, 제 자신에게 시간을 내주는 데는 정말 인색했다는 생각 말입니다. 누구나 그렇게 방치되면 누구라도 작은 일에 예민해지는 것 아닐까요. 그로 인해 마음에 '화'가 쌓이는 것이고요.


우리는 누구나 그렇게 '우리 내면의 자신'에게 시간을 내주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화가 날 때 즉각적으로 풀려고 난동을 부리는 ‘우리 내면의 자신’을 잘 달래주어야 합니다. 그와 함께 조용히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놀랍게도 ‘우리 내면의 자신’은 스스로 그 화를 다스릴 수 있게 됩니다. 제가 겪어본 바로는 사실 우리는 화를 터뜨릴 사람이 주변에 없으면 놀랍게도 화를 잘 내지 않습니다.(물론 초지일관 화를 내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자신을 잘 돌아보세요. 정말 그렇지 않은가요? 하다못해 옆을 지나가는 똥개라도 한 마리 있어야 분풀이로 걷어차거나 하는 것이지 완전히 혼자면 사소한 일에도 그렇게 발칵발칵 화를 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결국 화라는 것은 관심을 가져달라는 표현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형님이 한 분 계십니다. 차와 함께 평안을 파는 분인데요. 함께 일할 때 그분께 타인의 화를 풀어주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분은 화가 난 사람의 옆에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줍니다. 함께 욕하지도 않고 함께 화내지도 않고 조용히 들어주다가 한마디 합니다. '그랬겠다.' '화가 났었구나.' '힘들었겠다.' 그게 다입니다. 그리고 차를 한 잔 맛있게 우려서 건네줍니다. 차를 마시며 그 분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몸 안에 독소가 차를 통해 빠져나가듯 마음속의 '화'라는 독소가 씻겨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분의 방법을 체득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관찰할 수 있어 좋았구요, 닮으려 애쓰고 있습니다.('차 장수 클레멘스'라는 분입니다. 일산 정발산역 근처에서 찻집을 운영합니다. 일화다원이라는 찻집이에요.)


저는 차장수 클레멘스처럼 우리가 ‘우리 내면의 자신’ 옆에 더 오래 있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다른 어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왜 화가 났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사실은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들과 어울리고 남들과 비교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무지해져 가게 됩니다. 왜 화를 내는지 모르면서 화를 내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면서 무언가를 하게 되고 맙니다. 자신과 만나야 할 시간에 온갖 세상사로 번잡스럽습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마음 밭이 쩍쩍 갈라질 정도로 돌보지 못했었으니까요.


내 마음 바깥에 있는 세상의 지식과 학업, 성공 만을 갈구하면 우리 마음의 밭이 바싹 마르게 됩니다. 예민해지고 조급해지고 금방 화를 내게 되지요. 마음 밭을 촉촉이 적셔주어야 합니다. 주말마다 가족텃밭에 가서 배추나 무 같은 작물에 물 주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쯤은 ‘우리 내면의 자신’과 오랜 시간 함께 해야 할 겁니다. 스스로가 외롭지 않게 말이죠.


저는 매일 단 5분이라도 제 마음의 소리를 들어주려고 애씁니다. 화가 났을 때는 그 마음과 함께 꽤 먼길을 걸어갔다 오기도 합니다. 무척 어려울 줄 알았는데, 조금씩 익숙해져 갑니다. 하면 되는 것 같네요.


아이들은 사랑스런 마음으로 지켜봐 주기만 해도 잘 자라납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당신의 마음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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