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좀비 탈출을 위한 선언
저녁 11시에 잠들어서 아침 6시에 기상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어느 기사 때문이었습니다. 기사 제목이 무서웠습니다. '졸면 정말 죽는다'. 이게 제목이었거든요. 북한 군부의 넘버 2였던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졸다가 죽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북한의 '지존' 김정은이 한 말씀(?) 하시는데 현영철이 졸다가 사형을 당했다는 겁니다. 그걸 빗대어 붙인 익살스러운 제목이긴 했지만 실제로는 잠을 너무 안 자면 죽는다는 기사였습니다. 성인은 최소한 7-8시간은 자야 한다는 거였지요.
근데 그 기사가 삶의 질을 위해 습관을 고민하던 제 눈에 띄었습니다. 사실 제 잠자는 행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상과 현실의 격차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의 이상은 11시 취침 5시 기상인데,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11시에 잠들겠다고 눕지만,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1시에 잠들기 일쑤였습니다. 5시에 깨겠다고 알람을 5시, 5시 반, 6시, 6시 반, 7시 이렇게 맞춰놓고 잠들지만 5시에 폴짝 침대에서 뛰어내리는 대신 연신 이불속에서 핸드폰 알람을 끌뿐입니다. 결국 일어나는 시간은 출근시간을 코앞에 둔 아슬아슬한 시간일 뿐입니다. 보다 못한 아내가 이불을 둘둘 싸서 아이들 방으로 가며 한마디 합니다. '코 고는 것 까진 참을게. 근데 알람은 왜 그렇게 맞춰놓는 거야? 그냥 7시에 맞춰놔.' 끙.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한두 시간 정도 제 시간을 갖겠다는 소망이 담긴 알람인 것을.
그런데 부작용이 컸습니다. 저녁시간에는 피곤에 지쳐 아무 일을 못하고 아침에도 허겁지겁 출근하기 바쁜데 낮에 일하는 시간 역시 무척 피곤했습니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연구진이 20년 동안 연구해서 결과를 발표해 놓았는데, 매일 2시간씩 덜 잔 사람들은 더 잔 사람들에 비해 사망률이 2배 이상 높았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 것 같다 싶을 정도로 피곤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매일 6시간보다 적게 자는 사람들은 고혈압에 걸릴 확률이 높아졌고 밤에 일해야 하는 여성들은 유방암에 잘 걸렸다고 합니다. 5시간 미만으로 자는 사람은 당뇨병에 걸리기 쉬웠고요. 뇌가 잠을 자는 동안 각종 호르몬을 분비해서 몸의 여러 균형을 맞추는 까닭입니다. 그러니 병이 있는 사람일수록 잘 자야 합니다. 다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이 우리를 낫게 하는 거니까요. 잠이 보약입니다.
게다가 수면부족은 경쟁력을 갉아먹습니다. 집중력은 떨어지고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는 오류가 생기거나 지연이 생깁니다. 사소한 것들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뭔가 해보겠다는 의지는 줄어듭니다. 그 자리를 짜증이 메웁니다.
잠은 그만큼 중요했던 겁니다. 그렇게 보면 저는 잠도 못 자고 일상도 놓치면서 건강도 해치는, 꿩 놓치고 알 깨 먹고 겁나게 욕까지 먹은 형국이었습니다. 뭔가 잠자는 습관을 바꾸어야 할 것 같았지요.
그래서 10시 30분에 눕기로 했습니다. 일단 침대에 들어가서 멀뚱멀뚱 눈을 뜨고 있더라도 누워있다 보면 필요한 만큼의 수면시간을 확보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았습니다. 30분 앞당겼지만 나는 원하는 시간에 잠들 수 있었고 필요한 수면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하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수면 습관이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계속 노력하는 수밖에요.)
흔히들 우리가 하기 쉬운 실수가 시간을 뒤섞는 것입니다. 공부하면서 놀 생각을 하고 놀 때 일 생각을 합니다. 일할 때 휴가 생각하고 휴가 가서는 일할 생각을 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우리들의 시간은 공기 속으로 허무하게 사라지게 됩니다. 그게 잠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을 줄여서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겠다는 생각에 우리는 억지로 알람을 켜놓고 새벽 일찍 일어나고자 합니다. 그리고 밤에는 1시, 2시가 넘도록 잠들 줄 모릅니다. 낮에 일하느라 못한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대신 깨어있는 낮동안 몽롱하게 지내게 됩니다. 거의 하루 온종일 깬 것도 아니고 자는 것도 아닌 좀비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잠자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앞으로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나의 하루는 잠자는 시간 8시간을 제외한 16시간이라고 말입니다. 원래 인간에게 주어진 하루는 24시간입니다. 그게 디폴트 값으로 주어지는 것이지요. 그걸 저는 16시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8시간의 잠은 충분히 자고 대신 남은 16시간을 충실하게 살아내기, 그런 결심이었습니다. 나사(미 항공우주국)에서 연구를 했는데, 20여분 낮잠을 잔 비행기 조종사는 낮잠을 안 잔 조종사보다 2배 이상 집중력이 높았다는 겁니다. 충분히 잠을 자야 깨있는 시간이 충실해집니다.
사실 제 자신을 돌아보면 필요한 잠을 줄여 만든 깨어있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있나?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넋을 잃고 유튜브를 보거나 온갖 자잘한 일들에 시간을 줄줄 흘려버리고 그걸 벌충하기 위해 잠을 줄이고 있었던 것이죠. 잠자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해 잠을 줄였지만, 그런 대가로 깨어있는 시간들을 오히려 망가뜨려 버린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16시간짜리 하루를 선언하는 것은 그런 이유입니다. 그래서 충분히 잠을 자고 깨끗하고 말끔한 정신으로 그 16시간을 알차게 보내려는 것입니다. 90년이 평균수명이라고 하면 그중 30년은 자는데 써야 하는데 그걸 에누리하려고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대신 나머지 60년을 똘망똘망한 정신으로 살아가겠다는 겁니다. 그게 훨씬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며, 행복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