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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Feb 04. 2020

진짜 천재

- 남은 반백살을 '진짜 천재'로 살고 싶다

요령도 없고 꾀부릴 줄도 몰랐던 난 미련한 곰 같았어요. ‘나의 종교는 연극’이라 믿고, 질투조차 에너지 삼아 무슨 역이든 해내자는 각오로 묵묵히 버텼죠.
  

연극배우 박정자 씨의 인터뷰 중에서(조선, 20년 1월 30일, 목요일, 김경은 기자, <운동선수처럼 잠시도 쉬면 안 돼. 지금이 내 삶의 절정>)



언젠가 술자리에서 누군가 물었습니다. 분명히 당신도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느냐고요. 그때까지 그런 생각을 진지하게 해보지 않아서 쉽게 대답하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욱하는 심정으로, 혹은 잘난 체하고 싶은 마음에 제 스스로를 사람들 앞에서 천재라고 칭한 적은 한두 번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피그말리온 효과를 위해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하고자 했던 적도 있었지요. 그러나 제 마음속 깊이 제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주 치열하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술자리에서 들었던 질문 덕에 스스로에 대해서 좀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것부터 생각해봤지요. 답은 간단했습니다. 천재는 스스로가 자신을 천재라고 부르지 않지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천재라고 불러줍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 자신을 천재라고 칭하는 사람들을 그리 대단히 여기지 않는 편입니다. 생각보다 많더군요. 그런 기준을 갖다 대니 저는 아무리 머리 좋은 척 해도 천재가 아니었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이 저에게 머리가 좋다거나 똑똑하다거나 그렇게 부르지는 않았거든요.  오히려 사람들은 제게 ‘똑똑하다’ 거나 ‘스마트하다’는 표현보다는 ‘성실하다’ ‘노력을 많이 한다’는 평가를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젊을 때는 그런 평가가 싫었습니다. 제게 없는 것을 부러워하기만 했지요. 그러나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가다 보니, 똑똑하다거나 스마트하다는 건 그리 부러운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인생을 칭찬받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대신 연극배우 박정자 씨처럼 꾀부릴 줄 모르고 미련한 곰처럼 자기 분야에서 묵묵히 버텨내는 능력이 진짜 부러워해야 할 능력이었습니다. 그건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에서 나오는 것이죠. 세상의 평판이라는 저울로 재지도 않고, 돈이라는 저울로 재지도 않기에 미련한 곰처럼 지속할 수 있는 것이었겠지요. 


정민 교수님의 칼럼을 읽다 보니 그런 상태를 ‘응신식려’라고 한다더군요. ‘정신을 한 곳에 응축시켜 일체의 다른 생각을 멈춘 상태’를 말합니다.(정민의 세설신어 <응신식려>, 조선 20년 1월 16일, 목요일) 이런 상태를 평생 유지해가는 사람이 진짜 천재가 아닐까요. 저는 바로 이게 번뜩임이 없는 사람, 세상 사람들에게 똑똑하다거나 머리 좋다거나 하는 평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기적들은 한순간의 번뜩임이 아니라 꾸준한 ‘응신식려’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또 세상에서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부단한 노력과 열정으로 자신의 실력을 가다듬은 사람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언뜻 보기에 재기 있어 보이는 사람들은 한순간 잠시 타올랐다가 재처럼 흩어지고 맙니다. 


올해로 반백이 되는 나이가 되어보니 세상의 천재란 실은 미련한 곰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늦었다고 생각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론상 살아온 만큼 더 살아갈 수 있는 나이라고 합니다. 


남은 반백년을 지내고 똑같은 후회를 하지 않기로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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