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의 '전성기'에 관하여
어어어, 하다가 마흔을 넘긴 어느 날이었습니다. 마음속에는 아직 팔팔한 스무 살 청년이 숨 쉬고 있지만 몸은 노안과 체력 저하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옛 어른들의 진부한 표현을 안 쓸 수가 없습니다. 세월 참 빠르다고 느꼈습니다. 세월을 살아 내면서 ‘언젠가’’시간이 되면’이라는 핑계로 조금씩 미루며 마음에 묻어두었던 꿈에는 녹이 슬고 이끼가 끼고 곰팡이가 슬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와 비슷한 삶을 살던 친구나 선후배의 소식들이 바람에 묻어 들려오기도 하고, 핫한 인터넷 상을 떠돌기도 했습니다. 누구는 커다란 명예를 얻었고 누구는 큰돈을 손에 쥐었다고 합니다. 누구는 조직의 꼭대기에 올랐다고 하고 누구는 명문대학의 교직에 들어섰다고도 했습니다. 저는 삼사십 대를 대부분 책을 만들며 보내며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마다 조금만 지나면 나도 비상할 거야, 이렇게 다짐하며 한 해 한 해를 흘려보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제가 이제 곧 낼모레면 쉰이 된다는 것을요. 그러자 어느 순간 공포심이 밀려들었습니다.
예전에 함께 공부하던 선배가 제게 장난스레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누구나 전성기라는 게 있는데, 강 선생은 언제가 전성기였어요?” 그 질문을 들었을 때 저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지만 마음은 쓸쓸했습니다. 전성기라는 게 저한테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그런 허전한 마음조차 들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타인의 성공을 질투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니 그게 더 싫었습니다. 질투는 젊음의 힘인가 봅니다. 그런 질투조차 일지 않는 마음의 풍화작용이 무서워서 더 쓸쓸했습니다.
어느새 어떤 경우에도 미래에 대한 가능성으로는 평가받을 수 없는 나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성과와 결과로 평가받는 나이가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과와 결과가 조직이 원하는 수준에 턱없이 못 미치게 되었습니다. 세간의 평가 역시 그다지 높지는 않았고요. 아마도 가능성에 기대어 도전과 성장을 멈추었던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항상 뒤로 미루어 왔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나도 세상을 향해 날아오를 거야. 나중에, 조금만 있다가..... 그렇게 중요한 것들을 미뤄오며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겁니다. 그러는 사이에 세월이 저의 젊음과 청춘을 가져간 겁니다. 젊을 때는 지금은 아직 초라하지만 앞으로 내 미래는 분명 창대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도 그 가능성을 믿어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에 그 미래가 눈 앞에 당도해 있었던 겁니다. 증명을 해야 하는 나이가 되어 버렸는데 그 증명이 신통치가 않았던 겁니다. '내 인생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일까?' 우울에 빠졌습니다.
그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일에 전념해보기도 하고, 취미를 가져보기도 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으려 해도 눈이 침침해졌고, 취미로 뭔가 벌려 보려 해도 주머니가 너무나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모아둔 돈은 없는데 늘 회사 생활은 불안 불안했고요. 회사를 떠나면 혼자 돈을 벌 줄 아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남들은 이것저것 취미로 배우고 잘하는 것도 많은데 저는 별다르게 할 줄 아는 게 없는 것 같았고요. 세상은 4차 산업혁명으로 휙휙 바뀌는데 저는 '문송합니다', 수준이었습니다. 마음만 허겁지겁 바빴던 거죠.
이런 모습이 어쩌면 대한민국 중년들의 속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물론 훨씬 더 멋있게 자신을 증명한 분들이 있지만요.) 저는 두 종류의 중년을 봅니다. 이런 얘기 자체를 싫어하고 꺼리는 중년이 있습니다. 조금 살만한 중년들입니다. 나이를 받아들이고 인생의 황혼을 인정하는 부류입니다. 현재의 자신에 대한 어느 정도의 만족이 있는 친구들입니다. 그들에게 제 넋두리는 쓸데없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골프나 배우라고 합니다. 남은 인생을 즐기라고 합니다. 대화가 안됩니다. 또 한 부류는 저와 같은 부류이긴 한데, 현재의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현재가 힘듭니다. 그들은 불만이 많습니다. 그래서 술을 많이 마십니다. 세상을 욕합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습니다. 우울증을 앓습니다. 조금씩 병들어 갑니다.
그러다가 저는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여기저기서 조금씩 보게 되었습니다. 아직 인생이 끝나지 않았기에 조금씩 성장해가는 중년들이 있다는 것 역시 알았습니다. 젊은 친구들의 전유물 같았던 유튜브에 용기 있게 뛰어들어 자신의 방송을 만들고 멋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분들이었지요. 저는 그런 분들을 보면서 반성했습니다. 나이가 들었어도 매일 성장해야 한다고 다짐했지요. 지금부터라도 무언가 시작해서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다시 청춘의 시절로 돌아가도 또 똑같이 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후로 이제 4~5년이 흘렀습니다. 제 삶이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단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좋은 인연과 함께 배낭여행을 다녀왔고 멋진 대표님이 운영하는 회사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재취업한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그러나 저는 안으로는 영글고 있습니다. 저는 매일매일 성장합니다. 매일 어제의 나보다 나아지고 있습니다. 저는 성장하고 있으면 끝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이름을 휘날리는 것은 재능과 노력에 운과 타이밍이 도와줘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살면서 훨씬 더 노력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그렇게도 많은 데, 그들 모두를 세상이 알아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운은 제가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려고 합니다. 작은 목표들을 정해두고 매일매일 한 걸음씩 작지만 꾸준한 발걸음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것만큼은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고, 혹여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의 앞머리(기회의 여신은 뒷머리는 대머리랍니다.)를 움켜쥘 수 있는 역량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운의 부족은 받아들이지만 노력의 부족은 후회로 남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성장’하고 있는 한 인생은 끝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매일 성장하는 우리 모두의 전성기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