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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비완 Feb 21. 2023

마그마를 찾아서

이루지 못한 꿈과 인생의 의미

2018년의 여름, 나는 아프리카에 갔다.

그곳에는 세상에서 가장 낙후된 땅, 다나킬이 있다.

에티오피아 구석에 위치한 그 땅에는 에르타 알레라는 화산이 있고, 그곳에 올라가면 마그마를 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마그마가 주는 신비로움에 사로잡혔다.

내 여행은 언제나 그랬다. 소크라테스가 다이몬의 소리를 들었듯이 액자 속의 페트라 사진이 나를 부르기도 했고,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첫 구절, '소년의 이름은 산티아고였다.'라는 첫 구절에 이끌려 피라미드에 가기도 했다.


그 날도 그랬다.

세렝게티에서 일주일을 보낸 나는 누군가로부터 다나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유황 냄새가 가득하고, 3시간 정도 산을 올라가면 시뻘건 불을 내뿜는 마그마를 볼 수 있다고.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모든 것을 녹이는 열정과 에너지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그 메마른 땅에 나는 결국 갔다.

그곳에서 나보다 먼저 화산에 올라갔다 온 무리를 만났다.

이름도 모르는 남자가 내게 화산에 대해 말해주었다.

자신이 올라간 날은 스모그가 너무 심해서 자신은 마그마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충격적인 말을 남겼다.

 "그러나 나는 그 자체로 좋았다."

그것이 그의 코멘트였다.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까지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그마를 찾아서   곳까지 갔는데, 정작 마그마를 보지 못했으면서  자체로 좋았다는 말이 진심이 아니라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게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난 행운의 사나이니까. 그리고 마그마를 보지 못한다면 내 여정에 들은 시간과 비용이 너무 아까울 것 같았다.


가이드는 낮에는 푹 쉬라고 했다. 어차피 더워서 올라갈 수 없으니까. 저녁 7시가 되면 출발할거라고 말하고는 준비를 위해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물을 충분히 마셔두라고 했다.


그의 조언대로 나는 물을 충분히 마셨다.


7시가 되었다.

가이드는 나를 비롯한 10명의 사람들에게 물었다.

낙타를 타고 가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

돈을 내면 낙타를 타고 갈 수 있다.


나와 다른 한명이 낙타를 타겠다고 했다.

나머지 8명은 자신의 다리로 걷겠다고 했다.

그렇게 10명의 마그마 원정대가 출발했다.


중간쯤 이르렀을 때, 한 여자가 주저앉았다.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자신은 도저히 이 여행을 수행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녀와 함께 온 남자는 그녀를 다독여주었지만, 그녀는 계속 울기만 했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그녀가 낙타를 타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순간 나는 내 낙타를 양보해야 하나 생각했다. 가이드에게 말했다. 그녀와 낙타를 같이 타고 가도 되냐고.

그러자 가이드가 내게 말했다.

'안돼.

 그녀는 육체적으로 문제가 있는게 아니야. 이건 그녀의 정신력 문제야. 그녀에게 시간을 주기만 하면 .'

가이드의 말이 결과적으로 다 옳았다.

다 옳았다는 뜻은, 첫째, 그녀의 문제는 심리적인 것이었으며, 그녀를 낙타에 태우면 다른 원정대원도 주저 앉을 것이 뻔했다. 그리고 그녀 스스로 일어나지 않는 이상 누구도 그녀를 일으켜 세울 수는 없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이 화산 원정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가 여행을 간다기에 그저 따라 온 것이었다. 여자는 짝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몰디브나 발리의 한적한 해변에 누워 선탠을 즐길 수도 있었겠지만, 남자는 화산을 보고 싶어했고, 그녀는 남자가 가는 곳이면 괜찮으니 따라가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하지만  화산 원정은 그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일이었다.

다리도 아프고, 내가 이걸  하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생겨났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그녀는 남자와 가이드의 멘탈 케어를 받아 다시 걷기 시작했다.

3분의 2쯤 다다랐을 무렵, 설상가상으로 천둥번개와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곳 다나킬의 날씨는 종잡을 수 없었다. 낮에는 공기마저 뜨거워 숨을 쉬기 버거웠는데, 밤에는 차가운 비가 내려 원정대 모두가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기 시작했다.


나는 낙타를 탔기에 상대적으로 체력을 보존할 수 있었지만, 엉덩이가 너무 아팠고, 몸을 움직이지 않아 비바람에 극심한 추위를 느꼈다.


마침내, 저마다의 고난을 이겨내고 마그마 원정대는 정상에 다다랐다. 결론적으로, 우리 중 누구도 마그마를 보지 못했다. 비가 내리는 바람에 분화구가 연기로 가득 찼고, 아래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분화구 안을 들여다보려고 할수록 화산재가 목구멍을 가득  기침이 났다. 과장 하나도 없이 숨을  수가 없었다. 화산이 폭발하면 화산재 때문에 질식한다는 말은 사실이라고 느꼈다.


나는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고난과 역경을 참고 견뎠지만, 마그마를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 여정이 의미가 없었던 건 전혀 아니었다.


내 여정에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마그마를 보는 것. 나는 마그마를 보지 못했다. 내가 봤던 것은 고난 속에 피어나는 사랑이었다. 걷지 못하겠다며 울었던 여성은 비바람 때문에 차가워진 몸을 남자의 품 속에서 녹일 수 있었다. 남자는 자신 때문에 고생한 여자에게 미안해서인지, 앞으로 있을 인생의 어떠한 고난도 이 여자와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그녀를 꼭 안아주고 있었다.


목표와 인생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정한 목표대로 이뤄내는 삶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한 인생을 모두가 부러워하고, 자신 역시 생의 의미를 거기서 찾을 테니까.

그러나 분명한 ,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고 해서  과정이 헛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운이 좋다면 각자의 방식대로 목표했던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좋은 여행이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 게 아니라
무엇을 앗아가야 한다
우리가 확신하는 그 어떤 것을


어떤 문제는 겉으로 드러나는게 진짜 원인이 아니며,

진짜 문제는 정신적, 심리적 부분이 더 크다는 점.


내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실패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며, 다른 것을 얻을 수도 있다는 점.


진정한 사랑은 역경 속에서 피어나며,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성공도 실패도 아닌 그 과정 자체를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는 점.


공이 굴러 떨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웃으며 산을 내려가는 시지프스처럼

인간은 마그마라는 꿈을 찾아 여정을 떠나는 존재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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