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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방위병 비화 3

소집해제 보름 전, 헌병대 압송

by 정건우

해병대 방위병 비화 3 / 정건우


소집해제 보름 전, 늘어질 대로 늘어져 마을 이장처럼 싸돌아 다니던 나는 어느 날 밤, 이웃 초소로 마실을 갔다. 어찌어찌하다 얻어 입은 미해병 기모 방한복 상의에 슬리퍼를 질질 끄는 전형적 마실 복장으로. 쌀쌀한 날씨에 발이 제법 시렸다.
"필승, 영광임돠 각하"
"별일 없지럴?"
경계병이 일단 겉으로 환대해 준다. 과연 모두 잘하고 있었다. 갑자기 생선회가 먹고 싶어 왔노라니까 나 보다 2 기수 아래인 초소장이 그 자리에서 두 명을 차출, 즉각 잠수병으로 임명하더니, 이백미터 전방의 가두리 어망 비슷한 곳에서 싱싱한 횟감을 선별하여 가져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추운 한겨울, 그것도 거의 자정 무렵에.

“나는 돔 아니면 안 먹어”

"옛! 알겠습니다 아


잠수병은 떠나고, 무료한 나를 위해 초소장은 엄지와 까치가 나오는 이현세의 만화책을 주며 보시란다. 잠시 뜸 들이다가 초코파이 하나를 또 뭉기적거리며 내놓는다. 반달이 조각해 놓은 듯이 선명하게, 그러나 조금은 서늘하게 떠있고, 초소 옆 인근의 어디에선가 가깝듯 먼 듯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들으니 고향 생각이 다 나는 것을. 아아! 양구 서천 정림리 앞을 흐르는 강가에서 목덜미에 솜털이 선하던 소녀와 같이 듣던 그 소리와 다를 게 무어냐. 아아! 고향의 강이여 아스라함이여 설렘이여 바람이여 소녀여 소녀여.

아차! 소녀고 나발이고 낯익은 섬광이 허공을 비추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그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박차고 일어나 2층 탐조등실로 뛰어올랐다. 그랬더니 과연 건너편 초소에서 의아물체를 포착했다는 신호로 탐조등을 위아래로 흔들며 야단인 것 아닌가?. 탐조병은 그것도 모른 채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표정으로 골똘해 있었다. 나는 야인시대 김두한처럼 발길을 날려 탐조병을 걷어차고 우리도 익히 탐지하고 있었노라는 표시로 탐조등을 대응하여 흔들어 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살아온 22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의 미래가 점점 확실하게 불안해지기 시작할 즈음, 두 줄기 뽀얀 물길을 가르며 편안하게 가고 있는 두 잠수병 우측 세시 방향에서 한 척의 소형 경비정이 달려오고 있는 게 목격되었다. 그제야 사태를 짐작한 둔한 초소장이 내 옆에서 사색이 되어 서있다. 경비정이 두 잠수병을 태우고 초소를 향하여 다가오자 초소장이 경악한다.

"어떤 놈이 책임자야"

경비정장으로 보이는 해군 대위가 나직하고 겁나게 물었다.

"접니다 마는" 초소장이 엉거주춤하게 나섰다.

"마는? 마아는? 이 자식 완전히 간 놈이군. 네가 얘들 잠수시켰나?“

"그게, 그러니까" 머뭇거리자 지체 없이 작전은 시작됐다. 경비정장의 발길질 솜씨는 거의 신마적 수준이었다. 초소장이 죽게 생겼으므로

"내가 그랬습니다" 하고 결국 내가 나섰다.

"이건 또 뭐야. 넌 뭐 하는 놈이야" 아아, 오랜만에 듣는 그 놈자 소리에 약간 억울해지려는 기분도 수 초, 그 자리에서 나는 끽소리도 못하게 쥐어 터지고는 곧장 헌병대로 압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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