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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들녘에서

낟알마다 바람이 한 올 한 올 들어가 잠긴다

by 정건우

가을 들녘에서 / 정건우


논길에 쪼그려 앉아

바람이 훑고 가는 벼 이삭의

고개 숙인 목덜미를 가만히 본다

낟알마다 바람이 한 올 한 올 들어가 잠긴다

바람에 문처럼 어 있는 햇볕

알곡들 부푸는 소리 부시게 짱짱

상공에 포진해 있는 어마어마한 보급군단이

햇살과 바람을 엄정하게

신속한 배치, 숨 막히는 일사불란이다

하늘 아래가 촘촘하다

장중한 무료 속에서

알곡들이 까칠하게 통통해진다

극저주파 구령 소리에 들녘이 여물어간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열일곱에 바다를 첨 봤을 때

소리 없이 솟구치던 눈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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