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의 문자
사랑해요 아버님~~!! / 정건우
- 며느리의 문자
자식 자랑하는 것이 팔불출 짓이긴 해도 이쁜 며느리를 어쩔 것인가?. 더욱이 그 이쁜 짓이 그토록 내가 갈구하는 문화적 측면에서 발현됐을 때의 기쁨이란 또 이루 말할 수 없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란 세속의 평가가 어리대고 말 그런 차원이 아니다. 이럴 때 나는 내가 시퍼렇게 살아 있음을 팔팔하게 느낀다. 며칠 전 늦은 밤에 며느리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다. 이번에 시집 한 권을 샀는데 너무 좋더라는 것이다. 보내온 사진을 보니 「작약과 공터(문학과 지성사)」라는 허연 시인의 시집이었다. 시집을 보면서 아버님이 오버랩되기도 했다는 것이며, 시를 읽는 데 왜 이렇게 슬픈지 모르겠다고도 한다. 오랜만에 서점에 와서 책을 보니 너무 좋다며 내년부턴 문학에 더 빠져 살아보고 싶어 졌다는 것이다.
아버님 생각이 불현듯 나서 기분 좋은 마음에 연락드린다며, 이런 얘기할 수 있는 아버님이 있어 며느리는 참으로 기쁘단다. 요 요런 게 소위 백만 불짜리 멘트라는 것일 테다. 이런 말은 꾸미려고 아무리 용을 써도 꾸며지지 않는다. 그런고로 팔불출이고 뭐고가 끼어들 틈새가 없다. 생의 보람이나 우리의 희망이란 추상이 구체적으로 형상화되는 실재의 순간이 바로 이런 때이다. 그날 밤, 나는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웠지만 정신은 세수한 듯이 맑았다. 아주 사소하지만 폭발력은 메가톤급으로 충격이 큰 며느리의 문화 도발에 나는 감사하고 그저 고맙기만 하다. 내 며느리이기 전에 치열한 현대를 사는 서른 초반의 젊은이로서 고전적인 인문학에 손과 마음이 함께 가는 그 믿음직하고 장한 행로에 잔잔하지만 든든한 박수를 보내고 싶은 것이다.
며느리를 처음 본 날을 기억한다. 서울 성북동의 어느 한적한 찻집에서 아들 옆에서 다소곳하던 며느리가 이성복 시인의 시 “남해 금산”을 말했을 때의 그 신선함은 아직도 서늘하다. 시 이야기로 얼마간의 시간을 허물었는지 모른다. 며느리가 원래부터 문학을 좋아했는지, 아들에게서 들었을 내 정보에 적극적으로 발맞추기 위해 벼락공부를 했는지 처음엔 의아했지만 금방 알 수 있었다. 며느리는 문학도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문학을 특히 시를 사랑하였다. 자주 만나 이야기하며 눈여겨본 그녀의 일상 태도에서 적절하게 잡혀있는 정서적 균형 감각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참으로 컸다. 맛을 보려고 냄비로 끓인 라면을 죄다 먹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명쾌한 기분이었다.
칠 행의 단순하고 쉽고 아름다운 노래지만, 이성복의 「남해 금산」은 결코 만만한 시가 아니다. 시를 이해하려고 이성복을 공부했을 며느리는, 시인이 초기에 보여준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언어의 전위성과 그 집요한 열정에 당혹했을 것이고, 아버지, 어머니, 누이 등 가족이라는 모티프를 중심으로 그들과 부대끼면서 느끼는 고통과 치욕의 증상을 극복하고 타자와 열린 세계로 확장되는 과정을 봤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시 「남해 금산」의 행간의 모호성을 해결하기 위해 며느리는 각종 자료를 섭렵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남해 금산의 기기묘묘한 바위들은 이 세상이 사랑을 떠나보내고 그 상실의 아픔을 견디는 자리라는 사실을 감득해 냈을 것이고, 시인에 의해 남해 금산은 돌을 매개로 신화적 사랑이 일어난 승경勝景으로 승화됐음을 이해하는 인지의 기쁨을 누렸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호기심과 궁금증을 해결해 나갔을 며느리의 문화적인 발걸음이 나는 그저 이쁜 것이다.
문학은 특히 시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본질의 구체적 추구라는 것이 내 지배적인 생각이다. 우리가 문학 작품을 읽는 이유는 스스로의 감성을 자극하고 다양한 정서 경험을 쌓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해는 단순히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복잡한 행간의 심리를 해석하고 그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표현하는 능력을 키우며 균형 잡힌 정서 시각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순기능이 어디 문학에만 국한되는 세상인가?. 일상 대화나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다양한 메시지를 심도 있게 이해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간접 경험을 통해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 균형 잡힌 시각을 배양하려 몸부림치는 며느리에게 나는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오냐오냐, 나도 우리 며느리 엄청나게 사랑한단다. 내가 내 생을 지켜야 할 강력한 내 의지의 일부가 될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