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이른 봄날의 오후

아지랑이 영혼처럼 아른대는

by 정건우

입춘, 이른 봄날의 오후 / 정건우


연못 둘레길 산책을 하다가

아지랑이 몽글대는 산 아래 외진 길로 가는데

개 한 마리가 졸래졸래 따라오는 것이다

다리가 짧고, 늙고, 살이 찐 암캐

바셋 하운드, 프랑스 개

돌아 서니 개도 서서 날 올려다본다

쪼그려 앉아 서로 눈길을 마주하는 순간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가 오셨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등을 내밀자 슬그머니 다가와 코를 디민다

아, 이 냄새, 하는 듯한 슬픈 눈빛

몽블랑 샤모니에 붉은 사슴 사냥을 하러 가서는

이때껏 오지 않는 새신랑의 스킨 향기와

아버지의 밭은기침 소리가

우묵한 곳에서 오글거리는 저 굴참나무 아래

죽은 것과 산 것이 한데 뒤섞여

앞서니 뒤서니 어디론가 노곤히 가고 있는,

아지랑이 영혼처럼 아른대는,

이른 봄날의 환한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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