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茶와 세작細雀 녹차

우리 녹차, 나에게는 조강지처 같은 존재다.

by 정건우


중국茶와 세작細雀 녹차 / 정건우

중국차만 줄곧 마신 것도 15년은 족히 됐었나 보다. 한국의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초의선사의 「동다송」, 「다신전」을 읽으며 세작 녹차에 푹 빠진 지 3년 정도 지나 연히 접해본 중국차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무엇보다 6대 분류로 구분되는 차의 볼륨이 선을 압도하였다. 차, 청차, 백차, 황차, 홍차, 흑차 등, 공 방법과 발효 정도에 따라 구분된다는 차의 종류도 그렇거니와, 다시 소분류 되는 원산지의 차 종류별 브랜드가 어마어마하다. 그저 비발효 녹차 하나로 통칭되는 우리 것의 궁상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당연히 차가 신라시대 때(흥덕왕) 중국에서 우리에게 전파되었고 녹차를 주로 장려했으니 그럴밖에. 나는 그 화려하고 다양하며 알면 알수록 오묘한 중국차의 매력에 금방 푹 빠지고 말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하여 녹차지왕綠茶之王이라 불리는 저장성 항주의 서호西湖용정차龍井茶, 그것도 사봉용정獅蜂龍井 명전明前녹차를 현지에서 바로 공수받아 맛보던 벽록 수색과 두화 향의 감흥은 지금도 아릿하다. 좌우간 나는 중국차에 거의 미쳐서 유명 차를 두루 마셔보기로 크게 결심하고 실행에 나섰다.



역시 세계적인 소주의 벽라춘碧螺春, 안후이성 황산의 황산모봉黃山毛蜂등 특품 녹차와, 청차지왕靑茶之王이라는 푸젠성 무이암산의 대홍포大紅袍를 비롯한 백계관白鷄冠, 수금귀水金龜, 철라한鐵羅漢등 4대 청차 명총은 물론, 근래 각광받아 유명해진 육계肉桂차, 그리고 안계 철관음鐵觀音차, 황금계黃金桂등 오룡차烏龍茶 계열, 흰 털이 눈같이 뽀얀 백호은침白毫銀針, 동방미인이라 일컬어지는 대만의 명차 백호오룡白毫烏龍, 향이 특히 강한 대만 아리산 고산차高山茶 등 반발효 계열, 그리고 운남의 맹해 다창공사에서 건창으로 제다 하여 30년 이상 후 발효시킨 역무산産 보이흑차普洱黑茶를 구했을 때의 감격은 지금도 짜릿하다.



백차 백모단白牡丹, 홍차 기문祁門, 황차로는 그 유명한 안후이성 훠산현의 곽산황아霍山黃芽, 후난성 둥팅호의 군산은침君山銀針, 쓰촨성의 몽정황아蒙頂黃芽 등 중국의 유명 차란 차는 거의 일급 이상으로 구입하여 200여 종 넘게 마셨던 것 같다. 그러면서 이른바 다인茶人들 좀 보라고 자랑도 하며, 거드름도 피우고 으스대었다. 회사 사무실에도 자사호와 찻잔을 구비하여 품질 좋은 차를 사장님과 주로 마셨고, 내방객들에게도 접대하였다. 일부러 차를 마시러 오는 고객이 있을 정도였다. 일본 차는 빛깔로 우리 차는 맛으로 그 오묘한 차의 기준을 논하는데, 확실히 중국차는 그 향과 수색이 천차만별로 다양하며, 쉽게 질리지 않아 갈 데까지 가보자고 작심했던 것 같다. 내친김에 중국 다기에도 흠뻑 빠져 형형색색의 자사호磁砂壺로 불리는 중국 다호를 수집한다고 요란을 떨었다. 내가 이렇게 중국차를 쉽게 구할 수 있었는 데는 그 방면에 해박한 중국의 지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봄가을 두 번을 햇차 기다리는 맛으로 세월을 죽이며 고대하기를 15년쯤 했을까?.



그렇게 부산 떨던 세월의 어느 한 날. 그때 무슨 일인가가 있어서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거실을 왔다 갔다 하다가 실없이 장식장을 열어보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은박지에 포장된 수불 세작 녹차를 발견하였다. 지리산 화개동천에서 지인이 보낸 것인데 언제 받은 것인 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불현듯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제대로 우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다관 차리기가 귀찮아 그냥 머그잔에 대충 뿌려 마셔 보았다. 순간, 뒤통수를 무언가에 얻어맞는 듯한 깊은 충격이 왔다. 아아! 이 깊은 맛이라니. 이 점잖고 순하며 선한 향이라니. 아스라하게 스쳐가는 바람이라니. 늘 내 뒤를 따라왔음에도 몰랐다가 갑자기 뒤를 돌아다보는 순간 보게 된 내 그림자 같은 것이라니. 눈물 나도록 반갑고 고마워서 차라리 슬프게 터지는 울음 같은. 잊힌 연인 같이 아주 가깝고 낯익게 어른대는 그리움 같은 것이라니. 다관, 숙우, 찻잔의 예열은커녕 머그잔에 그냥 믹스커피 타 먹듯 마신 차의 맛과 향이 이렇게 그윽할 수 있단 말인가?. 갑자기 또 천장이 “쿵” 소리로 꺼지며 내 어깨에 내리는 듯한 이차 충격이 왔다. 귓속이 얼얼할 정도로 무너지는 소리의 파편들이 귓전을 때렸다. 어지러워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그 충격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별로 신통치 않은 나의 정신이 번쩍하며 기운을 차렸다. 정말, 이 한 잔의 우리 녹차로 나는 아주 오래된 친구를, 연인을 다시 만나는 듯한 감격에 싸여 그날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였다. 즐비하게 전시된 중국차의 틈새에도 끼이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처박혀 방치됐던 우리 세작이 이런 존재였음을 뒤늦게 알게 되는 무지와 회한과 부끄러움과 고마움과 서러움이 뒤엉켜 형용할 수 없는 비감으로 몰려왔다. 나는 멍하니 있다가 베란다로 나가 담배를 연거푸 피워 물고 한 가지 골똘한 생각을 하였다. 중국차에 대한 나의 바람기는 거기서 일시에 진정되었다. 그래도 정말 아끼는 중국차는 손님 접대용으로 몇 개 남겨두고 나머지는 중국차를 좋아하는 다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중국차가 갑자기 싫어져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



서너 개 남긴 중국차 앞쪽으로 우리 세작을 모셔 놓았다. 손님들이 찾아오면 원하는 차를 우려 내놓고, 나는 한동안 세작을 즐겨 마셨다. 아들에게 배운 GOD의 "길"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마시는 우리 세작은 일품이다. 지금은 게을러지고 몸도 좀 불편해서 가끔 믹스커피를 홀짝대고 있지만. 그 후에 어쩌다 차인회에서 차담 기별이라도 오면 몇 번을 뒤로 빼다 황송하게 가서 한마디 하곤 했다. 왜 차를 마시는데 오늘도 이렇게 한복을 입고 왔냐고. 결혼식 때 드리는 폐백 같은 행사를 일상에서도 그리하면 누가 살겠냐고. 너무 경건한 것도, 너무 심각한 것도, 너무 찾아 대는 그 예와 형식이란 것도 모범답안같이 시행돼야 한다면 어렵고 힘들어 누가 차를 마시겠냐고. 차를 대하는 기본은 언니들 충분히 숙달되었으니, 이제부턴 무릎이 다 나오는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버티 히긴스의 "카사블랑카"나 아니면 GOD의 "길"을 들으며 차를 마실 줄 알아야 한다고. 머그잔의 녹차가 200종의 중국차를 물렸다고.



그래야 차는 진정 마시는 사람들이 한정되어 보이는 특별한 기호 대상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깨질 수 있다. 물론 차를 대하는 전통적이고 기본적인 규범을 잘 알고 마신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그러나 너무 형식에 치우쳐 차를 대한다면 차는 대중을 외면하고 저만큼 달아나버린다. 그래서 기본은 알되 형식은 과감하게 변형이나 축소 또는 생략시킬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라고 본다. 중국차는 그 차대로, 우리 녹차는 또 그대로 각기 제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고유의 기품이 있다. 서산을 물들이는 노을은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 바라보더라도 고향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차를 마실 때 드는 기분과 같다고 할까?. 은은한 녹차를 마실 때면 나는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낀다. 고향에 온 기분이다. 그런 차분한 평정심을 차를 마실 때만이라도 가져보라는 것이 차가 전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한다. 중국茶와 세작細雀. 우리 녹차는 차에 대한 편력이 많던 나에게 조강지처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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