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팔자가 같은 친구 이야기

임진壬辰 괴강魁罡의 솔로이즘(SOLO-ism)

by 정건우

사주팔자가 같은 친구 이야기 / 정건우


중학 동창 중에 나와 사주四柱팔자八字 즉 생년, 생월, 생일, 생시라는 네 개의 기둥과, 각 기둥에 배합된 천간과 지지의 합계 여덟 자가 같은 친구가 한 명 있지요. 생시만 약간 달라서 내가 진辰時, 그는 사巳時였으니 두 시간 정도 빠른 내가 형이었습니다. 인물이래야 저나 나나 산적 스타일이니 별 볼일은 없고, 그가 나보다 2센티쯤 컸고 덩치는 비슷했던, 중학시절 절친 중 한 명이지요. 공부도 썩 잘해서 전교 Top 10 수준에, 같은 씨름부 소속에다 선도부 생활도 같이 했던 인물입니다. 주四柱 중에 특히 일주日柱가 한 칼 한다는 임진壬辰 괴강魁罡이라 둘 다 성격과 리더십이 매우 강했습니다. 저도 사주 공부를 취미 삼아 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도 어지간히 했더군요.



고교시절부터 연락이 끊겨 서로를 잊고 살았습니다. 그동안 나는 무던히도 그를 찾았지만 알 수 없어 이민 간 줄 알았습니다. 후배의 기별로 그를 찾은 날 이런 대화를 한 기억이 납니다.

"이 시키, 어디 갔다 이제 왔어?"

"야야, 여기 산골에 숨어있었어"

"뭘 먹고사냐?"

"선생질하고 산다"

"선생질이라고 하는 걸 보니 그럼 너는 가마귀 싸호는 골에 백로란 말이냐?"

"아, 나야 애들만 보고 사는 인생인데 윗 대가리 눈치 보고 살면 그게 선생질이지 뭐 (에잇, 어쩌고 투덜거림)"

"에이 씨부랄, 때려치우던지 다른 데로 가던지 해라"

"안 그래도 곧 간다, 공업계에서 인문계로, 그게 안 되면 때려치운다"

"야야, 촌동네 집 주위에 갈아엎을 밭이 아직 있지?"

"얼마 없어 인마, 나 혼자 갈기도 바빠" 못 본 지 삼십 년 가까이 됐는데 어제 한잔한 사람들 같은 요런 대화를 했지요.



그런 그가 00 여고로 갔다니 쿠데타가 성공을 했던 모양입니다. 산적 스타일이 일본어 교사라. 요새는 체력이 좀 달려 그렇지 나도 일본 출장을 좀 많이 했습니까?. 회사 내 일본통이 저였으니까요. 그 얘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사주팔자가 같아서 그럴 거다"하더군요. 맞는 얘깁니다. 나는 정수리가 허전한데 그 인물은 갑작스러운 백발에 가려움증으로 그만 딱 죽겠다고 그러니 두상의 리스크가 같고, 또 어느 날인가 참으로 오랜만에 직원들하고 룸 가요방에(근 2년만 이었던지?) 앉아 안주만 축내고 술주정을 받아 주고 있는데, 혀가 꼬부라진 그 인물이 전화를 했더군요.

"어디냐?" 하니

"룸에서 선생들과 한잔 하다 갑자기 네 생각나서 전화했다"

그 시간이 꼭두새벽이었는데 기가 찰 노릇이지요.



후에 00에서 정선으로 발령이 나서 한 시간 반 걸리는 촌길로 출퇴근을 한다더군요. 나도 일부러 포항 교외를 둘러 한적한 시골길로 출퇴근한 지 10년이 넘습니다. 한 시간 십분 걸리는 거리니까 그것도 어째 비슷하고. 또 얼마 전 "그래 요새도 술을 마시냐?" 하니

"어쩔 수 없으면 마시지만 자제한다" 해서

"그러면 무언가 대신 마셔야 할 게 있어야 하지 않냐?" 했더니

"중국 우롱차를 좀 마신다"하더군요,

아아! 중국차, 16년간 마시다 질린 그 중국차를 이 인물도 마시고 있다니. 그래서 그날 밤, 집에 아직도 남아 있는 얼마간 중국차를 부득부득 꺼내어 포장을 해봤습니다. 복건성 무이암산의 청차지왕이라는 대홍포, 백계관, 민남 안계의 관음호차, 운남 서쌍판납의 역무산 보이차. 딸네미 시집보내는 심정으로 포장하여 다음날 아침 택배로 부쳤습니다.



차를 보내주니 아주 좋아하더군요. 취미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인데 기호 성격도 비슷하니 신기할 뿐입니다. 그건 그렇고 이 친구 얼굴을 한번 봐야 되는데 언제쯤 될지 원.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그 정선 아우라지 유원지에서 텐트 치며 가족과 주말 드라이브도 즐겼고, 인근의 영월 장릉이며 청령포, 봉평의 가산공원 등도 한 달에 한 번은 싸돌아 다닌 기억이어서 아주 낯익은 곳인데 요새는 그럴 시간이 도대체 없습니다. 그가 있었던 반경 백리 안쪽이었습니다. 싸돌아 다니다 체력도 어지간히 허비한 모양으로 부실합니다.

"그래도 네가 올라오는 게 훨씬 쉽다" 그 인물이 그러더군요. 그도 엄청 바쁘게 삽니다.

"그렇게 하세. 조만간 한번 올라 가지. 내 술은 못하니 막국수나 곱빼기로 사라." 했습니다. 네이버 카페도 만들어서 제자들과 수다를 떨며 그들의 정신건강 함양에도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산적도 여러 부류가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친구 자격으로 나는 주제넘게도 이런 말을 몇 번 했습니다. 부디 존경받는 스승이 되라고. 입에 발린 공치사 같은 수사가 결코 아닙니다. 이렇게 우리 사회가 혼란하고 어수선한 큰 원인 중 하나는, 시기를 일갈할 수 있는 정신적 스승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신의 피폐를 막아 줄 거대한 산 같은 존경받는 스승의 부재로 우리 사회는 닻줄 끊긴 범선처럼 표류하는 것입니다. 가장 폭발력 있는 청춘의 에너지를 보유한 고교생들에게, 정신의 피폐를 일갈하면서도 참으로 인간적인 손길로 그들의 심약한 마음을 어루만져, 지치고 힘들 때 머리 박고 엉겨 들어 울 수 있게 하는, 넓은 가슴의 삼촌 같은 스승이 되어 달라는 부탁이, 비단 친구로서 던지는 내 개인의 마음만은 아닐 것입니다. 땀나고 힘들며 고독한 일임엔 틀림없겠으나 그 인물은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윤리 교사도 아닌 일본어 선생도 스승은 스승이니까요. 잘하시게 조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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