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

걱정 마세요 장모님, 원 이까짓 거에 죽기야 하겠습니까?

by 정건우

장모 / 정건우


하기야 그 세월이 어두웠긴 하였겠으나, 자식 3남 5녀를 건사하신 우리 장모는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다. 아내가 한 살 무렵 장인은 말벌처럼 집을 나가서, 중 2 때가 돼서야 지친 몸으로 돌아오셨단다. 밖에서 낳은 1남 2녀를 데리고. 그러니까 장모는 당신 무릎으로 2남 3녀를, 가슴으로 1남 2녀를 낳으신 셈이다. 장인어른의 과거 행적을 탓하지 않으시, 내딛는 걸음걸음에 함빡 눈물을 쏟으면서도 장모는, 고구마 순 같은 그 많은 자식들을 번듯하게 만들어 놓으셨다. 그런 연유로 처가 인근 사방 십리에서 우리 장모 모르는 이는 곧 간첩이다. 올해 일흔넷, 내가 둘째 사위 된 지 16년 째다.



그런 장모인데도 버르장머리가 좀 없는 나는, 16년 동안 한 번도 머리를 숙여 장모에게 인사한 적이 없다. 그저 씩 한번 웃고 실없는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이 장모에 대한 내 식 인사다. 동서들은 깍듯하게 예를 갖추더라마는, 나는 도무지 그것이 어색하여 죽을 맛이었다. 좌우간 나는 16년 동안 내 식을 잘도 지켜왔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라니까 그래, 나는 영원한 손님 대접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사위보다는 약간 골치를 썩여 애를 태우는, 아들 같은 입장으로 장모를 대하고 싶었던 내 꼼꼼한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장모의 자식들은 바르고 번듯했기 때문이다. 종손 댁이라 일 년 내내 제사가 많고, 그 많은 손님을 치르느라 등골이 다 빠질 텐데도 우리 장모는 참 잘도 하신다. 다 팔자소관이리라.



그렇게 몸을 움직이는 것이 운명처럼 붙어 다니는 노인이므로, 그냥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을 좀처럼 보기 어렵다. 뫼시고 사는 며느리가 그만큼 닦달을 해도 장모는 도무지 꿈적 않는다. 집 뒤 텃밭에서 시금치, 부추 등 푸성귀를 뜯어다 광주리에 이고 십 리나 떨어진 읍내 시장에 늘 나가신다. 돈으로 쳐봐야 몇 만 원 남짓할 그것들을 다듬느라 한 나절 고생하고, 찾는 사람은 한시가 아쉽다고 하시면서, 시간을 넘겨버리면 큰일 나는 양 부산하시다. 당뇨로 다리가 불편한데도 그러시니 나는 그것이 영 못마땅해서 불심검문을 잘 나간다. 처가래야 집에서 한 시간, 직장에서 30분 거리라 업무 중 짬을 내서 검문하기엔 그만이다.



무작정 그리 할 수는 없고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은 틀림없이 검문한다. 어지간한 비에도 장모는 허탕을 치면서까지 나오시기 때문이다. 동네 할매들과 파장을 두런거리시다 그중 한 분이라도 멀리서 나를 보시면 일러바치는 모양이다.

"남동댁, 둘째 사우 온다 마, 치우자"
"어데? 하마 오는 가베?" 뭐 이러시겠지.
그러면 장모는 또 담배 피우다 들킨 학생처럼 부리나케 광주리 정리하느라 손길 바쁘고
"올 때는 없던 비가 여기 오니 있다"
늘 하시던 그 말 또 웃고 하시며 기다렸다는 듯 소녀처럼 내 차에 오르신다. 기분 좋은 날이 언제냐면, 보통 다섯 시가 돼야 광주리를 터는데 세시쯤 터는 날이 최고란다. 누군가 식당에서 광주리째 다 팔라고 해도 절대 안 판다는 장모. "아! 그러니까 우리 남동댁이 포항서 최고로 멋진 할매라고 하는 거 아니겠소". 내가 맞장구치며 치켜세우면 장모는 그렇게 좋아하신다. 나눠 파는 멋을 아는 장모, 그럴 때 나는 눈물이 다 날 지경으로 장모가 이쁘다.



얼마 전, 모처럼 쉬는 날 처가에 갔다. 장인은 사랑방에 거처하시며 아직도 장작 군불을 때시는데, 틈만 나면 장작을 패서 쌓아두는 것이 일인 어른이다. 그런데 그날 세상에 무슨 기특한 생각이 다 들어서, 생전 않던 둘째 사위가 장작 패겠다고 나섰다는 것 아닌가. 그게 보기에는 쉬워도 잘못하면 허리가 삐끗하는 일인데, 어찌 되었건 장인어른은 저 놈의 화상이 무슨 생각이 들어서 저러냐며 둘째 딸과 이 흐뭇한 광경을 보고 좋아하셨다. 그런 사이에 내 허리가 그만 덜컥하고 끊기고 말았다. 하루 휴가를 내려던 참에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집 사람은 정서방이 이제 곧 죽게 생겼노라고 온 처가 인척에 전화질이고, 나는 온 등에 허리에 물파스를 잔뜩 쳐 발라 눈도 못 뜨고 대청마루에 누워버렸다.



근 4년 만에, 비로소 장모는 근심을 한 광주리나 이고 둘째 딸네 집에 오셨다. 나는 목청을 돋워 부득부득 앓았고, 울 것 같은 장모 뒤에서 아내는 웃느라 입 가리기 바쁜 눈치다.

"걱정 마세요 장모님, 원 이까짓 거에 죽기야 하겠습니까?"
"머 할라꼬 그걸 했노, 무신 일이고 이게, 이 철에 장작이 웬 말이고, 내사 할 말이 엄따"
사위가 다 죽게 돼야 집에 한번 오시는 장모님이다. 좀체 하룻밤 자고 가는 어른이 아니므로 그날도 그런 낌새가 비치자마자,
"이런, 이런, 아, 주무시고 가면 누가 째비기나(꼬집는다는 뜻) 한답디까? 처남댁한테 전화해라 오늘 여기서 주무신다고." 집사람에게 고함을 빽 치자 장모는 그 서슬에 주무시겠단다. 주무시긴, 참으로 오랜만에 두 모녀가 너구리처럼 머리를 맞대고 맞나 아이가, 정서방 깰라 하면서 날이 다 새도록 무슨 수다가 그리도으신지. 나도 옆방에서 숨죽여 키득거리다가 온 밤을 허옇게 새워버렸다. 아무래도 허리는 침이라도 맞아야 하는 건지 원. 이젠 아예 돌아 눕지도 못하겠다.


○ 장모님은 2025. 05. 18. 01:28에 영면하셨습니다. 향년 9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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