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독자

문예지 기고문

by 정건우

고급 독자 / 정건우

- 문예지 기고문


자신을 얼치기 문학도라고 말하는 40대 주부와 詩를 사이에 놓고 몇 년간 친하게 지내고 있다. 市에서 주최하는 시민 백일장에서 일반부 시 부문 장원을 몇 차례 하는 등 탄탄한 내공의 소유자임이 틀림없었지만, 늘 얼치기라며 겸손해하는 여자였다. 등단하여 전문 작가의 길을 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단다. 주부로서 대응해야 할 현실의 장벽은 드높고, 문학 소양의 밑천은 끝도 보이지 않은 바닥이라는 것이다. 하여, 작가보다는 고급 독자로 남고 싶다고 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렇게 해도 시에 대한 목마름은 전혀 가시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그 갈증의 여인이 얼마 전, 李箱의 시 오감도 「詩 第 5號」를 빽빽하게 필사하여 나를 찾아왔다. 내가 이상 시인의 광팬임을 알고 있다며 해석을 부탁한다는 그녀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였다. 아마도 며칠을 끙끙 앓은 것 같다. 나도 그 난해의 최고봉 앞에서 뾰족하고 신통한 답을 옜소, 하며 단박에 내놓을 수 없는 노릇이라 그저 조용하게 되물어보았다. 혹시 『장자』의 『외편』 중 20편인 「산목」 편 제8장을 읽어 보셨냐고. 안 읽어 봤다고 하길래 나는 난감한 표정을 답으로 지어 보였다. 시구절 중 "翼殷不逝 目不大覩"라는 말을 李箱 시인이 『장자』에서 빌려 쓴 모양인데, 원전에는 "目大不覩"로 기록되어 있는 것과, 이 시의 원제가 「二十二年」이라는 것, 그 텍스트에는 "翼殷不逝"가 "翼段不逝"로 되어 있으며, 몇 곳이 「詩 第 5號」와 다른 것으로 봐서 일정한 시차로 고쳐 쓰였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이러한 李箱 시인의 詩作 이력과 인용한 문장의 함의를 알아야 제대로 된 해석을 하든지 말든지 할 노릇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텍스트 내용만으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그 양반 작품의 특징이라 머리 아픈 것 아니냐며 침도 튀기었다. 이런 건 필사를 백번 한다고 깨우쳐질 문리의 범위가 아니라고 했다. 최소한의 자료 분석을 요하는 지적 탐구의 영역이라고 아프게 말했다.


그런 것을 모두 어떻게 아셨냐며 놀라는 눈빛으로 여인이 묻길래, 실은 나도 고급 독자를 꿈꾸는 중이라고 했다. 이 수준의 정보는 인터넷에 바닷물처럼 그득하여 넘실댄다고도 하였다. 조금만 노력하고 공부하여 관심을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면 돈 들이지 않고도 문학적 소양은 얼마든지 든든하게 쌓을 수 있다고 했다. 인터넷 검색이 만능을 부여하는 시대에 이런 검색쯤은 식은 죽먹기 아니겠냐고 했다. 하기야 어떻게 보면 고급 독자가 되는 것이 작가가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 있겠다고도 하였다. 요즈음의 실정에 비추어 보건대 말이다.


작가가 독자보다 더 많아 이른바 수요와 공급의 유통 질서가 무너져 가치가 엉망이 돼버린 문학 시장의 난맥상을 우려하는 탄식이 곳곳에서 들린다. 문학이 그만큼 활성화되고 있는데 무슨 쓸데없는 걱정을 하느냐는 핀잔의 목소리도 한쪽에서 크다. 이러한 담론에 토를 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위에 거론한 사례를 참고하면 문학을, 특히 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마냥 가벼워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에서 조금 우려스럽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시를 그냥 날로 먹자며 무턱대고 덤벼들지는 않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이른바 고급 독자를 꿈꾸는 학도의 문학 노동(?) 차원에서, 스스로에게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을 만큼 시를 대하는 자세가 좀 더 엄정져야겠다는 생각이다. 소양의 바닥은 저절로 다져지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타고난 감성이란 것도 그저 가만히 두면 증식되지 않는다. 끝없는 의심증과 궁금증으로 뻗어 간 상상의 공간에서 감성은 풍요로워지고 시적 소양의 지평은 그 부피의 정비례 이상으로 넓어지기 마련이다. 초, 중, 고등학교 학습 수고에 편승한 경험으로 "왕년에 시 안 써본 사람 있어?"라는 식으로 시를 대접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더욱이 고급 독자를 꿈꾼다는 학도의 입장이라면 문학 앞에서 더욱 경계하고 탐구하는 마음을 엄숙하게 유지해야 하겠다는 생각이다.


많은 사람이 문학의 열병을 앓는다고 한다. 작가를 꿈꾸든 독자를 꿈꾸든 자신의 지적 소양을 드높일 목적으로 그러하든, 그 병은 분명 손뼉 치고 환영할 양식의 병임이 틀림없다. 어찌 보면 인문학이 외면받고 있는 현실에서 진실 추구의 갈증이 역으로 커지는 사회 현상의 방증일 것이다. 문학이, 특히 시가 축대벽을 높이 쌓고 일반인의 접근을 허락지 않는 불통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렇다고 천방지축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는 것을 방관하여 종내 저잣거리 구석에 처박히도록 버려둬서도 안 되는 것이다. 문학은 적당하게 불편하고 수고스러운 존재다. 진실 추구의 자세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늘 그러한 모습이었다. 이러한 사정을 단단하고 냉철한 시각으로 들여다보는 이 또한 고급 독자일 것이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그는 자신에게 투자했던 문학 인프라 구축의 최고 순간이 언제였는지 돌아볼 줄도 알아야 한다. 십수 년 전에 멈춰진 상태인지, 지금도 활발하게 진행 중인지 점검해 봐야 한다. 예컨대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맞춤법, 띄어쓰기 등을 등한시하거나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았는지, 평이 좋은 시나 문장을 한 달에 몇 편이나 읽는지 등등 소소하지만, 놓치지 않고 실행해야 할 문학 바탕의 기본적인 이행 요소들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진중하게 돌아봐야 한다. 아울러 다소 절박하고 진지하게 일상을 대하는 자세와 온기 있는 시선의 유지 또한 고급 독자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일 터이다. 그런 처지가 작가 못지않게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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