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을 꿈꾸며

문예지 기고문

by 정건우


소통을 꿈꾸며 / 정건우

- 문예지 기고문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교육자인 에밀 뒤르켕(Émile Durkheim 1858.4~1917.11.15)의 저서 중에서 “자살론”은 특히 유명합니다. 그는 다년간의 연구 분석을 통해서 자살은 사회적 특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즉, 자살은 개인들로 구성되는 사회집단의 통합과 유대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개인이 집단생활에 긴밀히 통합되는 가톨릭교도들 사이에서는 자살률이 낮다고 합니다. 반대로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은 프로테스탄트 교도들에게서는 높다고 합니다. 또한, 가족 간의 친밀도가 높은 경우는 낮으며, 가족이 와해한 경우는 높다고 합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여서 사회통합 요구에 따른 개인 참여가 활발해지는 정치, 경제, 사회적 위기에는 자살률이 낮다는 내용의 통계도 있습니다. 따라서 자살은 개별적 이유로 해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회적 요인의 사회 통합도와 자살률 사이에 일정한 관계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들을 바탕으로 에밀뒤르켕은 자살의 기본적 유형을 분류했는데, 이기적, 이타적, 아노미적 자살이 그것입니다. 그 이외에도 숙명적 자살이라는 것이 있기도 합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아노미적 자살을 눈여겨봅니다. 아노미란 사회적 교제가 붕괴하여 개개인이 목표를 추구함에 있어 도덕적인 지침을 갖지 못하게 되는 무규범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무규제적 방치상태”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이 바로 이 방치상태입니다.



어느 광고의 카피 중에서 “실패는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주저앉아 머무는 것이다”란 문구를 보고 크게 공감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회성을 잃고 무규제적으로 방치된 존재란 한마디로 완벽하게 소외당한 상태를 말하겠습니다. 소위 왕따라는 것도 일종의 이러한 사회현상일 것입니다. 고립되어 사회와 삶의 테두리에서 완벽하게 밀려난 존재들에게서 생명력을 감지하기란 요원할 것입니다. 그들과 사회는 무엇에 의하여 철저하게 분리되겠습니까? 저는 바로 “소통의 부재”라고 생각합니다.



정서적 소통의 부재는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병폐를 무엇보다 예민하게 감지했기에 0000은 “소통하는 사람, 소통하는 문학”을 지향점으로 출발했습니다. 어느덧 0000이 39호를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다 할 외부의 재정적 지원 없이 오직 순수 하나만으로 고집스럽게 밀고 온 그 매우 어려웠던 노정에 위로와 격려를 아울러 보냅니다. 0000이 소통하고자 하는 것은 이른바 “큰 것들”이 아닙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가슴 벅찬 발견으로 나아가면서 “작은 것들”과의 만남을 원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당한 사람들의 삶과, 물질문명이 만들어 낸 속도에 뒤처져 외곽으로 밀려난 것들과 소통하기를 원합니다. 각박한 사회 현실과 속도 빠른 세상에서 지친 사람들에게 휴식할 수 있는 조그마한 의자 하나를 건네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로 어루만져 위로받고 위로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0000은 이른바 유명문예지를 지향하지 않습니다. 삶과 생활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기다리며 문을 활짝 열어 놓은 것입니다. 0000은 이렇듯 소외되어 방치된 것들의 이름을 불러주고자 합니다. 그들이 걸어왔던 힘겨운 여정의 장면들을 기억하고 스냅사진 같은 그 순간마다 제목을 붙여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제목을 붙이고 이름 불러 주는 사이에 서로는 깊은 존재감의 발견이라는 가슴 벅찬 의미로 소통할 것입니다.

“소통하는 사람, 소통하는 문학”

바로 당신이 잊혔던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꿈은 이룰 준비를 마치고 희망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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