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빗

오랜만에 동백기름도 묻히시는 것이었다.

by 정건우


참빗 / 정건우


할머니는 귀가 어두웠다. 돌을 던져도 끝내 메아리가 없는 우물처럼 깊고 깊었다. 말할 때마다 나는 할머니의 목을 끌어안았다. 오른쪽 뺨을 서로 맞대고 할머니 귓밥을 내 침으로 적셔야 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말끝마다 내 어깨를 손끝으로 토닥이며 알아들었다는 기별을 보냈고, 말이 끝나면 내 등을 크게 몇 번 손바닥으로 쓸어 주셨다. 나와 할머니의 대화 방식이었다. 한 치도 안 되는 거리에서 전하는 소식은, 할머니에게는 늘 절박하고 아득히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세상이었다. 감았던 목을 풀 때마다 나는 쪽진 머리와 은비녀와 목덜미에서 풍기는 할머니의 냄새를 맡았다. 내 아버지를 낳으신 분의 냄새는, 언어와 문자 따위로 표현될 수 없어 죽는 순간까지 함께하는 내 목숨처럼 남아있다.



반짇고리함에는 늘 참빗이 있었다. 대나무로 빚은 빗살을 촘촘하게 양쪽으로 박아 직사각형으로 야무지게 만든 반질반질한 머리빗이다. 할머니는 이틀에 한 번 머리를 빗으셨다. 감은 머리를 대강 정리한 뒤 머리카락을 보다 더 가지런히 하기 위하여 꼭 참빗을 쓰셨다. 단아한 어깨를 기울여 색경도 없이 왼쪽 머리를 빗어 삼단으로 꼬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젖히는 할머니의 턱선에서 나는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기품을 보았다. 참빗이 쌕쌕 소리를 내며 그어질 때마다 할머니의 입모양은 단호했고 시선엔 흔들림이 없었다. 한올도 어긋남이 없이 정수리를 양단한 머릿길은 분명하고 깔끔해 서늘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할머니는 매우 능숙한 솜씨로 머리를 매만지셨다. 나는 장난기를 완전히 꺾고 그런 할머니 모습을 감탄스럽게 지켜보곤 하였다.



쉰 무렵 할머니는 청상이 되셨다. 듣지도 못하고 무학인 할머니가 삼남 삼녀 자식들과 일가친척과 저잣거리에서 올곧을 수 있음이란, 차갑도록 냉정하게 자신을 지키는 일 뿐이었을 것이다. 얼레빗 참빗 품고 가도 제 복이 있으면 잘 산다는 속담도 있지만, 그마저 제 복도 없었던 할머니는 들고 간 참빗을 목숨처럼 품으셨던 모양이었다. 당신을 가꾸기 위한 도구로서가 아니라 지키기 위해서 결심한 스스로의 다짐과 고집 같은 것이었으리라 여겨진다. 사춘기의 예민함과 궁금증으로 포착되던 내 시야의 할머니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쪽진 머리의 단아함과 모시저고리와 회색 무명치마 차림의 깔끔함으로 정리되었다.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막내 고모 역시 그런 할머니의 조신했던 걸음걸이가 미치도록 그립다고 하신다.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의 서늘함이, 은근히 깊었던 시선이 사무친다는 것이다. 시간을 건너온 기억 속에서 늙은 딸과 늙어가는 손자의 의견이 일치되기가 쉬운 일은 아닌데, 둘이 그려보는 할머니의 이미지가 참빗으로 합치되었다.



74년 8월, 그러니까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인 어느 늦은 오후였다. 방문을 열고 보니 할머니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벽에 기대앉은 채 울고 계시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나는 손짓 발짓 입모양을 크게 벌리며 왜 우느냐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다그치듯이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합장하듯이 내 손을 꼭 붙잡고는 한탄하듯이 말하며 우시는 것이었다.

“박정희 마누라가 죽었디야. 박정희 마누라가 죽었디야”

생소함도 이렇게 황당한 생소함이라니. 글자도 모르고 귀도 안 들리는 양반이 길거리에 나섰다가 어찌어찌 한 소식 듣고는 무너진 세상을 보듬고 돌아오셨던 것이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이뻐 죽겠는 할머니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하루 동안 나는 할머니와 장난을 칠 수 없었다. 머리를 풀어헤친 할머니는 눕다 일어나다를 반복하며 벽에 기대어 밤을 새웠다. 다음 날 아침 할머니는 평상시처럼 머리를 매만지셨다. 쌕쌕 소리를 내며 내리긋는 참빗에 오랜만에 동백기름도 묻히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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