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기러기 엄마되기

솔로몬의 반지 7

by 여름지이

동물이 태어난 후 처음 시야에 들어온 어미나 다른 움직이는 존재에 지속적으로 애착을 보이는 현상을 '각인'이라 하는데 조류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거위가 태어나서 처음 본 대상이 누구든 엄마 거위로 착각하며 따라다니는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겠다. 이 현상을 '각인'이라고 이름 지은 연구자가 바로 콘라트 로렌츠다. 엄마에 대한 애착이 놀랍게도 엉뚱하게 발현되는 것이라 동화, 그림책의 소재가 되어 몇 권의 책이 나와 있을 정도로 친근한 생태 이론이기도 하다.


발견의 시작은 거위의 원조인 야생 회색기러기 알을 거위나 칠면조 품에 끝까지 맡겨놓지 않고 부화 예정일 이틀 전에 부화기에 넣은 일이다. 그리고 화근? 이었다. 단지 새끼들이 기어 나오는 것을 자세히 관찰하려고 했을 뿐이다. 병아리처럼 알에서 나오기 위해 어미와 힘을 모으는 줄탁동시(啐啄同時)는 아니어도 기러기 새끼는 혼자 감미롭게 피리 부는 듯한 낮은 소리를 안에서 내며 구멍을 뚫는다. 톱니가 달려있는 새의 부리가 안쪽에서 알 껍질을 따라 원을 그리며 돌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에 나온 기러기 새끼는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크고 검은 한 눈으로(물체를 자세히 볼 때 하는 습성) 최초로 보이는 생명체, 로렌츠를 쳐다봤다. 그때까지 이 연구자도 자신에게 얼마나 무거운 의무가 부과될 것인지 몰랐다....


그 불쌍한 새끼가 미칠 듯한 목소리로 울면서 내 뒤를 따라오는 것을 보면 돌이라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땅바닥에 돌돌 구르면서도 놀랍게 빠른 속도와 굳은 결의를 가지고 달려왔다. 그 흰 거위가 아니라 내가 자기 엄마라는 뜻이었다. P150

이런, 눈물 없이는 보지 못할 상황이라니! 결국 그는 거위 배 밑에 밀어 넣는 걸 포기하고 엄숙한 세례식을 거친 후 '마르티나'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양녀로 삼는다. 잠시도 혼자 있는 게 불가능한 껌딱지 마르티나와의 동거는 아주 가관이다. 어깨에 맬 수 있는 바구니를 만들어 늘 집어넣고 다녔고 낮에는 몇 분에 한 번씩, 밤에는 대충 한 시간에 한 번씩 엄마가 그 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는 양녀 때문에 말이다. 잠자리에서 오가는 기상천외한 대화 좀 볼까요.

비비비비 (나 여기 있어요. 엄마는 어디 있니?)

잠이 쏟아져 대답이 귀찮아 모르쇠 한다.

핍.... 핍..... (날카롭고 침통한 소리)

... 침대에서 나와 상자 쪽으로 가지 않을 수 없다.

비비비비비비비(기쁨의 인사)

따뜻한 담요 속에 부드럽게 밀어 넣어준다.

비르르르르르 비르르르르르(편안하게 잠든 소리)


한 시간마다 반복되는 비비비비!의 악몽.

방법을 바꿔 요람을 끌어다가 손이 닿을 수 있는 침대 머리맡에 두고는 비비비가 들릴 때마다 서투른 기러기 말로 강강강 하면서 요 위를 살포시 두드린다.

비비비비!

강강강..

비비비비!

강강강..

.

.

.

잠을 깨지 않으면서 강강강을 말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 도달한다. 거의 초보 엄마의 좌우충돌 육아기에 가깝지 않은가.


최초로 기른 마르티나를 포함한 열 마리의 기러기들과 함께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을 소모하며 많은 것을 그들에게서 배운다. 그가 한 행복한 학문은 도나우 강변에서 야생 회색 기러기떼 가운데를 벌거벗고 야생 동물처럼 기거나 헤엄쳐야만 연구의 주요 부분을 이룰 수 있는 것이었다. 너무 게을러서 실험자 노릇보다는 관찰자 노릇을 훨씬 더 잘한다는 그는, 동물들도 놀라울 정도로 게으르다고 단언한다. 심지어 부지런함의 상징인 벌과 개미도 하루의 대부분을 달콤한 무위(無爲)로 보낸다,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집 속에 들어가 있어 우리가 이 위선자들을 보지 못할 뿐이라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늘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조급함은 동물 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근면의 미덕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벌과 개미를 상징했을 뿐.

동물 연구는 빠르고 부지런한 사람보다는 느리고 인내력을 가진 사람이 유리한 것 같다.

게으런 동물의 생태에 가까운 이 게으른 학자는 그래서 동물 연구에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 침팬지 연구가 제인 구달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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