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 태어난 후 처음 시야에 들어온 어미나 다른 움직이는 존재에 지속적으로 애착을 보이는 현상을 '각인'이라 하는데 조류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거위가 태어나서 처음 본 대상이 누구든 엄마 거위로 착각하며 따라다니는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겠다. 이 현상을 '각인'이라고 이름 지은 연구자가 바로 콘라트 로렌츠다. 엄마에 대한 애착이 놀랍게도 엉뚱하게 발현되는 것이라 동화, 그림책의 소재가 되어 몇 권의 책이 나와 있을 정도로 친근한 생태 이론이기도 하다.
발견의 시작은 거위의 원조인 야생 회색기러기 알을 거위나 칠면조 품에 끝까지 맡겨놓지 않고 부화 예정일 이틀 전에 부화기에 넣은 일이다. 그리고 화근? 이 되었다. 단지 새끼들이 기어 나오는 것을 자세히 관찰하려고 했을 뿐이다. 병아리처럼 알에서 나오기 위해 어미와 힘을 모으는 줄탁동시(啐啄同時)는 아니어도 기러기 새끼는 혼자 감미롭게 피리 부는 듯한 낮은 핍 소리를 안에서 내며 구멍을 뚫는다. 톱니가 달려있는 새의 부리가 안쪽에서 알 껍질을 따라 원을 그리며 돌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에 나온 기러기 새끼는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크고 검은 한 눈으로(물체를 자세히 볼 때 하는 습성) 최초로 보이는 생명체, 로렌츠를 쳐다봤다. 그때까지 이 연구자도 자신에게 얼마나 무거운 의무가 부과될 것인지 몰랐다....
그 불쌍한 새끼가 미칠 듯한 목소리로 울면서 내 뒤를 따라오는 것을 보면 돌이라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땅바닥에 돌돌 구르면서도 놀랍게 빠른 속도와 굳은 결의를 가지고 달려왔다. 그 흰 거위가 아니라 내가 자기 엄마라는 뜻이었다. P150
이런, 눈물 없이는 보지 못할 상황이라니! 결국 그는 거위 배 밑에 밀어 넣는 걸 포기하고 엄숙한 세례식을 거친 후 '마르티나'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양녀로 삼는다. 잠시도 혼자 있는 게 불가능한 껌딱지 마르티나와의 동거는 아주 가관이다. 어깨에 맬 수 있는 바구니를 만들어 늘 집어넣고 다녔고 낮에는 몇 분에 한 번씩, 밤에는 대충 한 시간에 한 번씩 엄마가 그 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는 양녀 때문에 말이다. 잠자리에서 오가는 기상천외한 대화 좀 볼까요.
비비비비 (나 여기 있어요. 엄마는 어디 있니?)
잠이 쏟아져 대답이 귀찮아 모르쇠 한다.
핍.... 핍..... (날카롭고 침통한 소리)
... 침대에서 나와 상자 쪽으로 가지 않을 수 없다.
비비비비비비비(기쁨의 인사)
따뜻한 담요 속에 부드럽게 밀어 넣어준다.
비르르르르르 비르르르르르(편안하게 잠든 소리)
약 한 시간마다 반복되는 비비비비!의 악몽.
방법을 바꿔 요람을 끌어다가 손이 닿을 수 있는 침대 머리맡에 두고는 비비비가 들릴 때마다 서투른 기러기 말로 강강강 하면서 요 위를 살포시 두드린다.
비비비비!
강강강..
비비비비!
강강강..
.
.
.
잠을 깨지 않으면서 강강강을 말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 도달한다. 거의 초보 엄마의 좌우충돌 육아기에 가깝지 않은가.
최초로 기른 마르티나를 포함한 열 마리의 기러기들과 함께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을 소모하며 많은 것을 그들에게서 배운다. 그가 한 행복한 학문은 도나우 강변에서 야생 회색 기러기떼 가운데를 벌거벗고 야생 동물처럼 기거나 헤엄쳐야만 연구의 주요 부분을 이룰 수 있는 것이었다. 너무 게을러서 실험자 노릇보다는 관찰자 노릇을 훨씬 더 잘한다는 그는, 동물들도 놀라울 정도로 게으르다고 단언한다. 심지어 부지런함의 상징인 벌과 개미도 하루의 대부분을 달콤한 무위(無爲)로 보낸다,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집 속에 들어가 있어 우리가 이 위선자들을 보지 못할 뿐이라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늘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조급함은 동물 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근면의 미덕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벌과 개미를 상징했을 뿐.
동물 연구는 빠르고 부지런한 사람보다는 느리고 인내력을 가진 사람이 유리한 것 같다.
게으런 동물의 생태에 가까운 이 게으른 학자는 그래서 동물 연구에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 침팬지 연구가 제인 구달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