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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Nov 17. 2020

넌, 어디서 왔니?(上)

그릇 이야기

집집마다 집안 문화라는 게 있다. 정제된 언어로 문화라는 말을 썼지, 그 집 참 이상하더라, 에서 이상함 혹은 낯섬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하나를 잡아당기면 줄줄이 달려오는 고구마나 땅콩처럼 한 사람과 결혼하면 시댁 구성원들과  줄줄이 엮어진다. 그리고 그들의 문화를 공유할 수밖에 없는 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이상함, 낯섬에서 다름으로 인정하고 마침내 굴러온 돌의 생활에마저 침투해버린  그 문화들을 열거하자면 깨알 같은 사소한 것에서 주먹만 한 돌정도 크기까지 다양하지만, 살면서 괜찮다고 인정한 것 중 하나와 연관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물론 문화에는 정신적인 것도 포함되지만 거기까지 들어가면 미묘하게 기분이 썩 좋아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생활만 생각하기로 하자.


오래된 물건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1960년대 네 명의 아기를 키울 때 쓰던 미제 베이비파우더가 90년대 아기에게도 뿌려지고 아직도 남아 지금도 여름이면 땀 차이는 자신의 몸에 뿌려대는(피부에 아무 이상이 없다) 시아버지의 엽기? 적인 행각, 물건에 대한 애착, 집착을 본받고 싶은 건 아니다. 워낙 오래된 물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보니 기특한 물건이 더러 있어 이젠 제법 나이가 들어버린 며느리 눈에도 회색빛 물건들에 조명이 켜진 듯 유독 그 물건이 환해지는 순간이 왔다.


시어머니 그릇장에 불이 켜진 것일까.  처음엔 설거지   마른행주로 식기들을 닦아서 넣는 어머니의 습관이 불편했다. 집안일이 익숙지 않은 새색시에게 설거지도 고역인데 그냥 엎어두면 마르는  굳이 일로 삼고 닦는다는  시간낭비에 쓸데없는 노동 같았다. 거기다 그릇을 차등을 두어 놓는 위치를 설명하고, 고이 모셔둔 그릇과 관련된 알지도 못하는 사람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그만 열악한 뇌는 피로해지고 서사가 연결이   단어들만 허공에 둥둥 뜬다. 생활집기에 지나지 않았던 그릇이 이렇게 격이 나누어지고 스토리가 있다는  이상하고 낯설었다. 그러고 보니 고향 집에도 비록 금이 갔지만 격자 유리문이 있는 찬장 비슷한  있었던  같기도 했다. 밭일에 바빴던 젊은 엄마는 누군가를 잡고 그릇 이야기를  시간이 없었고 늙은 엄마가 되어서는 들어줄 딸이 곁에 .


시어머니 그릇장에서 그릇을 내고 넣고 한 세월이 20년을 훌쩍 넘은 어느 제삿날, 몸도 마음도 기운이 빠져 멍하니 그릇장 앞에서 넋을 놓고 앉아 있는데, 뽀얀 찻잔이 눈에 들어왔다. 늘 보아왔고 금빛나는 단풍잎 그림이 촌스럽다고 생각한 잔이 그날따라 소박하고 기품 있는 어른같이 보였다.

원두를 갈아 내린 커피를 맛도 모르면서 향으로 폼 잡던 시기라 그랬으려나. 다음에 정리할 때 주겠다는 어머니, 담이 언제일지 막연하고 그동안 당신이 주고 싶은 물건만 받았으니 이젠 갖고 싶은 물건을 당당히 지목하는 B급 며느리가 되기로 했다. 부산을 떠나오면 세트의 반을 기어이 얻어 내고야 말았다. 잠자고 있던 걸 깨트리지 않고 생활에서 귀하게 살려내겠다는 다짐을 드리며.

어머니 이 그릇들은 어디서 온 거예요?

결혼할 때, 그러니까 벌써 56년이나 되었네...

너거 시아버지 회사 사람, 그 의근아재라고 있지. 그분이 축하 선물로 준거야.

 사람 고향이 까꾸실인데, 거창고모 시누이 남편하고 육촌....,%@_;♡^~%%/-#^:,/;♤♧₩&÷""%~-♡#^.......,. 같은 회사에 있게 된 거지... 그때는 저런 그릇이 유행이었어.

밀크 그라스라고 그러지. 보통 가장자리에 금테가 둘러져 있는데 저건 금장 그림이 그려져 있더라고. 귀해서 아깝기도 하고, 사는 게 바빠 몇 번 써보지도 못했어... 씻을 때는 꼭 부드러운 천으로 살살 다루어야 해.


데려와 처음 커피를 따른 , 한참 잔을 요리조리 돌려보다  손으로 컵을 쥐고 천천히  커피를  모금 마셔보았다.  커피는 그대로였지만 어쩌다 만나버린  알지 못하는 과거랑 접속한  기분이 묘하고도 아늑했다. 갑갑한  속에서 나와 이제야  역할을 하는 찻잔은 제자리에선 은은한 빛을, 살짝 들면 강렬한 금빛을 .


엔틱, 빈티지 세계에 눈을 뜨고 보니 예사로 보아왔던 물건들,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쓰다가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라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동지 같아  함부로 대하거나 또 쉽게 아무 물건이나 들여지지 않는다. 여행지에서도 값나가는 근사한 물건이 있는 가게보다 동네 어딘가에 수수하게 박혀있는 빈티지 가게를 기웃거리게 되었다. 세월을 머금은 시간 여행자 같은 물건들을 보는 재미도 있고 간혹 저렴하고 유용한 괜찮은 물건을 발견하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좀 멀지만 독일 프라이부르크 역 근처 빈티지 가게에서 만난 접시가 그렇다. 유일하게 내 시간과 속도로 여행한 곳이라 우연한 만남이 잦았다. 비엔비 숙소가 있는 곳을 가자면 육교를 걸어야 했다. 제법 긴 육교가 끝나는 지점부터 동네가 시작되는데 조금 걸어 들어가 오른쪽 길로 접어드는 모퉁이 양쪽에 헌책방과 빈티지 생활용품 가게가 있었다. 피부뿐만 아니라 머리까지 새하얀 할머니가 가게를 지키고 있는 그곳. 그때는 한여름이었고 조용하고 정갈한 가게 안처럼 바깥에 나와 있는 물건들도 제자리를 가만히 지키고 있는 듯했다.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제법 높이 쌓인 접시 꾸러미를 보았는데 온통 파란색이 청량감은 주었지만 그다지 큰 매력은 없어  지나치려다 사거나말거나 가격을 물어보니 채 오천 원도 안 되는 돈이었다. 그냥 그 동네 묵은 기념으로 괜찮겠다 싶어 제법 큰 접시였지만 캐리어 옷 속에 3개를 넣어 먼곳으로 데려왔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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