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들여다보면 변화나 움직임이 없는 것들은 없다. 호수 위 잔잔히 떠있는 오리, 수초들의 물속 세상이 치열한 것처럼 하루하루 무심히 흘러가는 우리들 일상 어딘가에도 복작거림이 있다. 자세히 들여다본 누군가는 이야기를 만든다. 이 영화도 그렇게 탄생한 듯 누군가 물어보지 않으면 굳이 얘기될 만한 내용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어느 집 평범한 자식들 이야기고 더군다나 그 손녀, 손자는 '아마, 그 아들이 남매를 낳았지?' 정도로 흘릴 사항일 뿐. 그래서일까. 모든 캐릭터가 애틋하다. 그들은 연기를 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별생각 없이 마주치고 있는 가족, 이웃들이었고 그들을 생각나게 한다.
여름은
겨울에 여름이 배경인 영화를 보니 더위에 빨려 들어가지 않아서 좋았다. 어릴 때는 여름이 마냥 좋았고, 젊을 때는 그래도 좋았고, 조금 나이 들어서는 더위가 힘들어지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바람이 달라지고 여름내 에어컨 있는 마루에서 온 가족이 널브러져 자다가 각자 방으로 들어갈 즘이면 한때의 시절이 끝나는 것처럼 기분이 쐬아했었다. 요즘은 더위가 힘들어 여름이 사그라들면 숨이 쉬어지는 기분이다. 여기 동주, 옥주의 아빠 병기는 찬바람이 불면 서글퍼진다고 한다. 아직 젊다는 뜻이고 녹녹지 않은 현실에서 계절만이라도 성성한 여름이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그나마 여름이라 온 가족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화면 속 기운은 더위에 허덕이기보다 초록빛으로따스하다.
어쩌다 그 여름은
홀로 남겨진 늙은 아버지가 사는 오래된 2층 양옥집에 아들 병기는 남매 옥주와 동주를 데리고 여름을 나기 위해 들어온다. 이혼과 사업실패로 살았던 반지하 좁은 연립은 이주를 해야 하는 재개발 지역인지 주변엔 X자가 난무했고, 식구들과 궁색한 살림을 실은 소형 다마스는 소굴을 빠져나오듯 그렇게 그 동네를 빠져나온다. 기력이 쇠하여 더위에도 병원 신세인 아버지의 상태는 동생 미영까지 나타나게 만들었지만, 사실 미영도 남편과의 불화로 집을 나온 상태라 머무를 곳이 필요했다. 자고 가라는 조카들 성화에 못 이기는 척 담날 미영은 아예 큰 캐리어를 끌고 양옥집으로 들어온다. 어른들 삶에 밀착되어 있는 사춘기 소녀 옥주는 할아버지 집에 얹혀살아서 눈치 보이고, 바깥에서 엄마를 만나는 동생에 분노하고, 자기가 연락 안 하면 소식 없는 남자 친구가 미심쩍다. 쌍꺼풀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빠가 노점에서 파는 나이키 신발을 짝퉁인 줄 모르고 훔쳐 팔았다가 경찰서도 가게 되는, 무모함과 간절함이 공존하는 말 수 적은 소녀의 마음도 어른들처럼 어수선하긴 마찬가지다. 자식들 분가하고 쓸쓸했을 집이 다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마다 가슴에 무거운 추 하나씩 달고 웃고 떠들며 같이 밥을 해 먹고 같이 잠든다.
남매들
남매는 아이들인 옥주와 동주 일거라 생각했는데 어른인 병기와 미영도 남매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보니 다른 형제들은 없고 둘뿐이다. 두 남매팀은 나이도 비슷하게 차이나고 엄마가 부재(不在)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엄마라는 구심점이 없어 끈끈하기도 또 따로 노는 것 같기도 하다. 때때로 집이 보이는 가게 앞 평상에서 나이 든 남매는 맥주에 오징어를 질겅거리며 사느라 서로를 잊었던 시간만큼 몰랐던 점을 발견하고는놀라워하기도 한다. 각자의 배우자가 없으니 그저 남매로서 대화할 뿐이다. 옥주와 동주처럼 치고받고 싸울 일 없이 숙덕거리며 대책 없는 여름밤 자락을 잡고 헛헛한 마음을 달랜다.
2층 양옥집과 텃밭 마당은
집과 텃밭은 어쩌다 다시 모여 살게 된 식구들에게 추운 겨울 햇살 같은 공간이다.
무표정하고 말수가적은 아버지 모습처럼 2층 양옥집은 요란했던 개발시대를 무던히 견디고 살아남아 눈치 보며 꾸역꾸역 들어오는 자식들을 아무 말없이 품어 주었다. 그렇게 흔하던 양옥집이 무대 주인공으로 나타나니 잠시 잊었던 친구가 나타난 듯 반갑고도 낯설다. 집 곳곳이 사람 못지않게 애틋하다. 불편하고 춥다고 모두 아파트로 못가 안달이던 시절 천덕꾸러기 취급받던 그 집이 이렇게 번듯하게 살아남아 짠~하고 나타날 줄이야. 집의 최대 수혜자는 사춘기 소녀 옥주이지 않을까. 할아버지 집에 들어온 첫날, 중문까지 있는 계단을 통해 올라간 2층이라는 공간은 옥주를 환대한다. 분홍색 모기장이 있는 방, 햇살 가득한 마루에 놓여있는 재봉틀, 올라앉아 하염없이 어딘가를 응시할 수 있는 넓은 창틀 등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공간에서 옥주는 자신의 시간도 만들어간다.
그리고 몸 불편한 아버지가 가꾸었다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온갖 채소와 과일이 주렁주렁한 마당은 움츠려 든 마음을 채워주는 풍요로움이요, 조손을 이어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텃밭 채소로 비빔국수를 함께 만들어 먹기도 기운 떨어진 아버지를 위해 잘 익은 달달한 포도를 금방 대령할 수도 있다. 할아버지와 동주가 오순도순 방울토마토를 따먹고,어색하지만 손녀를 향해 미소 지으며 손 흔드는 텃밭에서의 시간은 안정적이고 평화롭기까지 하다.
삼대가 같이 사는데도
모두 나름의 불안을 안고도 평화로울 수 있었던 이 가족의 비결은 무엇일까. 영화에서와 같은 상황을 겪어본 경험자로서 문득 궁금해졌다. 나에게시댁으로 들어가 산 2년이라는 세월은 지옥에서의 한철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불행한 시기였다. 강성한 시부모, 가장 많은 손이 필요한 시기의 아이들, 되는 일 없는 남편, 그 사이에 놓인 며느리는...
여기 가족 구성원들은 다른 성을 가진 사람들은 쏙 빠져 있다. 어머니, 며느리, 잠깐 나온 사위는 있었지만 오롯이 아버지와 직계가족뿐이다. 거기다 늙은 아버지는 들어온 자식들 상황 파악하고 걱정하고 채근할 기운이 없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함께 하기도 역부족이었으니. 유일하게남은 양옥집 소유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어른 남매는 얼굴 붉힘 없이 허심탄회하게 말하고 들어준다.
전달하고 싶은 이미지를 위해군더더기를 없앤 의도적인설정일까. 어떤 식으로든 여기서 희생이 필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련 없이
결국 병기의 아버지이자 옥주의 할아버지 이영묵 씨는 돌아가신다. 식구들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양옥집을 남겨둔 채. 먼 훗날 옥주는 할아버지와 함께 한 여름 한철을 어떤 마음으로 기억하고 추억할까. 자신들 곁을 떠난 엄마가 미치도록 원망스럽고 미덥지 못한 아빠가 늘 불안하던 그 여름, 무심히 맞아준 할아버지와 양옥집은 오히려 위로였다. 야심한 밤 어둠 속에서 신중현 곡 <미련>을 틀어놓고 선율에 취한 할아버지의 낯선 모습에 2층에서 내려오던 옥주는계단참 모퉁이에 앉아 가만히 귀 기울인다. 말이 필요 없는 이들의 연결은,옥주가 집을 부동산에 내놓은 아빠와 고모의 처사에 화가 나고장례식을 치르고 터진 폭풍 오열이 말해준다. 특별히 위해주지 않아도 그냥 추억과 서로가 있어 위로가 되었던 그들의 집과 그곳에서의 시간들. 누구나 그런 공간 하나쯤 마음에 품고 살 수 있다면 무겁게만느껴지는 현실이 조금 가볍게 다가오지 않을까. 그래야 뭐든 시작할 수 있다. 그래야 추억은 남으나 미련은 남지 않는다.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시대에 소소한 일상이 다가오는 날들이다. 대본집을 먼저 본 작가님 글로 알게 된 영화인데 일상을 보여주며 사건보다는 섬세한 심리에 초점을 맞추는 여성 감독영화들이 참 좋다. <우리들>, <우리집>, <벌새>등 여자 아이들이 주인공이지만 알고 보면 쓸쓸한,우리들의자화상이다. 지나온 시간들을 발견하고 이제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