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선생님이 꿈꾸는 눈빛으로 소개한 책이라 읽고 싶었다. 막상 들고 보니 색다른 소재에 깊은 무언가가 있다는 건 알겠는데 입구를 못 찾은 방문객처럼 주변만 어설렁거리는 읽기에 머물렀다. 우연히 동명의 영화를 발견해 다시 시도했지만 여전히 지루해 졸다 말다 … 끝까지 다 보긴 했다. 이러면 좀 오기가 생긴다. 도대체 너는 무엇이길래 이렇게 문을 안 열어 주니??? 기껏 소설이면서… (죄송합니다, 소설 작가님들). 미련이 남아 며칠 후 다시 책을 들었다.
근데 참 이상했다. 영화를 그나마 대충 보고 책을 다시 읽으니 조금씩 들어오는 게 아닌가! 반전이 일어난 것 같아 돌이켜보니 지루했던 이유는 처음부터 생경한 수학용어에 뇌가 피로해진 것도 있지만 머릿속에 이미지가 잘 그려지지 않은 것이다. 다시 보니 영화 속 인물들이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똑같은 구절도 문자로만 다가올 때랑 목소리가 들릴 때랑 느낌이 사뭇 달랐다. 예순네 살에, 전문 분야가 수학이론인 전 대학교수, 사고로 인해 기억이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 병을 앓고 있는 수학박사를 영화의 이미지로 책에서 겨우 만나게 되었다.
수학의 아름다움을 수식이 아니라 언어로, 잘 짜인 이야기로 표현한 작가의 역량이 참 대단하다. 이론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바탕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마지막 장에 있는 작품 해설이 특이하게도 작가인 ‘오가와 요코’가 이 책을 쓰기 전 취재했던 수학자의 글이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이 책은 문학과 수학이 결혼한 거란다. 맞다. 상반된 두 세계가 마치 잘 맞는 부부처럼 조화롭게 서로를 보듬고 있는 느낌이랄까. 비슷해서가 아니라 너무 다른 세계가 만들어낸 색다른 조화가 이야기를 더 멋스럽게 만들었다. 수의 계승, 소수, 완전수, 우애수, 루트, 기억이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 박사, 가사도우미, 그녀의 아들… 야구까지. 이런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이 서로 치밀하게, 잘 놓인 수처럼 서로를 단단하게 부여잡고 인생의 의미와 진실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세계 영원한 진실을, 박사는 종이에 그리기 어려운 진정한 의미의 직선에 대해 화자인 가사도우미 ‘나’에게 이야기한다. 아들을 걱정하는 엄마를 자신의 방식으로 위로한다.
“그럼 진정한 직선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여기에 밖에 없어.” 박사는 자기 가슴에 손을 대었다. 허수에 대해 가르쳐줄 때 그랬던 것처럼. “물질이나 자연현상, 또는 감정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영원한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그러나 수학은 그 모습을 해명하고, 표현할 수 있지. 아무것도 그걸 방해할 수는 없어.” 배가 고픈 것을 참아가면서 사무실 바닥을 닦고 루트를 걱정하고 있는 내게는 박사가 말하는 영원하고 옳은 진실이 필요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는 실감이 필요했다. 넓이도 없이 장엄하게 어둠을 뚫고 한없이 뻗어 나가는 한 줄기 진실한 직선. 그 직선이야말로 내개 잠시의 평온을 가져다주었다.
영화가 아니었으면 좋은 책을 놓칠 뻔했다.보이지 않는 행간의 의미가 펼쳐지고 느껴져야 되는데 글만큼만 보인다면, 때론 글만큼도 못 볼 때도 있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행간의 의미를 발견해 가는 기쁨 , 문학을 읽는 이유다. 인간의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내 상상력은 왜 이렇게 미약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