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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Aug 09. 2021

찾는 것 밖엔 안 보인다

계곡에서 빛나는 것


찾고 모은다는 건 신비한 일이지. 찾는 것밖에는 안 보이니까. 크랜베리를 찾고 있으면 빨간 것밖에 안 보이고, 뼈를 찾고 있으면 하얀 것밖에 안 보여.
-토베얀손 <여름의 책> 중 -


계곡에 갔다. 지난봄 우리에게만 벚꽃을 보여주었던 그곳이 더위를 피해온 사람들로 조금 활기 있는 숲이 되어 있었다.


여름 계곡은 처음이라

다들 어떻게 알고 왔을꼬...

우리 같은 굼벵이도 지금 여기 있잖아.


계곡 따라 숲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그나마 앉을자리가 있어 반색했다. 멀찍이 보이는 자리는 진짜 명당자리였다. 평평하고… 큰 소나무 밑이라 묵은 붉은 솔잎이 폭신히 깔려있고 계곡과의 거리도 적당했다. 내년을 기약하며, 제대로 된 아웃도어 용품이 없는 우리는 돗자리에 원텃치 모기장을 과감하게 펼쳤다. 모기에 민감한 운의 낮잠을 위한 아이디어다.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놀랍게도 반가운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맞아, 여긴 바위가 많은 곳이지... 여기도 지의류 저기도 지의류! 운과 도가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지난 글 쓰며 특이한 그 생명체에 잔뜩 고무되었었는데 지금 눈앞에 짜잔 하고 나타난 듯하다. 결코 지의류를 관찰하겠다고 계곡에 온 건 아니지만 그것을 향한 안테나는 이미 세워져 있었던 게다. 마침 여긴 그들의 천국이었다.


이곳은 주로 청회색 지의류들의 군락지였다. 자연암반에 무늬를 이룬 지의류 나이는 수천년이 될 수도 있다고.

여름 바닷가 조개껍질 모으듯이 숲 계곡에서 지의류들을 모아 보았다. 언제나 주변에 늘 있었지. 이제야 밤하늘 별처럼 나에게 빛나고 있구나. 별빛도 지의류도 과거로부터 온 소식이다.


혹시 돌봉숭아로 손톱에 물들여 본 적 있는가. 봉숭아꽃이 아니라 돌봉숭아란다. 이웃 *샛별 작가님이 댓글로 알려주신 지의류에 대한 어린 시절 추억이 참 신기하고 재밌다. 돌 무늬진 부분에 물이나 침을 묻혀 갈아서 손톱에 물을 들였다는데, 뒤에 알고 봤더니 지의류였다고. 자연에서 놀았던 옛날 아이들은 돌꽃에서도 손톱 물을 들일 색깔이 나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이들도 자연이니까.





여름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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