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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Oct 02. 2021

오필리아, 그녀들


명의 오필리아를 알고 있다. 명은 젊고 아리따운 처녀이고, 한 명은 입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다. 젊은 오필리아들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 나온다. 완역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궁금하면 당장 찾아볼 수 있는 요물이 우리 손에 있다. 어쩌다 햄릿과 오필리아가 선명하게 다가온 건 영화 <오필리아>를 보고 나서다. 원작에는 그렇게 부각되지 않은 인물 오필리아가 주요 인물들을 제치고 새로운 오필리아로 탄생했다.


한때 유행했던 ‘허수아비의 아들은 누구인가’라는 수수께끼를 들어본 적 있는지? 참 난감했다. 허수아비는 단어일 뿐인데 그 아들을 무슨 수로 알아낸단 말인가. 늘 그렇듯  언어유희, 말장난에 불과하여 아들은 ‘허수’로 판명이 났지만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다. 소설 <뺑덕>에 나오는 ‘병덕’도 그렇게 탄생하였을 것이다. 심청이 목숨 값으로 살고 있는 심봉사에게 접근해 갈취하는 삶을 사는 뺑덕어멈, 이라 불리는 그 이름에서 그녀는 분명 자식 있는 엄마였다. 그럼에도 뺑덕의 존재를 생각하기는 쉽지 않았다. 만약 조금이라도 뺑덕어멈에서 뺑덕이 스친다면 그런 엄마를 둔 뺑덕, 병덕의 삶은 어떠하였을지 덩달아 상상이 일어날 수 있다.


익숙하고 평면적인 원작 주변을 사방으로 빙그르르 돌아보면 주인공 주변에 그림자처럼 있던 인물들도 어디론가 가고, 울고, 웃고, 고민한다. 이야기 없는 삶이 어디 있나. 영화 속 오필리아도 그렇게 살아났다.

내 입으로 내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왔네요.(영화 첫머리)


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아> 1851- 1852, 캔버스에 유채

원작에서 수동적 인물인 오필리아는 햄릿의 인이었으나 그에게 비난받기도, 아버지가 햄릿에게 억울하게 살해당하자 그 충격으로 미쳐버리기까지 한다. 광녀가 물가에서 꽃을 꺾다가 자살도 사고도 아닌 애매한 죽음으로, 거기다 노래까지 부르며 인생을 마감한 이야기가 더 임팩트했는지 어느 화가는 이런 몽환적인 그림을 그려 후대 사람들에게 오필리아를 각인시켰다. 영화에서는 독약을 먹고 연못으로 뛰어들었으나 다시 살아났고, 광기의 결투를 하고 있는 남자들을 남겨두고 꽤 롱테이크로 스쳐지나가는 씬이 나온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갈 삶을 향해 당당히 나아갔다. 탐욕과 광기, 배신이 가득 찬 시대와 남자들 서슬에 숨죽이고 길들여졌던 한 여성의 감춰진 모습을 끌어내 준 영화는, 제목처럼 오필리아에 대한 오필리아의 영화였다.



또 다른 오필리아는 미하일 엔데(1929~ 1995, 독일)의 동화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에 나오는 할머니다. 극작가, 배우, 평론가, 기획자 등 연극에 관한 한 다해본 작가의 이력으로 봤을 때 분명 이 오필리아도 햄릿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림자극은 햄릿에서 중요한 장면이다. 햄릿은 선왕인 아버지를 독살하고 왕위에 오른 삼촌 클로디어스의 행각을 왕궁에서 그림자극으로 연출하여 주변에 알리려 했고 클로디어스는 마치 인정이라도 하듯 길길이 날뛴다.


그러나 늙고 외로운 오필리아의 환상적인 그림자 극은 모두에게 위로와 온기를 준다.


요즘 말로 비혼 독거노인으로 늙은 오필리아는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훌륭하고 이름난 연극배우가 되라고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햄릿의 오필리아… 맞다. 부모님 뜻대로 오필리아는 문인들이 지은 위대한 시어에 흠뻑 빠져들었지만, 이를 어쩌나… 연극배우가 되기엔 목소리가 너무 작았다. 그래도 연극과 관련된 일을 꼭 하고 싶어 극장에서 대사를 잊는 배우들을 위해 마련된 무대 앞 작은 상자에서 대사를 불러주는 일을 했다. 이 일이야말로 목소리가 작은 오필리아에게 안성맞춤이었고 만족하며 평생 하다 보니 유명 연극의 모든 대사를 외워버려 걸어 다니는 대본집이 되었다고나 할까.


세월은 흘러 세상도 변하여 영화, 텔레비전이 작은 소도시 극장들을 대신하게 되는데, 일자리를 잃은 늙은 오필리아에게 어느 날 어디에도 속하못한 외로운 그림자들이 모여드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자신의 그림자와 그림자 장난꾼, 무서운 어둠, 외로움, 밤앓이, 힘없음, 덧없음 이라는 여섯 개의 그림자들을 받아들여 생활하다 보니 옥신각신 서로 싸움질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오필리아는 이들을 가지런히 할 방안으로 연극 대사를 외우게 한다. 나날이 발전하여 밤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공연이 펼쳐지는데 정말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단이 된 것이다. 밖으로까지 나간 이들의 활약은 오필리아를 유명하게, 가난에서 벗어나게도 해주었지만 모든 일은 영원할 수 없는 법, 어느 눈보라 치는 날 어마어마하게 큰 그림자를 만나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고 만다. 그 그림자의 이름은 ‘죽음’이었다. 그것마저 받아들이는 오필리아! 그래, 나한테 오려무나.


젊은 시절 몸으로 되돌아 간 듯 밝고 맑은 눈에 들어온 그곳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 앞이다. 천국 안으로 인도하는 화려한 빛깔의 그림자들은 알고 보니 오필리아가 거두어 준, 이제는 구원받은 그림자들이었고 그들이 함께 당도한 곳은 너무나 아름답고 화려한 극장이었다. 극장 문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필리아의 빛 극장

빛 극장의 관객은 천사들, 이들은 희노애락이 배인 연극을 보며 인간의 삶을 배워 나갔고 오필리아는 그곳에서도 작은 목소리로 대사를 잊은 배우들을 역시 도왔다.



오필리아들의 삶은 많이 다른 듯 하지만 사회적 약자로 살아간 모습은 또 많이 닮아 있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주체적 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친 젊은 오필리아, 늙음과 죽음이라는 난제를 거부하지 않고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오필리아 할머니, 모두 그 자리에서 용기를 낸 여성들이다. 새롭게 탄생한 오필리아들은 시대가 그러하여 허망하게 죽은 원전 오필리아를 위로라도 하듯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 오늘의 오필리아들에게 힘을 준다.






* 영화 <오필리아> , 2021

*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 미하일 엔데 글/ 프리드리히 헤헬만 그림/ 문성원 옮김/ 베틀북,2009

* 뺑덕/ 배유안/ 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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