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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Jan 01. 2022

새 마음으로/ 이슬아의 이웃 어른 인터뷰집

지난 계절 모은 빚깔들 1

  2021년 지나온 시간에는 이웃 사람을 많이 알지도 만나지도 못했다. 웃으며 인사할 수 있는 사람은 겨우 세 명 정도. 이사 온 첫해 많았던 사과를 나누어 먹으려 말을 튼 계단청소 아줌마, 어느 곳에 살아도 알고 지낼 수밖에 없는 다른 사람 같은 이름 수선집 아줌마, 우연히 갑자기 오래된 의자를 주고받으며 알게 된 6층 할머니가 전부였다. 마음을 나누는 사이는 아닐지라도 인사하며 한두 마디씩 쌓인 말들로 이 사람들의 인생 아주 작은 조각 하나쯤은 들어와 있다. 가끔 겉으로는 나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 같은데 사실은 연결되어 있다는 걸 발견하는 순간, 인생극장 카메라가 풀샷으로 잡혀 무대가 확장되는 기분이다.


  이슬아 작가는 작정하고 인터뷰어가 되어 이웃 어른들을 만나러 갔다. 그들은 응급실 청소 노동자, 농업인, 아파트 청소 노동자, 인쇄소 기장, 인쇄소 경리, 수선집 사장이다. 그들이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기다린 사람 중 하나가 되고,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된 누군가가 되고, 싶었다 한다. 궁금하고 걱정스럽고 감탄스럽고 고마운 얼굴로 그들을 바라본 젊은 작가는 공부를 빠르게 알지게 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책이 발행된 11월 11일 이전 계절들이 글과 사진에 또렷이 담겨 있다.


  땅에는 새싹이 더러 올라오고 산수유가 노랗게 핀 병원 앞 공원에서 눈을 감기도 정면을 응시하기도 포즈를 취한 응급실 청소 노동자 이순덕 님 ,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자리에서 언제나 완벽하게 묵묵히 치우는 사람이었다.

- 사는 게 너무 고달팠어요.

그래서 더 힘든 사람을 생각했어요.

- 계속 배우면서 살아야지요. 내가 국민학교를 안 나왔으니까 글을 잘 못 읽어요. 근데 자꾸 배우고 싶으니까.

- 일 얘기를 이렇게 쭉 한 거는 처음이에요. 얘기를 하니까 행복하네.


  비닐하우스 오이 넝쿨들이 싱그러웠던 초여름, 경상북도 문경에서 버섯과 오이 농사를 짓는 윤인숙 님, 식물한테도 새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나이와 상관없이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용기 있는 여성이었다.

감정이 올라올 때도 있지만 빨리빨리 잊어버리려고 해. 스트레스를 안고 꿍해있으면 나 자신이 너무 상해 버리잖아. 새 마음을 먹는 거지. 자꾸자꾸 새 마음으로 하는 거야.


  47, 48년 생임에도 아파트 청소 노동자인 충남 공주의 이존자, 장병찬 님, 이슬아 작가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다. 3대가 무러 익어야 빛을 본다는 창작 예술 세계에서 슬아 작가의 빛나는 사랑의 언어는 엮어진 두 사람 마음이 출발이었던 것 같다.

"밥사발에도 눈물이 있고 죽사발에도 웃음이 있으니, 죽을 먹어도 웃을 수 있다면 살겠다”라고 말하는 거야. 내가 열아홉에 할머니헌티 그 말을 듣고 감동을 받아버린겨. 비록 죽을 먹으며 가난하게 산대도 마음만 맞으면 살겠다는 거자녀. 아무리 배운 사람도 그런 말은 쉽게 못햐. 그때부터 내가 할머니만을 생각하게 되었던 거지.

 

  책은 글 작가의 오롯한 결과물이라 생각했지만, 작가마저도 인쇄소 직원을 만나고 오면 자신의 몫은 얼마나 일부인지 깨닫는다. 색을 맞추는 직업인 인쇄소 기장 김경연 님, 경리 김혜옥 님의 일터는 소리와 냄새가 흥건하고 긴장을 놓치지 말아야 하며 정확한 일정과 계산이 필수인 곳이었다.

- 몇 부야?! (사고시 가장 처음 하는 말)

- 납기일에 못 맞출 때는 초조해서 미치겠어요.


  전국의 수선집 풍경은 어찌나 닮았는지, 작업하는 사장님 뒤로 수다 떠는 손님 두어 명이 앉아있고 새로운 손님이 고친 옷을 입고 나오면 ‘딱 맞네, 요즘 저런 옷 없어!’, 처음 본 사람들끼리 옷을 놓고 한마음이 된다. 작가의 단골 수선집, 이영애 님의 그곳도 그랬다. 60년대 창신동 봉제공장 그녀들에서 불행한 결혼 생활, 노년의 로맨스까지, 가끔 가만히 앉아 있으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는 영애님은 젊은 시절 남편의 여자들이 더 이상 밉지가 않다.

몰라. 어느새 이해가 돼. 안 미워. 그 여자들도 안쓰러워. 그들도 그렇게 살고 싶었던 게 아닐 거야. 그 사람들 삶도 기가 막혀. 그래서 안 밉더라고.


작가가 만난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이웃들이다. 그동안 인터뷰이들은 유명인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했고 그러한 경우가 많았지만 유명하거나 성공하지 않아도 각자의 삶에 그려진 무늬는 누구나 인터뷰이가 되어도 지루하지 않을 이야기로  충분했다. 마음을 열고 들어 줄 사람만 있다면. 그리고 모두는 서로를 있게 하는 미세한 무언가로 연결되어 내일로 미래로 나아가고 있었다.



지난 계절에 모은 빛깔을 내가 속한 사람 이야기로 먼저 시작했다. 직접 만난 사람들은 아니지만 친근한 우리 이웃들 이야기이기에 살짝 숟가락을 얹어 온기를 얻어본다. 내가 만약 인터뷰이가 된다면  어떤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을까. 어쩌면 새해는 새 마음으로 그것을 만들어 갈 새  인지도 모른다. 비록 작심삼일 일지라도 어떻게든 이어서 굴러간다.




*새 마음으로/ 이슬아/ 헤엄출판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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